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에 여왕이 된 그녀, 왕관의 무게를 견디다
[김성호 기자]
흔히 '왕관의 무게'라고들 말한다.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고도. 이는 세상사 많은 곳에 통용되는 법칙과도 같아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책임을 감당치 못하는 권력이 참담하게 무너졌음을 역사 가운데 수없이 마주한다.
왕관은 대체로 영예롭지만 늘 영광스럽지는 않다. 힘은 때로 유익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쓴 이의 목을 꺾는 왕관과 지닌 이를 파멸하게 하는 힘을 우리는 자주 목격해왔다.
▲ 포스터 |
ⓒ 영화사 진진 |
<노팅 힐> 감독이 찍은 엘리자베스 2세 일대기
<퀸 엘리자베스>는 지난 2022년 공개된 장편 다큐멘터리다. 그해 9월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여왕의 어린 시절부터 재위기간 전반을 아우른다. 출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상자료를 모아 편집했는데, 일상의 기록부터 공식석상에서의 모습까지가 다채롭게 담겨 여왕과 여인, 독존하면서도 외로워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영화를 감독한 건 로저 미첼이다. <노팅 힐>을 찍어낸 영국의 유명 영화인이라 말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작품 외엔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그가 지난 2021년 고작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다큐는 생전 그가 착수해 미처 마치지 못한 프로젝트로, 여왕이 아직 재위 중에 있던 시기에 기획되고 제작된 작품이다. 여왕이 떠나기 전, 영국인의 시선으로 그녀의 지난 시절을 조명하는 장편 다큐를 만드는 계획은 여러모로 야심찬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당대 영국인에게 상징이며 자존심이자 애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 스틸컷 |
ⓒ 영화사 진진 |
스물다섯에 쓴 왕관, 그녀가 지내온 시간
아버지인 조지 6세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1952년, 그녀는 고작 스물다섯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영국과 파키스탄, 아일랜드가 독립하며 급격히 축소되던 영국의 군주, 구태의 상징이며 부조리의 원흉으로 여겨지던 군주제와 제국주의의 유산을 짊어지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정치적 실권은 없다고 해도 그 영향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상징적 존재, 나면서부터 그 운명이 정해진 자리를 감히 기꺼워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으랴. 그러나 그녀는 그 모두를 일생에 걸쳐 감당했다.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여러 평가에도 그녀가 끝끝내 제 업을 감당했고, 조국과 국민을 배신하려 들지 않았단 사실엔 모두가 동의할 밖에 없다. 고작 스물하나의 나이에 케이프타운에서 했던 저 유명한 연설, "내 삶이 길건 짧건 일생을 그대들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 선서한다(I declare before you all that my whole life whether it be long or short shall be devoted to your service)"는 약속을 그녀는 일생에 거쳐 수차례 확인하고 지켜내었던 것이다.
▲ 스틸컷 |
ⓒ 영화사 진진 |
여왕의 일생을 다각도로 조명하다
영화에 담긴 어려움은 한둘이 아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와의 갈등이야 워낙 유명한 일이다. 왕세자와의 이혼 뒤 왕실 바깥으로 나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정신을 곤두세우고, 마침내 그녀가 죽은 뒤엔 조기를 걸지 않아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던 것이다. 1992년 윈저성 대화재 때는 복구비용을 두고 논란을 빚었고, 마침내 왕실이 사재를 털고 납세의 의무까지 지며 이를 복구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매 순간 여왕은 마침내 국민의 뜻에 따랐고 그로써 왕실의 권위와 국민의 애정을 지켜내었다.
여러 장으로 나누어 여왕을 다각도에서 조명하려 한 의도가 인상 깊다. 다만 예기치 못한 감독의 죽음 탓인지 영화가 뚜렷하게 메시지를 부각하지 못하고 특정한 요소에 선택과 집중도 하지 못한단 점이 아쉽다. 사건과 시공간이 다르다지만 여왕이 연설을 하고 누구와 만나고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드는 등의 장면이 거듭되는 것이 지루함을 자아내는 것이다.
▲ 스틸컷 |
ⓒ 영화사 진진 |
자리에 걸맞은 책임, 여왕의 특별함
또한 한편으론 영화가 본래 여왕을 비판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감독의 의중이 들어간 듯 보이는 몇몇 장면에선 왕실의 의례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왕가에 충성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시대착오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 탓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같은 시각과 연출이 씻은 듯 사라지니 한 편의 영화가 주되게 천착하는 바가 있는 것인지, 또 사전에 의도한 방향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을 갖게 된다.
<퀸 엘리자베스>를 보고난 뒤 이 영화가 여왕에 대한 영국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라 말하는 이가 있고, 여왕을 비꼬고 시대착오적 군주제를 비판하는 영화라 이야기하는 이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영화가 방향을 상실한 바로 그 덕에 관객은 자유로이 사고의 사슬을 이어나갈 기회를 얻는다. 이제는 죽어 떠난 여왕의 업적을 되짚으며 왕과 왕실이 존속할 가치가 있는가를 묻는 것도 그 일환이 될 수 있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찌됐든 민주주의가 확고히 선 한국과 같은 나라에선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불과 100여 년 전만 하여도 이 땅에 군주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가 훨씬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부와 국모, 즉 나라에 부모가 있다는 생각이 당연스레 통용됐고, 나라에 주인이 있다고 여기는 나랏님과 같은 말이 널리 쓰였다. 그 같은 생각에 기반하여 수많은 정치지도자가 등장했고, 그중 일부는 대통령이 돼 제왕적 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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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 진진 |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작동하는 사회
제 자식이 포틀랜드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두고 대처와 대면하여 불편함을 드러내었을 때, 많은 영국의 어머니가 엘리자베스 2세에 공감하였던 것을 떠올린다. 스물한 살에 한 약속, 일생을 백성을 섬기겠다던 언약을 지키려 노력한 여왕이 영국에는 있었단 것을 나는 안다. 병역을 기피하고 장병들의 노고를 무시하며 제 배를 불리는 데만 관심이 있는 이 땅의 못난 지도자들을 떠올리며,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쉬운 비판을 자제하려 한다.
오늘날 영국에선 충실한 의회주의자조차 왕실의 권위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제국의 영광이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고, 수많은 실정이 계급과 인종,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왕실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리더십은 여전히 그 뿌리를 굳건히 내리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단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영화가 외면한 커다란 잘못들, 이를테면 왕실재산을 조세회피처로 빼돌리다 적발된 것과 같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같은 문제에도 국민들이 왕실을 용서하고 굳건한 지지를 표할 만큼 그 신뢰가 뿌리 깊다. 여왕이 삶 전체를 통해 보여온 섬김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민주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대에 죽은 여왕을 애도하는 이들이 넘쳐난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작동하는 사회의 힘이다. 공동체 의식이 죽어가는 한국에서 저 멀리 영국 여왕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영화를 바라보는 일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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