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폐지? 어떤 학문이든 후학 기르는 게 국가에 이롭다"

임유리 2024. 6.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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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 인문계열이 살아남는 방법 "융합전공 개척해야"

[임유리 기자]

오늘날 인문대학은 안녕한가? 2024년 4월 24일 덕성여대가 2025학년도부터 불문과와 독문과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인문계열의 존속에 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덕성여대 측은 경영난으로 수요가 적은 비인기 학과를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학과 교수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었다.

비단 덕성여대만이 아니다. 부산대 또한 2024학년도부터 불어교육과와 독어교육과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있으며, 경북대 역시 2025학년도부터 불어교육과 신입생 선발을 중단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5년 동국대가 독어독문학과를 폐지했고, 2009년 건국대가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를 통합해 EU문화정보학과를 신설했다. 2020년에 한국외대가 영어통번역학부 등 4개 학부⋅전공을 융합인재학부로 통폐합했고, 2021년에 삼육대가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통합했다. 2022년엔 동덕여대가 프랑스어과와 독일어과를 통합해 유러피언스터디즈 전공을 신설했다. 인문계열, 그중에서도 어문계열의 이러한 움직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 임유리
무전공 제도가 2009년 이후로 부상하면서 되려 인문대학의 축소를 촉발한다. 무전공 제도란 학생이 대학에 입학할 때 전공 구분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수업을 듣다가 1학년 이후 전공을 결정하는 제도로, 2009년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법학과가 폐지되고 법학전문대학원이 신설되면서 설치된 전공이다. '자율전공', '자유전공', '열린전공' 등 학교마다 설치된 무전공 제도의 정식 명칭은 제각각이나 본질은 같다. 201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문송합니다'라는 표현에도 문과에 대한 축소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문과는 언제부터 죄송해야 했을까?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인문학은 그 위상이 매우 높았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천시되는 경향이 있었던 만큼, 과거에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위상에 격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인식은 완전히 역전된다. 실용주의와 경쟁적 발전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히면서 인문학의 입지는 좁아졌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인문학의 수요도 줄어들었고, 급기야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해당 현상의 원인
   
원인은 무엇일까?

조만수 교수(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는 "수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용주의가 사회 정서로 자리잡고, 취업난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인문계열의 수요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정부 정책도 인문학의 위기를 촉발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주도한 대학 구조 개혁과 재정지원 사업은 취업률, 학생 충원율 등을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했다. 이러한 지표에서 비교적 불리한 인문계열은 구조조정 우선 대상이 되었다. 해당 정책은 학문 불균형을 심화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AI(인공지능)의 발달로 손쉽게 통·번역이 가능해지고 학령인구 또한 감소한 것도 인문학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를 "살아남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유발한 현상"이라고 조 교수는 해석했다. 인문계열 스스로 이러한 대우에 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하지만 최하위 인문계열 학과가 사라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국립대 독어독문학과 B교수는 오히려 "다른 학과가 존폐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말한다. 찬밥 신세였던 인문계열 학과가 없어지면, 그 자리를 다른 학과가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과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되는 곳이 인문학과 많이 연관되어 있다"는 B교수의 해석을 고려하면, 결국 인문계열 학과 내에서 다음으로 통폐합될 순서를 기다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학과 폐지는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시대적 흐름으로 보는 이 현상
    
인문학은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기초학문이다. "오래전부터 교육 단위로서의 인문학이 위협을 받아왔을 때 지역학적 발상부터 학과 통폐합까지 다양한 제도가 시도되었으나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고 조 교수는 지적한다. 조 교수는 "변화의 요구가 대부분 인위적이었거나, 우리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음을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B교수는 "기초학문이 있어야 실용학문이 있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무전공 제도를 기준점으로 하여 인문학의 위기 현상을 바라봤다. 무전공 제도는 진로 및 적성 탐색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2009년부터 도입됐지만, 특정 학과로의 쏠림 현상을 야기한다는 비판 역시 발생했다.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교수회는 충북대학교 본부에서 추진하는 자율전공 제도 시행을 앞두고 2024년 3월 20일 '인문대학은 어디까지 희생해야 합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B교수는 "대학은 학과나 전공 폐지보다는, 각 전공을 존중하며 균형있는 전공의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첨언했다. 4년제 대학 어문계열 재학생 C씨(24) 역시 "인문학의 효용이 적을지라도 가치가 없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어떠한 학문이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는 무조건 이롭다"는 생각을 밝혔다. 기반이 미비하면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학문을 융합하여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기
ⓒ Pexels
 
인문계열이 현재 적지 않은 우려를 야기하는 상황에서 우려를 우려에서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교수는 "인문계열 학과들이 융합전공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전공 학문을 활용하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현시대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새로운 융합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결론 또한 나온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인문학도 발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 역시 새로운 시대에 인문학이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를 관건으로 삼으며 "인문학뿐 아니라 학문 전체에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인문학은 인간적 가치, 기계,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과 만나게 하는 사회적 모멘텀"이고 "결국 인문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하다"라고 봤다. 학문의 변화는 비단 인문계열에만 적용되는 결론이 아니다.

한편 시대적 대안으로서의 무전공 제도는 어떨까? B교수는 무전공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강의실이나 교수 자원 등 학생들을 관리할 수 있는 운영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도의 관리가 부재하면 오히려 소속 학생의 정체성 모호, 중도 탈락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에게 사유와 탐색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문학은 기초학문이 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대사처럼,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고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우리가 삶을 사는 목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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