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김은미 기자]
▲ 책표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
ⓒ 창비 |
김미월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소설을 읽고 운 것이 대체 얼마 만의 일인가'라고 첫 문장을 시작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뒤 첫 문장으로 쓰고 싶었던 바로 그 문장이었다. 텍스트가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몰입이 가장 중요하다. 그 상황에, 그 장면에, 등장인물의 마음에 깊숙이 들어가야만 가능하다. 이 책은 온전히 독자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사회주의자, 빨치산, 유물론자였던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이 소설은 아버지를 애도하는 과정,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와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이다. 살아있는 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이,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마음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연좌제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았던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슴 아팠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힘겹게 살았던 아버지 고상욱의 삶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42쪽)'라고 말하고,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며 타인들에게 베풀었던 호의를 합리화했던 아버지.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의 모르쇠에 상처받지 아니하고,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라고 믿었던 아버지. 그런 그였기에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찾은 조문객들, 사상과 이념은 다르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추모하는 조문객들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로웠던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세상 속 촘촘한 인연의 그물망을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딸은 그 낯섦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누구에게나 죽음의 순간은 찾아온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고인의 삶은, 조문객들의 모습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 삶을 뒤돌아 보고 앞으로의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이 소설의 압권은 마지막 챕터에 있다. '작은아버지가 풀썩 주저앉으며 아버지의 유골을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홉 살에 어긋난 형제가 칠십 년 가까이 지나 부둥켜안고 있었다(249쪽)'. 이 문장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형제는, 칠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부둥켜안고 화해하고 싶었을까. 용서한다고, 이해한다고, 미안하다고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유골함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작은아버지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되어서 나도 같이 울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265쪽)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느 한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내 아버지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 무수한 질문들이 머릿속에 뒤엉켜 있는 가운데 내 마음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단어들은 '후회' '미안함' 뿐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해 독자들이 이렇게 귀한 책을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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