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주문 외웠더니 죽은 엄마가... '링' 감독의 한계

김성호 2024. 6.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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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63] <금지된 장난>

[김성호 기자]

아브라 카다브라. 수리수리 마수리. 엑스펠리아르무스. 수퍼칼리프래질리스엑스피알리도셔스...

위 말들의 공통점은? 주문, 그것도 아주 큰 명성을 지닌 주문이란 것이다. 주문이 무엇인가. 술법, 또 마술에 능통한 이가 그를 부리기 위해 쓰는 말이다. 주문을 외우면 술법이, 마술이 작동한다.

때로는 악령을 쫓고 부르며, 때로는 상대를 해하고, 때로는 그저 조금 행복해지기 위해 쓰는 온갖 주문들이 존재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주문이 태어나고 저버린 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이성으로 닿지 않는 힘을 언제고 갈구해 왔기 때문인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 금지된 장난 포스터
ⓒ 도키엔터테인먼트
 
죽은 이 되살리는 오래된 주문

수많은 주문들 가운데 '엘로임 에사임 Elohim Essaim'이 있다. 이따금 소설과 만화, 영화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 주문은 나름대로 제법 뿌리가 깊다. 엘로임(또는 엘로힘)은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이 믿는 신, 즉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그렇다면 뒤에 붙는 에사임은 무엇인가. 히브리어에서 에사임이란 말이 따로 없으므로, 비슷한 소리로 음차하였을 가능성을 따져 살피면 가장 유사한 말이 'Etz Hayim', 엣츠하임 쯤이 된다. 직역하면 '생명의 나무'가 되는데 작품들에서 엘로임 에사임이 쓰이는 양태를 살펴보자면 얼추 맞아떨어진다 하겠다. 근래 일본 작품들에서 종종 엿보이는 엘로임 에사임의 주문은 신의 힘을 빌려 죽은 이를 되살리는 기원으로써 쓰이기 때문이다.

뭐, 그 신이 오늘날 유력 종교의 신이냐 몇몇 작품군에서 쓰이는 흑마법 류의 못된 신이냐를 따지는 건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아니고 말이다.

<금지된 장난>은 태국 등 동남아에 공포물의 주도권을 내준 일본 영화계가 야심차게 내보인 신작 공포영화다. 1999년, 세기말이 주는 어딘지 음울한 분위기 가운데 역대급 공포영화 <링>을 선보인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4반세기의 시차를 두고 찍어낸 작품이다. 25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그에게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을지 주목하는 이가 적잖다.
 
▲ 금지된 장난 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링> 만든 그 감독, 이번엔 어떨까?

원작은 시미즈 카르마의 2018년 작 <금지된 장난>이다.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단번에 주목받는 장르소설 작가로 떠올랐을 만큼 작품의 완성도도 인정할 만 하다는 평가다. 참신한 주제에 더해 <파묘>로 한국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오른 생령이란 설정, 주문이라는 소재에 이르기까지 공포영화팬들을 유혹하는 요소가 여럿이다.

이하라 나오토(시게오카 다이키 분)는 아내와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회사원이다. 유순한 아내와 착한 아들과 함께 하는 삶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이것이 바로 행복인가, 나오토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자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 듯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오토의 행복이 산산이 깨져나가는 일이 벌어진다. 나오토가 직장에 간 사이, 아내 미유키(메구미 분)와 아들 하루토(쇼가키 미나토 분)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연락을 받고 달려간 병원, 미유키는 이미 숨이 끊어졌고 하루토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지만 하루토의 숨마저 마침내 끊어졌을 즈음, 하늘에서 벼락이 치고 바이탈 신호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기적, 아들 하루토가 죽음의 문턱을 건넜다가 돌아온 것이다.

영화는 하루토의 귀환 이후 벌어지는 어딘지 섬뜩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오토의 집엔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데, 그곳에 도마뱀 같은 온갖 생물이 살고 있다. 어느날엔가. 하루토가 도마뱀 꼬리를 가져와 나오토에게 내보인 일이 있다. 도마뱀 꼬리는 몸통에선 잘렸지만 꿈틀꿈틀 요동을 치고 있다. 아이에겐 신기하기만 하지만, 어른의 눈엔 어딘지 섬뜩하기까지 한 모양새. 그러나 나오토는 선한 사람이다. 꼬리도 몸통처럼 잘려도 다시 잘아나느냐 묻는 하루토를 실망시키려 하지 않는다. 땅에 묻고 주문을 외면 몸통이 다시 자라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슨 주문인지를 묻자, 히브리의 오랜 주문 엘로임 에사임이라 답한다.
  
