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새 북·러 ‘동맹 조약’ 숨은 노림수는 성동격서
‘모든 것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3년 차에 접어들고, 집권 5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은 왜 하필 지금 평양에 갔을까. 꼭두새벽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항 활주로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이다. 역설적으로 이 장면은 푸틴의 절박한 신세를 보여준다. 자신을 초청한 김 위원장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양새를 연출해 전쟁에 절실한 탄약을 구걸하러 온 처지를 희석하려는 계산이 반영된 것 아닐까.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했다. 모두 23개 조항의 협정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많은 전문가는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협정 제4조에 집중한다. 필자가 보기에 새 북·러 협정(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은 제8조(방위 능력을 강화할 목적 아래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로 보인다.
■
「 ‘방위 능력 강화’ 조항 주목해야
무기 지원, 기술 전수 이어질 듯
양국, 장기 전략 관계 지속 전망
」
푸틴은 “군사기술 협력 진전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도 김 위원장에게 위성 발사장, 전투기 공장, 핵 폭격기와 극초음속 미사일이 있는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두루 구경시켜 주면서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말했던 푸틴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북한은 고체연료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8 신형 미사일을 처음 발사했다. 그러자 러시아의 ICBM인 토폴-M 기술이 넘어갔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대기권 재진입 기술, 핵탄두 소형화, 핵 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핵심 기술 등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낙관한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 “북한이 제공한 탄약 덕분에 러시아가 전장에서 다시 재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제공한 무기와 탄약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위시리스트’를 손에 넣을 절호의 기회를 김정은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새 북·러 조약의 의미를 몇 가지 따져 보자. 첫째, 성동격서(聲東擊西) 수법이다. 어느덧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 됐다. 느닷없는 북·러 조약 소동은 한반도에서 분쟁 위협을 부채질해 서방측의 관심과 자원을 우크라이나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푸틴이 파격적 수준의 조약에 서명한 이유는 한반도 긴장이 핵전쟁이나 재래식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작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러시아가 한반도 분쟁에 개입해야 한다면 우크라이나에 이어 러시아는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도 푸틴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야 미국의 군사 자원을 한국·대만과 인도·태평양 지역에 묶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과 관련된 사항이다. 일부 전문가는 북·러 새 조약이 중국에 골칫거리라고 분석한다. 신냉전 프레임을 경계하는 중국이 북·중·러 3각이 하나로 엮이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지금 글로벌 안보 위기의 초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 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러시아의 패배’다. 그래서 대놓고 러시아에 무기·탄약을 지원하는 북한이 기특할 것이다. 러시아와 유착한 북한이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더라도 여전히 중국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셋째, 핵 문제 관련 사항이다. 핵으로 무장한 러시아가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침략 전쟁을 벌인 순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는 무너졌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러 밀착이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국가안보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러 조약은 양국 관계가 단기적·거래적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전략적 차원으로 지속할 것임을 암시한다. 푸틴은 적반하장격으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 협박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은 분명하다. 뜬금없는 북·러 조약과 러시아의 대북 지원이 ‘치명적 실수’임을 깨닫게 해주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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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특임교수·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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