주객전도 택한 청년들, 학업보다도 '아르바이트'
[임다영, 임정은, 조수아 기자]
▲ 서울 시내 한 카페에 붙은 아르바이트생 교육 관련 안내문 |
ⓒ 연합뉴스 |
아침 7시 기상. 통학 시간은 1시간이다.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8시에 집을 나선다. 강의를 들은 후 급하게 점심을 챙겨먹는다. 이어지는 일정은 다름 아닌 커피숍 아르바이트. 카페 마감 아르바이트 업무는 오늘도 빽빽하다. 하루를 마친 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자정이다. 휴식 시간과 개인 공부 시간은 포기한 지 오래다.
학업과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주객전도를 겪는 대학생 임아무개씨의 하루다.
사전에 의하면 아르바이트는 '본래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청년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요즘 청년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아르바이트'라는 단어의 본질을 벗어나는 듯한 현상을 엿볼 수 있다. 학업을 비롯한 본업보다도 아르바이트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의 본질을 벗어난 '주객전도'
▲ 20대 청년 1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
ⓒ 임다영, 임정은, 조수아 |
먼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85명(76.6%)의 청년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청년은 111명 중 26명(23.4%)에 불과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85명의 청년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43명(50.6%)이 '윤택한 소비 생활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어 '생계 유지를 위해서'와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서'가 각각 17명(20%)과 14명(16.5%)으로 뒤를 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포기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수면 시간을 포기했다'와 '친구들과의 약속을 포함한 여가를 포기했다'고 답한 청년들이 가장 많았고, 이외에도 성적, 식습관, 건강 등이 있었다. '포기한 것이 없다'고 답한 청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약 8명이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무언가를 포기하면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또한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보다 다른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아르바이트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설문조사에 참여한 최선우(26)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가 생활과 학업을 포기했다고 답했지만 답변과 모순되게도 여가 생활을 풍족하게 즐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김예진(22)씨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부모님 돈에만 의존하여 살아가게 된다"며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나의 생활을 내가 스스로 꾸려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과거에 비해 확연히 커진 소비 범위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쉽게 그만두기 힘들다"고 전했다.
삶과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청년들
20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들어보고자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세 명의 청년들을 만나봤다.
일주일에 약 40시간에서 52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아무개(22)씨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지만 현재 학원 콘텐츠 개발팀 소속 팀장직까지 맡게 되면서 자연스레 학점과 정신 건강을 포기했다. 정씨는 "바쁜 날에는 하루 12시간도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한다"며 "집에 돌아오면 공부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아 간신히 학사 경고를 받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는 없냐'고 묻자 "인수인계 문제로 퇴사할 만한 상황도 안되고 이미 늘어난 소비를 줄이기 어려워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고 답했다. 이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재는 공부보다 돈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임채윤(22)씨는 아르바이트로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학교 행사에도 참여하기 어렵다. 동아리에 들어간 지 1년이 넘었지만 바쁜 아르바이트 일정 탓에 친해진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임씨는 "동아리 활동 후 뒤풀이를 하러 갈 때도 항상 빠질 수밖에 없다"며 "아르바이트 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애초에 나를 부르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일상이 모두 알바로만 채워져 가고 있는 느낌"이라며 속상함을 표했다.
▲ 임채윤(22)씨의 아르바이트 일정표다. |
ⓒ 임채윤 |
임씨에게 '아르바이트와 돈의 의미'를 묻자 그는 "안정제"라고 답했다. 임씨는 "통장에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불안하지 않고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라며 "돈이 없을 때는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했다. 또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등 우리가 누리는 행복에는 모두 돈이 든다"고 덧붙였다.
또 현재 영화관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은재(22)씨는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소화하며 학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정씨는 "근무 이틀 전이나 하루 전에도 유동적으로 바뀌는 아르바이트 일정 때문에 다른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주변 친구들은 다 하는 염색이나 네일아트도 영화관 규정 탓에 포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20대 청년으로 살면서 사람들이 당연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가 필연적"이라며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이 가진 재능, 노력보다도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상대의 능력을 평가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에게 '돈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돈은 곧 능력"이라고 답했다.
청년들의 '알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양상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어떨까. 청년들의 아르바이트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과 아르바이트 고용주 및 소비자학과 교수의 말을 들어봤다.
대학생 손자를 둔 시민 A씨(80대)는 '많은 청년들이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현재 매우 많은 청년이 학업을 뒤로 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사회 경험을 쌓는 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된 목적인 것 같은데, 대부분 커피숍에서 일하거나 홀서빙 등을 한다"라며 "모든 청년들이 비슷한 종류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하는 게 사회 경험을 쌓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대학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음식점 사장 황아무개(60대)씨는 "매장이 대학교 바로 앞에 있어 자연스레 대학생을 많이 고용하게 된다"며 "일이 아르바이트생의 학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일을 그만두라고 제안한다"고 했다.
"저도 대학생 자녀가 있어서 그런지 일이 학업보다 우선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 아르바이트생이 일에 부담을 갖지는 않는지, 힘든 건 없는지 자주 물어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이 일을 그만두기 싫어서 괜찮다고 둘러대는데요. 그럴 때 제가 먼저 학점 A등급 이상 못 맞으면 다음 달부터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노원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아무개(50대)씨는 "요즘 청년들의 소비 욕구가 점점 더 강해짐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청년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20대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없는 최씨는 "과거와 현재의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매우 다르다"며 "현재 청년들은 소비에 더 적극적이고 소비생활에 여러 미디어의 영향도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 20대 때는 학생 운동이 엄청 활발했던 때라 지금처럼 소비를 자유롭게 하지 않았어요. 취미생활에 엄청난 돈을 쏟는다거나, 사치를 부리면서 돈을 쓰고 나를 꾸미면 그 자체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영애 교수에게 '청년들의 아르바이트와 소비 양상'에 대해 묻자 "현재 우리 사회에 과거에는 없던 서비스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됐다"며 "과거 청년들에 비해 현 시대의 청년들이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늘어났고 그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것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늘어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소비할 여력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청년들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교수는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소비 패턴이나 양상이 특별히 새롭게 등장해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부추긴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이전의 그 어떤 시대보다 돈의 중요성이 커졌고,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졌다. 대학생 신분으로 가장 중요한 학업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춘까지 포기해 가면서 20대 청년들이 좇는 건 다름 아닌 '돈'이다.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그들이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 돈이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청춘이라는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통해 시간을 돈으로 바꿔내는 것이 과연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길일까. 20대라는 짧고 빛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게 옳은지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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