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삶의 최고 덕목”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우성규 2024. 6. 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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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예수] 대한민국 대표 공안 검사 안창호 변호사 인터뷰
안창호(앞줄 오른쪽) 당시 대전지검장이 2009년 3월 대전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들의 발을 씻기고 있다.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은 마음이 황폐해져 있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아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검사 시절 피의자들을 구속하면서 따뜻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그들이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은 정성을 보일 때 그들은 자신을 구속하는 검사에게 감사하면서 스스로 변화를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후배 검사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곤 합니다. ‘피의자들의 범행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피의자들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를 살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작은 정성이라도 보탤 수 있으면 보태야 한다.’”

안창호(67) 전 헌법재판관은 공안 검사 출신이다. 1985년 서울지검 검사로 공직을 시작해 법무부 인권과 검사, 헌법연구관, 법무부 특수법령과장,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대전지검 광주고검 서울고검의 검사장 직을 거쳐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했고 현재 법무법인 화우 소속 고문 변호사다. 법무부 인권과 검사 시절엔 공익법무관 제도를 도입해 법에서 소외된 경제적 약자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도왔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앞서 연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엔 김승규 전 법무부장관 등과 함께 대한민국 첫 민영 교도소인 여주 소망교도소 설립의 산파 역할을 함으로써 신앙으로 교화시키는 일을 도왔다.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해온 그를 지난 24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구 화우 회의실에서 만났다. 헌법의 기본 원리와 민주시민의 덕목을 이야기한 ‘왜 대한민국 헌법인가’(국민일보)를 펴낸 안 재판관은 책에서 “사랑이 삶의 최고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정의 없는 사랑만으로 국가 공동체가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사랑 없는 정의만으로 그 공동체 구성원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국가 권력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 구현에는 반드시 사랑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신석현 포토그래퍼


어머니의 가정예배
안 재판관은 모태신앙이다. 어머니 등에 업혀 아기 때부터 대전 중부장로교회를 출석했다. 다섯 형제 가운데 막내인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렸다. 큰형은 총신대 아신대 등지에서 신학 교수를 역임한 안봉호 박사다. 안 재판관은 “어머님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고,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와 교회 일을 먼저 하신 분”이라며 “큰형님이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해서 상을 받는데도 교인 심방 때문에 졸업식장에 오시지 못할 정도로 열성적인 신앙인이셨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는 2012년 소천하셨는데 안 재판관은 어머니가 평생 읽던 세로줄 옛 성경을 확보했다. 지금도 어머니의 손때 묻은 성경이 그의 자택 책상에 펼쳐져 있으며 최고의 유산이라고 전했다.

안 재판관은 현재 분당임마누엘교회(신현필 목사)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다. 주일엔 예배와 더불어 새신자들과 대화하거나 교인들과 교제하는 일을 하고 주중엔 자택과 가까운 곳에서 새벽예배 수요기도회 금요철야예배 등을 드린다. 주일뿐만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 예배도 드리는 그는 초중고 시절부터 이런 신앙이 형성됐다고 했다.

“대전에선 당시 초등학생들도 중학교 입시를 치렀습니다. 6학년 때 학교에선 입시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주일에도 학교에 오라고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척 고민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에 따라 주일에 학교를 가지 않고 교회에 갔고 이 때문에 월요일 선생님께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대전에서 제일 좋은 대전중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주일 성수를 철저히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중고교 때도 주일에 설사 시험을 본다고 해도 교회로 갔습니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신석현 포토그래퍼


검사 시절 신앙생활
85년 1월 초임검사가 된 안 재판관은 토요일 점심 환영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만난다. 당시는 토요일도 일할 때였다. 검사동일체 원칙 아래서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던 검찰 조직인데 그는 첫 회식에서 술잔을 손으로 막았다. 술을 따르던 부장검사가 난감해 했고 분위기가 경직됐지만, 안 재판관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다음엔 술잔에 술은 받아 놓되, 마시지는 않는 것으로 타협이 됐다.

안 재판관은 “그날 사고(?)를 치는 바람에 제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검찰 내에 퍼지게 됐고, 그로 인해 오히려 신앙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대신 행동을 더욱 조심하게 됐고 직무에 더 성실히 임하려 노력했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서 바쁘게 일할 때도 서초동 법조단지 인근의 감리교회에 잠깐씩 다녀오며 수요일 금요일 예배를 드리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지방검찰청의 여러 신우회를 이끌며 검찰 내 복음화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연탄 배달 봉사 당시의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헌법의 성경적 가치
안 재판관은 공동체를 지키는 헌법의 가치를 평생 연구하고 이를 집행하는 검사 직분에 충실했다. 그는 ‘왜 대한민국 헌법인가’ 책을 통해 “우리 헌법의 이념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고 민주주의 원리, 법치주의 원리, 복지국가 원리를 핵심 지도 원리고 두고 있다”면서 “이는 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대헌장,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 등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은 존 로크 등 계몽주의 철학자는 물론 장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미국과 프랑스 민주주의 혁명 가운데 중대한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창조했다는 내용, 유물론이나 진화론에선 찾을 수 없는 인간 존엄에 대한 혁명적 선언이 우리 헌법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전했다.

안 재판관은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정을 주장한 신민회 구성원들 역시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면서 “민주공화정 헌법에 근거해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와 이동녕, 후에 주석을 지낸 김구,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 등 주요 인사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고 전했다.

그 중의 제일은 사랑
이외에도 그는 책에서 전쟁에 대비하는 평화국가 원리, 성해방과 성평등을 주장하는 세력들에 맞서는 문화국가 원리, 포괄적차별금지법 및 사립학교법의 헌법적 쟁점들을 짚는다. 책의 2부에선 민주시민과 정치지도자의 덕목을 다루며 사랑, 공정, 정직, 비전, 소명과 열정, 겸손, 성실, 실천, 절제, 신앙 등 10가지 도를 언급한다. 흡사 사도 바울이 말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떠올리는 이런 덕목들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저술했으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언급한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이요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합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첫 번째 역시 사랑입니다. 이승만, 김대중, 에이브러햄 링컨, 세종대왕, 당의 태종, 모두 경천애인을 깊이 새긴 리더들입니다.”


탈북민 청소년들을 위해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재직 시절 안 재판관은 일심회 간첩단 사건을 다루며 그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기식 검사를 주임 검사로 임명한다. 매일 새벽 교회에서 주범인 간첩혐의 피의자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최 검사는 보름 넘게 묵비권을 행사하던 주범에게 마침내 사건에 관한 자백을 받는다. 간첩단 사건은 증거 대부분이 북한에 있기에 수사가 극히 어렵고 그래서 자백이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채택된다. 당시 주범은 최 검사의 진솔한 마음에 오랜 침묵을 깨고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안 재판관은 “검사와 피의자, 검사와 간첩 사이에도 사랑의 힘이 작동하는 걸 경험했다”면서 “범죄엔 엄정 대처하더라도 피의자는 미워하지 말고 새롭게 변화될 가능성을 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다.

북한을 네 번 다녀오고 수많은 간첩 사건을 다룬 안 재판관은 이번 ‘왜 대한민국 헌법인가’ 책의 수익금 전액을 탈북민 청소년들을 위해 기부할 뜻을 밝혔다. 그는 한국교회가 통일에 대비해 북한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을 전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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