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유럽의회 선거, 정말 '녹색'은 퇴조했나?
[박제민 기자]
1. 들어가며
2024년 6월 6일(목)부터 9일(일)까지 진행한 유럽의회의 선거 결과는 유럽인민당(EPP)과 사회민주진보동맹(S&D)이 각각 1, 2위 지위를 지켰지만 두 단체를 합쳐도 과반에 미달했고, 극우세력(ECR, ID) 약진했으며,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의석 수가 감소했다. 이는 최근에 실시한 유럽 여러 나라의 총선 결과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회원국 별로 살펴보면 색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Greens/EFA의 전체 의석 수는 줄었지만,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한 회원국의 수는 늘어났다. 또한 환경정책이 후퇴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어려우며, 이후 유럽의회에서 Greens/EFA이 여전히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이 있다.
▲ 유럽연합 깃발 |
ⓒ unsplash.com |
2. 유럽의회
1) 기원
▲ <그림1> 유럽연합 및 유럽의회 변천 과정 |
ⓒ 박제민 2024 |
2) 권리와 역할
유럽의회는 초창기에는 자문 역할 정도에 그쳤지만 1970년에 유럽연합의 예산권을 획득하고 1979년부터 직접선거를 실시하면서 대표성과 역할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유럽의회의 주요 권리와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법안심의권다. 유럽연합의 법안 발의권은 집행위원회가 갖고 있지만 유럽의회는 법안을 심의하여 수정을 요구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둘째, 예산심의권이다. 집행위원회가 제출한 예산안은 이사회와 유럽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집행이 가능하며, 유럽의회는 집행위원회의 예산 집행을 통제할 수 있다.
셋째, 집행위원장 및 집행위원에 대한 선출 및 불신임권이다. 유럽 정상회의에서 집행위원장을 추천하면 유럽의회에서 인준 투표를 거쳐야 한다. 또 유럽의회는 집행위원장 및 집행위원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다.
넷째, 질의와 조사 권한이다. 유럽의회는 특정 사안에 대해 집행위원회에 질의하거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에 나설 수 있다. 이밖에도 유럽의회는 유럽연합 유일의 직선 기관으로서 다른 기구들을 견제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3) 선거
유럽의회 선거는 5년마다 열린다. 유럽의회는 세계 유일의 다국적 의회로서, 유럽의회 선거는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선거로서 의의가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인도의 유권자는 약 9억 6,800만 명이며 유럽의회 선거의 유권자는 약 3억 7,500만 명이다)
선거는 유럽의회의 원칙에 따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 동안 회원국 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유럽의회 선거가 다가오면 회원국의 국내 정당들은 자국 의회와 별개로 유럽의회 후보를 추천하고 경쟁한다. 국내 의회 의원을 'MP(Member of Parliament)', 유럽의회 의원은 'MEP(Member of European Parliament)'로 구분해서 부른다.
유럽의회의 선거제도는 유럽의회 원칙에 따라 비례대표제로 진행한다. 선거구가 전국단위인지 권역별인지, 선거명부가 개방형인지 폐쇄형인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과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프랑스도 유럽의회 선거만큼은 비례대표제로 치른다.
▲ <표1> 2024년 유럽의회 선거 회원국별 배정 의원 수 |
ⓒ European Parliament |
▲ <표2> 유럽의회 교섭단체 현황 |
ⓒ 박제민 2024 |
3.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
'브렉시트' 이후 처음 치러진 2024년 유럽의회 선거는 6월 6일(목) 6월 9일 일요일까지 순차적으로 선거를 진행했으며 총 720명의 유럽의회 의원 선출했다.
1) 투표율
2000년대 이후 유럽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이는 유럽연합의 기구 중에서 유럽의회가 유일하게 직접선거를 통해 의원을 선출하는만큼 그 관심과 투표율이 점차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직전 선거였던 2019년에 50%를 넘어섰고(50.66%), 이번 2024년 선거에서도 약간 증가하여 잠정 51.08%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헝가리가 16.10%p, 사이프러스 13.87%p, 슬로베니아가 12.91%p, 슬로바키아가 11.64%p 투표율이 상승했다. 이밖에 체코, 포르투갈, 네덜란드, 독일 등도 투표율이 증가했다.
▲ <그림2> 유럽의회 선거 투표율 변화(2019년, 2024년) |
ⓒ 박제민 2024 |
2024년 유럽의회 선거의 잠정 결과는 <그림3>과 같다. 중도우파 성향의 EPP가 189석(+7)을 얻어 제1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했고, 중도좌파 성향의 S&D가 136석(-8)을 얻어 제2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했다.
반면에 중도우파부터 극우까지 이념적 성향이 분포한 ECR이 83석(+25)을 얻으며 Renew를 밀어내고 제3 교섭단체로 올라섰다. 역시 극우 성향의 ID는 58석(-15)을 얻는데 그쳤으나, 선거 직전에 제명하여 비교섭의원으로 분류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얻은 15석을 합치면 사실상 의석 수의 증감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기존에 제3 교섭단체였던 중도 성향의 Renew는 74석(-17)을 얻어 이번 선거에서 의석을 제일 많이 잃었다. 급진좌파 성향의 The left는 39석(-1)을 얻어 직전 선거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 <그림3>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results.elections.europa.eu/en/, 검색일: 2024.06.25.) |
ⓒ European Parliament |
▲ <표3> 2024 유럽의회 선거 교섭단체 및 회원국별 결과 |
ⓒ 박제민 2024 |
4. '녹색'은 퇴조했나?
