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술 마시는 주부 알코올 중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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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 기자]
키친드링커 : '주방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란 뜻으로 주로 가족들이 없는 시간대에 집에서 지속적으로 혼자 술을 먹는 주부나 술을 과하게 마시는 여성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출처: 시사상식사전 terms.naver.com)
영어에는 없고, 우리말과 일본어에 있는 용어이다.
▲ 부엌에서 홀로 술마시는 여자 키친 드링커, istock에서 구입하여 편집한 사진 |
ⓒ lemono |
어릴 적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던 아저씨가 오시면 저녁 식사 시간이 길어졌다. 말 없던 두 분은 술이 들어가면 비로소 표정이 풀리고 웃으면서 끝없이 대화하셨다. 엄마는 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옆에서 꼬박꼬박 졸았지만, 어린 우리들은 그 상 주위에 쪼르라니 앉아서 어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술을 즐기셨던 두 어른은 수주(樹州) 변영로의 <명정사십년>, 무애(无涯) 양주동의 '문주반생기', 조지훈의 '주도유단(酒道有段)'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박장대소하셨다.
문학과 외국어에도 조예가 깊어 '비교문학'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도 아저씨에게서였다.
두 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나는 문과 지향인데 그때는 몰랐다. 이끌어 주는 사람 없어 덜컥 이과로 갔다 다시 문과로 돌아오기까지 20년 걸렸지만, 술자리 곁의 인문학적 대화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70년 말에 대학을 다닐 때 무지막지하게 술을 마셨다. 금요일 오후 세 시 수업을 마치면, 과 전체 학생이 '으악새'에 모여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왜 그렇게 마셨을까? 굳이 시대 핑계 댈 필요도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에겐 취미나 여가로 할 일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송창식의 옛 노래 '고래사냥'처럼 젊은이들의 위로 거리가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비율로 따지면 지금보다 더 적은 수가 마셨고, 덜 자주 마셨다. 폭음은 했지만, 돈이 없어서 자주는 못 마셨다.
대학 시절 몇 년 폭음했지만, 내 친구들 모두 이십 대 중반에 결혼했고, 결혼하고 나면 음주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도 아이들 낳고 기를 때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멋모르고 들이부은 술이라 술맛도 몰랐고, 그립지도 않았다.
저도 한때는 키친드링커였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 낮에 매일 소주 반 병을 마셨지요. 하지만 지금은 식사하면서 가끔 와인 한두 잔 하는 정도입니다. 일단 의지로 극복할 힘이 없는 단계라면 약 드시기를 권합니다. 계속 이 상태면 아이들이 슬퍼져요. 그리고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해요. 살아야잖아요.
마흔 무렵, 집안 어른이 위암이어서 수술하고 병원에 계실 때였다. 나밖에 간호할 사람이 없어서 매일 오전 암 병동에 갔다. 거기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큰 충격이었다.
병실에서 위내시경을 하며(그때는 그게 가능했을까? 목에 커다란 관이 끝도 없이 들어갔었다) 노인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위가 없던 내 또래 여자는 눕지 못했는데 결국 죽었다. 또 위암 수술하는 모습을 모니터에서 생중계해서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아야 했다.
처음으로 심각하게 맞닥뜨렸던 생과 사의 모습들을 소화할 수 없었다. 매일 병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마트에 들러 소주를 샀다. 술은 진통제가 되어 취하면 좀 편해졌고, 아이들이 올 때 쯤에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술은 고통과 만나서는 안 된다. 남자의 음주와 다르게 여자, 특히 주부의 음주는 정서적인 이유가 크다. 힘들었던 시절에는 나도 혼자서 밤에 술 마시곤 했다. 독한 술일수록 좋아했다. 그래도 살려고 그랬는지, 어느 시점이 되자 술을 한 모금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남동생 모두 대주가였고, 두 사람 다 암에 걸렸는데 그걸 명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금주 선언하고 지켰다. 그 시기가 지나니 혼자 있을 때 전혀 술 생각이 안 났다. 이제 나에게 음주 문제는 없다.
내가 마셔봐서 그런지, 젊은 주부들이 우울증과 음주와 불면으로 힘들어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우리 때는 우울해도 그저 우울한 거지, 우울증이란 이름이 없었다. 요즘은 약도 좋고 하니, 병원 가서 꾸준히 약 먹으면 우울증도 낫는다.
친한 친구가 어느 날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걸 알았다. 의사에게 달려가서 살려 달라 하고, 주는 대로 꼬박 일 년 넘게 약 먹었다.
"의사가 그만 먹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약 먹어야 해."
친구는 그걸로 완치되고, 그 후엔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았다. 우울증엔 답이 없다.
그러니 젊은 그대여. 술 대신 약 먹고, 이 시기를 잘 넘기시기를.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술도 약도 다 끊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니. 간절하게 그대에게 바란다.
술과 담배와 스트레스를 달고 살며, 사업을 하신 아버지는 70대에 돌아가셨고, 술은 즐겼지만 담배는 하지 않은 아저씨는 80대까지 사셨다. 술 담배 둘 다 안 하신 어머니는 90을 바라보신다. 주변 어른들의 수명을 보는 내 시선이다.
하지만 장수보다 삶의 질이 문제 아닌가. 가족을 슬프게 하고, 나를 파괴하는 부엌 음주를 그만두고 햇볕 속으로 나서보자. 모든 것은 지나가고, 살아있는 한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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