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이나 먹을 줄 알았던 나, 여태 이걸 몰랐네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기자]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가장 곁에 있는 이야기를 종종 가장 멀리하게 된다. 여성 목수, 용접공, 사서, 화면해설사, 퀴어를 축복하는 목회자, 영 케어러, 요양보호사 등 그동안 다양한 직업군을 책으로 찾고 공부했지만 놓쳤던 직업군이 있다. 사계절 내내 나의 허기를 달래줬던 길 위의 사람들. 이슬을 맞으며 장사하는 사람이라 한자 이슬 '노(露)'를 써서 '노점상'이라 불려온 동네 이웃들. 나의 반려자도 한때 홍대 프리마켓에 주말 장사를 나가던 봇짐장수였다.
봇짐장수들은 위급할 때마다 나타났다. 퇴근 후 끼니를 차릴 힘이 없을 때 길목에서 통닭구이를 실은 트럭으로, 겨울날 붕어빵과 호떡을 파는 포차로 자리를 지켜줬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행위로 일컬어지는 노점상은 고려시대부터 열렸다. 난전, 보부상, 오일장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오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대대적인 단속에 몸살을 앓은 끝에 현재 전국 노점상 규모는 20여만 명, 오일장 천여 개, 푸드 트럭은 5천여 개로 추정된다.
'가난한 이미지'를 감추려는 자는 누구인가
▲ 책 <가난의 도시: 우리 시대 노점상을 말하다> |
ⓒ 나름북스 |
소시민의 삶을 대표하는 노점상들은 서민의 이미지로 기득권층에게 손쉽게 소비되면서도 한편으론 불법의 온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책 <가난의 도시>는 길거리를 점유하는 노점이 과연 합법적 장사인가 의구심을 가졌던 나의 편견을 시원하게 부순 책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노점상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이 책은 도시 빈민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1970년대, "이주한 농민과 가난한 노동자가 싼 가격에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해줬던 노점상의 뼈아픈 역사를 마디마디 마주하게 한다.
1989년부터 사회운동을 시작한 저자 최인기는 노점상 단체에서 30년간 활동해온 '기록하는 빈민운동가'. 이 책을 중반부 무렵까지 읽으면서 왜 제목을 '가난의 도시'로 지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삼국시대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노점상의 역사와 결성 과정, 노점상을 둘러싼 국내 법 정책, 세계의 노점 문화로 구성된 바 이야기의 초점은 가난이 아니라 노점상에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부제에 '노점상'을 표기하는 것으로 보완하고 있다).
왜 하필 '가난'이었을까. 책을 다 읽고서야 제목에 '가난'을 메인 카피로 내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자는 본문 중간중간 하층민, 가난, 하루 벌어 먹고사는 삶 등의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가난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해결한" 노점상의 역할을 상세하게 기술해낸다.
어쩌면 저자는 '가난'은 자본에 의해 치워지고 몰살되는 성질의 형편이 아니라, 길 위에서 일하는 사람이 처한 오늘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난을 '극복해야 할 장애물',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훈장'으로 인식해왔다. 정부는 소시민의 '가난'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노점상의 가판대를 관행처럼 치우고, 편집숍과 백화점을 메인 거리에 내걸며 '도약하는 도시'를 욕망하고 실행해왔다. 나 역시 그 풍경을 문제의식 없이 바라봤던 것 같다.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 않는 건물 뒤로 가난한 사람들은 매년 치워지고 있었다. 저자는 이 현실을 담담하게 거리로 다시 불러낸다. 변방의 이야기를 책으로 건네며 가난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가난의 도시"라는 책제목은 그래서 새롭다. 내 안의 편견과 모순을 바로 보게 해준다.
노점상이 탈세?... 통계보니 월평균 소득 약 183만 원
"노점 운영 가구를 대상으로 한 경제 상태 조사(<코로나19 시기 노점상의 소득 감소와 삶, 그리고 대안>)에 따르면 2020년 월평균 가구 총소득이 182만 2000원이었고 이들 가운데 집을 소유한 가구는 38.7%뿐이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4분기의 전체 연평균 가구소득은 464만2,311원이고, 전국 평균 자가 점유 비율은 2020년 기준 57.3%이다. 이는 노점상이 가난한 이들임을 실제로 증명하는 지표다." - <가난의 도시: 우리 시대 노점상을 말하다> 중에서
대다수 시골에서 대도시로 삶을 개척하러 온 빈민들이 고투 끝에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노점. 먹고살기 위해 끄는 수레와 식자재, 천막 등은 사시사철 격변하는 날씨를 버텨내기 위한 노동자의 방편이자 필수 도구다. 용역을 불러 이를 부수고 철거를 일삼는 행위는, 평범한 회사원을 하루아침에 해고하고 일할 자리를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길은 깨끗해야 하니 노점은 철거돼야 마땅하다는 시각을 한 꺼풀 벗겨내 보자. 계약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할 자리를 치우고 해고하는 인사도 온당한 논리는 아니기에, 우리는 여기서 두 사람의 처지가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문제는 노점상의 위생 수준이 아니라,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노점상에 얽힌 법 기준 마련일 것이다. 특수고용직과 계약직에 대한 법 정책이 언제나 시급하듯이.
