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레슬링 선수 정지현 "코인 투자로 전 재산 80% 잃어"… '중독' 진단 내려질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전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 정지현(41)이 투자 실패로 많은 돈을 잃었다고 밝혔다.
정지현은 24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에 출연해 "투자를 잘못해서 집안이 휘청이는 상황이 왔다"고 말했다. 이날 레슬링 체육관을 7개월째 운영 중이라고 밝힌 그는 체육관 창업 이유에 대해 "투자를 잘못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코치 월급만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어서 (체육관을 열었다)"고 고백했다. 정지현은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며 전 재산의 약 70~80%를 잃었다고 했다. 그는 "그걸 (암호화폐 투자)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더라"라고 회상했다. 방송에 함께 출연한 아내 정지연은 "저는 투자를 반대했다. 제가 반대하니 상의하지 않고 투자를 해서 손해를 많이 봤다"며 속상해했다. 정지현은 "제가 투자에 있어서 공격적이었다. 앞으로는 (아내 말을) 잘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현의 투자 행위가 일종의 중독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중독은 특정 행동을 그만두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해 일상에 문제가 생긴 상태를 말한다. 자제력을 잃어 자신에게 해로운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주식·코인 중독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 뿐, 의학계가 공인한 '정신 질환'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들 증상이 향후 질환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해외에선 이미 고위험 주식 거래와 암호화폐 거래가 도박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도박에 친숙한 사람일수록 고위험 주식 및 암호화폐 거래에 참여할 가능성도 크다는 게 근거다. 2019년 '펍메드(Pubmed)'에 게시된 논문에 따르면 도박 중독 상태가 심각하고, 스포츠 도박과 고위험 주식 거래에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암호화폐 거래 빈도가 높았다. 거꾸로 고위험 주식 거래에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도박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주식·코인 투자에 과몰입하는 사람 대부분이 운이 아닌 본인 능력으로 돈을 벌었단 믿음에 빠져있는 게 문제다. 물론 분석력과 투자전략이 있다면 투자에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큰 돈을 벌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투자자들이 분석력과 전략을 통해 이득을 볼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이 오류의 핵심이다. '머리를 잘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은 도박꾼뿐 아니라 주식·코인 투자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2016년 '도박 경영경제학(gambling business and economics)' 저널에 게시된 논문에 따르면, '분석력'에 따라 성과가 좌우된다고 여겨지는 ▲포커·블랙잭 등 카지노 테이블 게임 ▲스포츠 배팅 ▲경마 베팅을 더 선호하는 도박꾼들이 주로 고위험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 게임은 ▲슬롯머신 ▲인터넷 빙고 등 100% 운에 의존하는 게임과 비교했을 때 분석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 뿐, 고수익을 내는 데 투자자 능력이 결정적이라 보긴 어렵다.
적당한 주식·코인 거래는 좋은 투자이지만, 투자에 매몰돼 거래 행위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정신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주식·코인 가격 등락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일과 중에 반복적으로 거래하는 정도라면 이미 과한 상태다. 주식·코인 차트를 확인하느라 일상에 지장이 생기거나, 투자에 쓰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해도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주식·코인 과몰입 치료를 위해 내원하면 약물을 통한 치료보다는 인지 행동 치료와 같은 정신 치료 기법이 시행될 확률이 높다.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 치료에 사용하는 약물을 쓰면 투자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임상 연구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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