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북·러 조약 시대착오적, 오물풍선은 비열한 도발”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로 간의 군사 개입을 명시한 북한과 러시아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대해 “역사의 진보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74주년 6·25 행사 기념사에서 “(두 나라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군사, 경제적 협력 강화마저 약속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인권 문제까지 들춰내며 “주민의 참혹한 삶을 외면하고 동포의 인권을 잔인하게 탄압하면서 정권의 안위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북한을 비판했다. 북한의 연이은 오물풍선 살포에 대해선 “비열하고 비이성적인 도발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며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에 압도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강력한 힘과 철통같은 안보태세야말로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길”이라며 “우리가 더 강해지고 하나로 똘똘 뭉치면 자유와 번영의 통일 대한민국도 먼 미래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선 비판의 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북·러 조약 체결을 겨냥할 때도 그 주어는 북한이었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 러시아를 자극할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서도 별다른 언급 없이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한·미 동맹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엑스코 연회장에서 6·25 전쟁 참전 유공자를 위한 위로연을 개최하며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모든 국민이 영원히 기억하고, 영웅들께서 합당한 존중과 예우를 받는 보훈 문화를 확산해 나가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식 뒤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정박 중인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을 깜짝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이 미국 항공모함에 승선한 건 1974년 박정희,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루스벨트함은 26일 열리는 한·미·일의 첫 다영역(육·해·공·사이버)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 참가를 위해 지난 22일 입항했다.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한 윤 대통령은 루스벨트함 비행갑판 통제실에서 함재기 운용 현황을 브리핑 받고 “루스벨트 항모 방한은 지난해 4월, 저와 바이든 대통령이 채택한 워싱턴선언의 이행 조치”라며 “강력한 확장억제를 포함한 미국의 철통같은 대한 방위공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핵 선제 사용 가능성을 공언하며 한반도와 역내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한·미 동맹은 그 어떠한 적도 물리쳐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루스벨트함이 내일 프리덤 에지에 참가하기 위해 출항한다”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3국의 협력은, 한·미 동맹과 함께 또 하나의 강력한 억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미 항모 방문은 북·러 정상회담 뒤 고조되는 안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지난해 4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워싱턴선언은 양국 간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한·미 핵협의그룹 신설과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정례 배치 등을 담았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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