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로봇'은 돌봄 부담을 줄이는 해답이 될까

조유리 2024. 6. 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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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간호중> 이 상상한 미래 사회의 돌봄에 대해

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기자말>

[조유리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간호중>의 한 장면
ⓒ 찬란
AI 바둑기사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인다고 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저 인간보다 똑똑한 AI의 출현을 목도하며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데 그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재 AI는 이미 일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어 학습이나 여행일정 짜기 등은 AI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해결가능하다. 포털 사이트가 운영하는 서비스의 다양한 기능 또한 AI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것이 많다고 한다. 또한 식당에 등장한 서빙 로봇이나 휴게소에서 인간 대신 24시간 음식을 만들어주는 요리사 로봇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도 더 일찍 AI 기반 로봇이 등장한 분야가 바로 돌봄의 현장이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음악을 틀어주거나 질문에 답하면서 말벗이 되어주는 것은 물론 노인의 위급 상황을 감지해 관제 센터에 연락, 생명을 구하는 역할도 하는 돌봄 로봇은 이제 노인들의 고독사를 막는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환자를 돌보는 간병 로봇

현존하는 돌봄 로봇은 대부분 음성지원만 되는 작은 스피커 형태로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는 노인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데 그치는 반면, 영화 <간호중>(2021)에 등장하는 로봇은 환자를 돌보는 '간병 로봇'으로, 인간과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 얼굴은 환자의 자식이나 배우자 등 원래 보호자와 똑같다. 환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도록 그렇게 만들어진 것. 이 간병 로봇을 구입하는 비용은 매우 비싸서 누군가에게는 집을 팔아 구입비를 마련해야 할 정도인데 그마저도 '보급형'과 '고급형'으로 나뉘어 가격에 따라 그 기능이 제한적이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정인(이유영 분)은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간병 로봇 '간호중' 덕에 의식없이 누워있는 엄마를 직접 돌보지 않고 자신의 직업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정인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서 10년째 연명을 하고있는 엄마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고 고급형 로봇이라 '보호자 돌봄 기능'까지 탑재된 '간호중'은 정인의 엄마뿐 아니라 정인의 상태까지도 감지하며 그녀에 대한 돌봄의 필요성을 인지한다.

반면 옆 병실에서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는 정길(염혜란 분)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모습으로 구입한 간병 로봇은 '보급형'이라 환자만 돌볼 뿐 보호자인 정길의 힘든 점은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치매로 인한 남편의 이상 행동을 탓하며 손찌검을 하는 정길을 오히려 환자 학대자로 인식해 해를 가한다. 보호자의 처절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최소한의 환자 간병만 실행하는 로봇 때문에 정길은 오히려 벼랑 끝에 서게 된다.

돌봄의 '인간성'에 대한 고려가 먼저다
 
  영화 <간호중>
ⓒ 찬란
  
영화의 배경은 2046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어쩌면 이런 미래는 조금 더 빨리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의 발전 속도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의 노령화 속도 때문이다. 질병에 걸린 노인의 수가 많아지고 돌봄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수록 그 돌봄자를 대체할 '비인간'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

그런데 이런 흐름이 당연할 것이란 생각을 잠시 멈추고, 이 발상을 재고해 봐야 할 여지가 있다. 로봇으로 인간을 대체할 방법만 모색하려 하는 것은 이미 돌봄이라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 못 된다'는 명제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를 돌봐주는 것이야말로 하루 세 번 밥과 약을 챙겨주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마음을 살펴주는 일이니 그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가 필요한 영역일 텐데, 우리는 돌봄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이런 인간성은 쏙 빼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돌봄을 하는 보호자에 대한 대책, 즉 돌봄 때문에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문제나 소위 '독박 돌봄'으로 인한 정신적 우울에 대한 해결, 또 고용된 돌봄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인간적인' 해결책을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간병 로봇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로봇의 구입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부터 돌봄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의식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돌봄을 로봇이 대체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 수 있을지, 영화를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간병 로봇을 구입하기 위해 집까지 팔았음에도 보급형밖에는 구입할 수 없었던 정길은 치매 남편을 돌보는 데 대한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수면제를 먹고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고통의 심연을 헤매다가 로봇에게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환자 외에는 돌보지 않도록 설정된 로봇은 죽어가는 정길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고급형 로봇은 달랐을까? 보호자 돌봄 기능까지 탑재된 '간호중'은 환자보다도 보호자인 정인의 상태에 더 민감해진 나머지 그만, 환자인 정인 엄마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버린다. 엄마가 없어야 정인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생존확률이 더 높은 정인을 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사람이 죽고 있는데도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못한 보급형 로봇도, 인간만큼의 감정을 소유해 인간 대신 임의적인 판단을 내려버린 고급형 로봇도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 <간호중>은 한 방송사에서 시리즈로 내놓은 '시네마틱 드라마 SF 에잇(8)' 중 한 편이다. 8편의 SF 드라마는 앞으로 인공 지능이 진화할수록 격변하게 될 미래 사회를 다양하게 상상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 작품들은 모두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지켜내야 할 인간성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중 <간호중>은 이미 인간의 존엄성이 화두가 된 '돌봄'이라는 영역에 기술의 발달이라는 숙제까지 안겨준 꽤 무거운 주제의 영화이다. 그럼에도 보호자와 간병 로봇 둘을 모두 연기한 1인 2역의 이유미, 염혜란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와 영화 마지막, 지나치게 인간화되어버려 생존의 갈등을 겪는 AI 로봇 '간호중'의 고뇌를 지켜보는 참신한 재미가 있다.

노인 돌봄을 생각하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며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지만 짧은 길이의 신선한 SF 영화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노인 문제를 접할 수 있는 수작을 만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와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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