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코앞에 쳐들어왔는데…국군은 탄알 수 세고 있었다 [Focus 인사이드]
지난 2월 초 ‘육군이 사격 후 발생하는 탄피를 전량 회수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 완화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탄피 100% 회수 규정이 훈련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보고 개정에 나선 것이다. 군 복무를 경험한 이라면 사격훈련 중 탄피 분실이 가져오는 여파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기에 가히 엄청난 정책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언론 매체가 해당 소식을 다루었다.
탄피 회수는 물자를 재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총탄의 불법 유출을 막아 총기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격장에서 훈련 교관이나 조교들이 탄을 분배하고 사격 후 반납 탄피의 숫자를 일일이 맞춰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프로세스였다. 이런 이유로 분실된 탄피 한 개를 찾기 위해 드넓은 훈련장을 밤새 뒤집고 다니는 일도 종종 벌어지고는 했다.
덕분에 이제는 어디로 튀어 나갔는지 모르는 탄피를 찾기 위해 난리를 치던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육군은 이러한 규정 완화가 추후 탄피 분실로 인한 사고 유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적용될 것이고, 신병이나 동원훈련은 변동이 없으며, 여러 안전대책도 함께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이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훈련에 사용되는 탄약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빈한했던 초창기 국군은 보유한 물자가 충분하지 않아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탄약의 소모를 억제했다. 예를 들어 6·25 전쟁 개전 직후 벌어진 대한해협 해전에서 승리를 이끈 백두산함도 이때 도입 후 처음으로 3인치 함포 실사격을 해봤을 정도였다. 총기의 탄약도 마찬가지여서 최소한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고, 관리도 빡빡하게 이루어졌다. 다음은 이 때문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38선 전 지역에서 기습도발을 감행했다. 이때 서울로 통하는 주요 축선인 임진강 남단을 담당하던 부대는 제1사단 13연대였다. 당시 화석동에 본부를 둔 제13연대는 예하 제2대대와 제3대대가 38선을 경계 중이었고 제1대대는 연대본부와 함께 주둔하며 예비대 역할을 담당했다. 공교롭게도 훈련 도중에 전쟁을 맞게 된 제1대대는 사전에 수립해 놓은 계획에 따라 곧바로 문산 동북방에 있는 파평산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구축해 놓은 방어진지를 점령한 제1대대는 전방을 경계하며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훈련 도중에 이동한 관계로 비록 탄약을 휴대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차량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임진나루터 인근에 제13연대 탄약고가 있어서 곧바로 보급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진지를 점령 후 많은 시간이 지나고 적들이 점점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탄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초조해진 대대장 김진위 소령은 연대 군수주임에게 탄약 추진을 독촉했다. 당시 군수주임은 제1대대가 이동에 들어갔을 때 즉시 차량을 배차하고 탄약고에 반출을 지시했던 상태였기에 깜짝 놀랐다. 시간상으로는 파평산 진지에 탄약이 이미 도착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군수주임은 탄약고와 유선으로 연락이 되지 않자 곧바로 차를 타고 달려갔다.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탄약고에 도착한 군수주임은 한참 전 배차한 트럭들이 시동을 끄고 인근에 늘어서 있는 것을 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량들의 적재함은 텅 빈 상태였다. 황급히 탄약고 안으로 들어간 군수주임은 기절초풍할 만한 상황을 목격했다. 탄약고에 근무하는 장교 이하 전 장병들이 땀을 뻘뻘 흘러가면서 탄약 상자를 모두 뜯어 헤쳐 놓고 탄알을 일일이 세고 있었던 것이었다.
전면전 상황을 모르던 그들은 평시 탄약 반출 때처럼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놀란 군수주임은 실전 상황임을 알려주고 제1대대에게 즉시 탄을 공급하여 주도록 조치했다. 그렇게 탄약 보급을 받은 제1대대가 병사들에게 분배를 완료한 시간이 10시 30분쯤이었는데, 거의 동시 법원 방향으로 진출하려는 약 1개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고랑포에서 임진강을 도하해 파평산 일대에 출몰했다.
이처럼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탄약으로 제1대대는 적을 성공적으로 격퇴할 수 있었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규정대로 탄알을 세면서 임무를 수행했던 탄약고 장병들을 탓할 수도 없다. 그들도 전면전 상황임을 알았다면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하 부대가 급박한 전선의 상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면, 지휘계통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제1사단이 6·25 전쟁 내내 단 한 번의 전략적 패배를 당하지 않고 꾸준히 전투력을 발휘했던 부대였음에도 커다란 실수를 범한 것인데, 사실 이런 모습은 모든 전쟁 중에 예외 없이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사례다.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가 “아무리 잘 짜인 전술, 작전상 계획이라도 첫 총성이 울리는 순간 쓸모가 없어진다”는 유명한 격언을 남긴 것처럼 사실 전쟁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핵심은 현장으로 뛰어간 군수주임처럼 실수나 착오를 즉시 시정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개전 당시 속전속결로 끝날 것으로 예상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한 것에서 보듯이 유사 이래 대부분의 전쟁은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전쟁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 벌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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