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논쟁에도 "핵무장 없다"…尹 루스벨트 항모 승선의 역설
북·러 정상회담 뒤 여당 당권 주자들 사이에서 자체 핵무장 논쟁이 불붙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다. 나 의원은 25일 “나약한 사고방식을 깨야 한다”며 자체 핵무장을 주장했다. 같은 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마음만 먹으면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잠재적 핵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 확보를 통해 대북 핵 억제력을 강화할 때”라며 핵무장과 거리를 뒀다. 윤상현 의원은 미국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했다.
백가쟁명식 논의가 이뤄지는 당 분위기와 달리 대통령실은 핵무장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삼가고 있다. 다만, 외교가에선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정박 중인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을 찾은 것이 용산의 대답이라고 해석한다. 윤 대통령이 미국 핵우산의 가장 강력한 상징인 핵항모에 승선한 것 자체가 핵무장과는 거리를 두는 메시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루스벨트 항모 방한은 지난해 4월 저와 바이든 대통령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의 이행 조치로 미국의 철통 같은 방위공약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한·미 동맹은 그 어떠한 적도 물리쳐 승리할 수 있다”며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을 강조했다.
여권에서 핵무장을 먼저 언급했던 건 사실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외교·국방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한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우리 과학 기술로는 빠른 시일 내에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개 회의 발언이었지만, 대통령실이 회의 뒤 언론에 공개하며 파장이 커졌다.
한국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 처음이라 그 의도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후 미국 백악관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원칙이란 부정적 반응이 나왔고, 윤 대통령은 약 열흘 뒤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시스템을 매우 존중한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전직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당시 윤 대통령도 핵무장이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가정적 상황에 대한 언급인데 예상보다 논란이 커졌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로도 자체 핵무장보다는 한·미 간 핵 확장억제 능력 및 협의 강화에 초점을 두고 외교활동을 펼쳤다. NPT 탈퇴 시 가해질 경제제재를 견뎌낼 수 없다는 현실론이 작용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외교적 성과로 꼽히는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워싱턴 선언에 합의했다. 해당 합의는 한·미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전략 등을 NCG에서 함께 협의하고,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더 빈번하고 정례적으로 배치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대신 한국은 NPT비핵화 의무 준수를 약속하며 자체 핵무장에선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취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양국이 확장억제 강화와 NPT준수를 서로 주고받은 셈”이라며 “지금 대통령실이 핵무장을 언급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KBS 대담서도 “핵 개발을 하면 북한과 마찬가지로 경제 제재를 받는다”며 “핵무장은 현실적이지 못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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