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하지와 자작나무
핀란드에 잠시 머물고 있다. 호텔 근처 광장에 마침 장이 서 있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역시 꽃시장이었다. 일 년의 반이 겨울인 이 나라에선 과연 어떤 식물을 심고 있을까? 예측대로 수종이 그리 다양하진 않았다. 하지만 꽃이 풍성하기 힘든 열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풍경은 꽃을 사고파는 일이 일상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 좀 특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작나무를 파는 건가, 했는데 맞았다. 잎이 달린 채로 자작나무 가지를 꺾어와 상인들이 파는데 한 다발의 가격이 6유로, 1만원이 조금 안 되는 정도였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몇 묶음씩 사 갔다. 뭐냐고 물어보니 곧 ‘하지 축제’라 이 자작나무로 집안을 장식한다고 했다. 또 사우나를 하면서 자작나무 가지로 몸을 두드려 혈액 순환을 돕는다고 했다.
자작나무는 ‘베툴라(Betula)’라는 속의 식물을 통칭한다. 극강의 추위를 견디는 개척식물이고, 다른 식물을 지키는 역할도 한다. 긴 잎의 줄기는 잔바람에도 앞뒤를 잘 뒤집어, 하부 식물들에까지 빛을 보내준다. 또 벌레를 잘 타지 않아 미라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했다. 더불어 불이 잘 붙고 향이 좋아 자작나무는 최고급 땔감이기도 하다. 그러니 핀란드인들에게 자작나무는 생존에 꼭 필요한 식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잘 아는 핀란드는 그간 국가적으로 숲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써왔다. 헬싱키 대학의 최고 학부가 ‘산림관리과’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민족에게나 기대어 살아온 소중한 식물들이 있다. 우리에게도 솔잎으로 송편을 빚었던 소나무와 일용할 양식이 돼 주었던 콩과 벼 등이 있다. 고마운 만큼 지키고 이어가는 것도 우리의 일일 텐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하지의 핀란드인들이 지켜내고 있는 자작나무를 보며, 지금 내가 잊은 소중함이 무엇인지를 한번 떠올려본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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