▲ <표4> 빅카인즈(bigkinds.or.kr) “유럽의회, 녹색당” 검색 결과 (검색일: 2024.06.24.) |
ⓒ bigkinds.or.kr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결과만 보고 유럽의회에서, 더 나아가 유럽 전역에서 녹색당 그룹이 퇴조했다고 말하기에는 섣부른 측면이 있다.
1) 유럽의원을 배출한 회원국 수 증가
녹색당의 선거 결과를 국가별로 쪼개어 보면 <표5>와 같다. 유럽의회에서 녹색당은 의석을 잃었지만, 유럽 내에서 녹색당 대표를 선출한 국가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참고: Europa Verde – Verdi. "I Co-Portavoce dei Verdi Elide Mussner e Luca Bertolini a Bruxelles per l'analisi delle elezioni europee". COMUNICATO STAMPA. 2024.06.21.)
▲ <표5> 2024년 유럽의회 선거, 회원국 별 Greens/EFA 선거 결과 |
ⓒ 박제민 2024 |
2) 환경정책 후퇴가 쉽지 않은 구조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추진한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55% 감축 목표, 재생에너지 확충, 탄소배출권 거래세 개편 등을 위한 법이 이미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바스 에이크호우트 유럽녹색당 공동대표 후보, 크시슈토프 볼레스타 폴란드 기후장관 등은 향후에도 유럽연합의 기후정책이 후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인해 이전보다 새로운 기후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참고: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의석 늘어...기후정책 영향은?", ESC경제, 2024.06.11.)
3) 유럽의회에서 여전히 캐스팅 보트를 쥘 가능성
극우정당들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EPP를 비롯한 중도 주류파 정치그룹들은 여전히 과반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 "EU집행위원장 연임 '청신호'…"회원국들 지지 확인"", 연합뉴스, 2024.06.18.) 연합정치가 일상화 되어 있는 유럽정치를 볼 때 결국 EPP와 S&D과 어느 교섭단체와 협력하여 다수를 형성할지가 관건이다. 이때 극우와 유럽회의주의를 표방하며 유럽연합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ECR 또는 ID와 협력하는 것보다는, 중도파인 Renew 또는 환경정책을 주도해왔던 Greens/EFA와 손잡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 <그림4>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 다수파 계산기, EPP+S&D+Greens/EFA의 경우(results.elections.europa.eu/en/tools/majority-calculator/, 검색일: 2024.06.25.) |
ⓒ European Parliament |
5. 나가며
2024년 유럽의회 전체 선거 결과를 보면 좌파, 중도좌파 그룹의 의석 수가 감소하고 중도우파 및 극우 그룹의 의석 수가 증가했다. 특히 Greens/EFA의 의석 수가 감소했는데 이를 두고 녹색당이 퇴조했다는 식으로 분석하는 것은 유럽정치의 다층적이며 지역적 측면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극우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중도우파,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EPP와 S&D가 여전히 1, 2위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했다. 이들이 다수파를 형성하기 위해 극우 성향으로 유럽회의주의를 내세우는 ECR 및 ID와 연합하는 것은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연합정치적 맥락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결국 EPP와 S&D의 입장에서는 중도적인 Renew 또는 환경정책을 주도하는 Greens/EFA와 협력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한편 유럽연합 회원국의 녹색당들은 2019년에 비해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전체 의석 수가 감소했으나 오히려 의원을 배출한 회원국 수가 증가했다. 특히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에서 처음으로 의석을 얻었고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에서 의석이 증가했다. 이들 회원국의 녹색당들은 고무된 결과를 바탕으로 지방선거 등 다음 선거 준비에 나설 참이다.
향후 관건은 녹색당이 크게 의석 수를 잃은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다. 특히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한 프랑스에서 극우정당이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 현지 시간으로 6월 23일에 르파리지앵과 라디오 프랑스가 지난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극우 프랑스 국민연합(RN)이 35.5%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로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NPF)은 29.5%,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르네상스 등 중도파는 19.5%에 머물렀다. (참고: "프랑스서 극우 포퓰리즘 전략 먹히네…佛 르펜 '경제서 가장 신뢰'", 뉴스1, 2024.06.24.) 유럽의 개별 국가의 국내 정치에서 극우정당이 약진한다면 향후 유럽의회 및 유럽연합의 판도를 크게 흔들 가능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녹색정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 동기 이진숙을 38년 뒤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 사과를 하면 정말 박근혜처럼 되는 것일까
- "잠재적 수사 대상자라?" 공수처 차장 임명 미루는 윤 대통령
- 파스타집에 취직한 정치인, 뉴스 보고 알게 된 것
- 김건희 여사처럼 "반환 지시" 주장했지만... 박영수 '유죄'
- 한 편의 오페라처럼... '혁명' 쓴 파리올림픽 개막식
- 한국거래소,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이상거래 심리' 착수
- 침묵 깬 오바마, 해리스 지지 선언 "모든 것 하겠다"
- 이화영 항소심 재판부 "법리 외 이야기, 검찰이 더 한다"
- 필리버스터 끝 '표결 거부' 국힘 퇴장... 방통위법 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