노점상들은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한다. 소득세법 시행령 제 211조 4항을 살펴보면 "노점상인·행상인 또는 무인판매기 등을 이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가 공급하는 재화 또는 용역"에 대해 "계산서 또는 영수증을 발급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부가가치세법 등 여러 세법 시행령에서 "(노점상이) 명확히 세금계산서 발급 의무, 영수증 발급 의무, 지방세 주민세 균등분 납부 의무의 면제 대상임을 적시하고 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도로 점용료를 내는 노점상도 있다. 2018년 실시된 노점 허가제는 '권고' 지침에 가까운데, 자치구 정책이 워낙 들쑥날쑥인 데다 허가제 정책을 따르더라도 합법적 영업을 위한 기준이 까다롭고, 과태료를 부과 받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며칠 동안 번 돈을 모두 납부해야 할 만큼 액수가 크다. 이 제도는 대체로 노점상의 '단속'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점상들이 세금을 내고 싶어하는 이유도 바로 이 과태료 때문이다.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다른 데 있다. 노점상은 언제나 거리 위에 있었고, 민주주의 역사와 궤를 함께해왔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길 위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시민과 상생해온 역사가 내가 미처 모르는 곳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저자는 그 물결의 내력을 구석구석 보여 준다.
"…계엄군이 남자든 여자든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죽이고 때리고 하니까.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중략) 양동시장 노점상들이 장사를 접고 달려갔지요. 처음엔 쌀을 걷다가 나중에는 없는 주머니 사정에 한푼 두푼 모아 주먹밥을 만들어서 도청으로 날라 보냈어요."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신촌과 이대, 그리고 홍대 근처 노점상은 탄핵을 기원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무료 떡볶이 시식 행사'를 열었다. (중략) 이들은 추운 겨울 시민에게 기꺼이 따뜻한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나눴다."
- <가난의 도시: 우리 시대 노점상을 말하다> (최인기) 중에서
1980년 민주화항쟁으로 들끓었던 광주의 양동시장, 여성 노점상들은 시민군을 먹일 주먹밥을 만들어서 이웃들의 허기를 달랬다. 저자는 "여성 노점상들이 나선다"라는 장을 별도로 구성했는데, 일찍이 한국전쟁을 겪은 할머니 노점상들의 활약을 엿볼 수 있다. 짱짱한 기개로 시장통을 누비는 언니들의 저력이 생생한데, 노점상 대다수가 장년층 이상의 여성인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언니들이 철거 인력에 맞서 오늘을 버티고 있다.
▲ 영화 <왕십리 김종분> |
ⓒ 인디스토리 |
"1980년대 이래 스스로 조직하고 단속에 맞서 저항하며 비하를 거부하고 쟁취한 단어"가 노점상이라는 것, 길 위에서 장사하는 삶을 떳떳하게 여기고 싶은 마음의 내력이 본문마다 대화체로 상세히 구술돼 있다. 이 책의 백미다. 노점상은 1989년 명동성당에서 37일간 농성한 끝에 지금의 '가로 판대매(가관대)'를 허가 받았다. 노점상은 거저 세워진 것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다.
저자가 소개한 다큐멘터리 <왕십리 김종분>(2021)에는 노태우 정권하에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 김종분의 하루들이 담겨 있다. 장사가 서툰 남편 대신 길에 좌판을 펴놓고 생계를 책임져온 한 양육자의 청년 시절과 자녀를 여윈 이후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손님이 몇 만원씩 외상을 해도 채근하지 않는 인품, 이웃 노점상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할머니의 고고한 얼굴을 보며 각박한 세상을 닮아 가는 내 하루를 반성했다.
노점상은 억척스럽지도, 불법이지도 않았다. 사람이었고, 엄마였다.
'벌금 아닌 세금'을 냄으로써 사회경제적 지위를 바로 세우고, 시민들의 통행권과 청결권에 대한 의무를 정립하고자 노점상들은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요구하고 있다. 이 법은 지난 2022년 입법 동의 청원을 통해 순항을 타는 듯했으나 21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폐기됐다.
길에 나와 땀 흘릴 수밖에 없는 내력을 나는 손톱만큼이라도 공부하려고 애쓴 적 있을까. 불법 타령을 하기 전, 이들을 거리에서 치워버리기 위해 구분짓기의 색안경을 씌운 기득권이 그들의 일터에 세운 빌딩과 그로 인해 이익을 취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보는 눈을 밝혀야 할 것이다.
나의 노점상 공부는 계속될 것이다. 지갑이 단출할 때마다 뜨끈한 끼니가 되어 준 가게들이 여기에 있다. 내가 사는 집 골목길, 퇴근길 횡단보도 앞 일렁이는 불빛으로. 역사가 그랬듯이, 노점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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