▲ 금지된 장난 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일본 공포영화와 오래된 주술의 만남

그저 철없던 시절 재미있는 일화쯤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이 이야기가 사고 뒤 의외의 동력을 얻는다. 교통사고로 사체가 훼손된 엄마 미유키다. 어찌된 영문인지 하루토가 병원에서 엄마의 잘린 손가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과거 도마뱀 꼬리를 묻고 매일 마음 담아 주문을 외웠던 것처럼, 엄마의 손가락을 정원 흙 아래 묻고 기도한다. 마음을 다하여,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기도한다. 그리고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

제목 그대로 '금지된 장난'이다. 신의 힘을 빌어 인간이 사는 세상에 죽은 이를 되살려내는 이야기가 이 영화 가운데 펼쳐진다. 생령이라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존재를 <금지된 장난>에서도 적극 활용한다.

나쁘게 보면 좀비이지만 좋게 보자면 피노키오 또한 생령이다. 흙으로 빚은 뒤 숨을 불어넣은 아담과 그 갈비뼈에 다시 생기를 넣어 만든 하와 또한 생령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은 그 스스로를 생령으로 보아온 역사가 길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크리처를 창조한 것도, 현대의 인간이 AI를 만들고 발전시켜 가는 것도 생령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일이다. 결국 기독교의 신이 저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빚었듯, 인간 또한 저와 닮은 누구를 갖고자 하는 존재가 아닌가. 과학기술이 아닌 엘로임 에사임의 주문이란 점이 달랐을 뿐.

<금지된 장난>은 나오토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 위에 그와 엮인 오랜 관계를 내려앉힌다. 다름 아닌 과거 나오토를 연모했던 여자 히로코(하시모토 칸나 분)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녀에겐 다른 데는 이야기하지 못한 사연이 하나 있다. 그녀가 나오토를 짝사랑한 뒤 오랫동안 낯선 존재로부터 위협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스토킹쯤으로 생각했지만, 차츰 드러난 정황은 그것이 나오토의 아내 미유키의 섬뜩한 능력으로 빚어진 일임을 알도록 한다.
 
▲ 금지된 장난 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천년돌' 하시모토 칸나의 연기변신

이미 죽은 미유키가 산 히로코를 위협하는 상황, 또 나오토와 그 아들 하루토에게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영화는 마침내 동양적 오컬트, 인간세상으로 넘어온 악을 제거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본격 화한다.

<금지된 장난>의 흥행을 위해 업어온 일명 '천년돌' 하시모토 칸나의 연기가 여타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이어온 참극을 빚지는 않았단 점은 기록할 만하다. 다분히 일본 아이돌스러웠던 외모는 어느덧 예쁨이 두드러지지 않는 배우의 아우라를 입었고, 작품 안에 녹아들어 이야기를 보다 설득력 있게 이끌어 간다. <금지된 장난>이 그녀의 존재로부터 아주 약간은 더 나아졌다 해도 좋겠다.

장단이 분명한 영화다. 설정에서 알 수 있듯, 근래 일본 공포영화 가운데 제법 참신함이 엿보이는 소재, 또 안정적인 장르적 장치에 기대고 있단 점은 장점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하시모토 칸나를 위시한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도 살필만한 지점이 있다.

다만 <링> 이후 그 그림자를 한 차례도 벗어나지 못했다 평가받는 나카다 히데오가 연출과 편집 모두에서 제 한계를 또 한 번 드러냈단 게 안타깝다. 25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의 연출은 세기말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현상유지도 못되는 낙후이고 쇠락이다. 관객의 사고의 속도며 취향까지 따라잡지 못한 채 과거의 공식을 반복하고 있는 그의 작품이 장르의 기본인 공포마저도 붙들지 못하고 있단 점은 이 영화가 의도한 공포보다도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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