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에서 공인 "총격에 의한 최초 사망자는..."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24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대강당에서 종합보고서 대국민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국회의 추천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구성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2019년 12월 27일부터 2023년 12월 26일까지 조사한 결과를 담아 지난 24일 공개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총격에 의한 최초 사망자는 1945년 생인 김안부로 확인됐다.
이 보고서가 말하는 '최초 확인'은 이번 보고서에 의해 최초로 알려진다는 의미도 되지만, 국가 차원에서 최초로 공인된다는 의미도 된다. 그간 민간 조사로 밝혀졌던 내용이 위원회의 활동에 의해 국가적 공인을 받게 됐다고 이해해야 할 부분들도 보고서에서 발견된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김안부는 1995년 검찰 수사에서는 5월 24일 타박사로 보고되었으나, 5·18조사위에 의하면 5월 19일 밤 광주양조장 공터(현 광주공원 인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그가 희생된 시각은 19일 밤 10시경이다. 계엄군의 최초 발포가 있은 그날 오후 4시 50분경으로부터 약 5시간 만에 최초의 총격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김안부는 그날 아침에 일을 나가기 싫어했다. "그러나 한푼이라도 더 벌어오자는 아내에게 떠밀려 자신은 공사 현장으로, 아내는 노점상 일을 하러 집을 나섰다"고 5·18기념재단이 운영하는 5·18사이버참배 홈페이지의 김안배 코너는 말한다.
"그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시위대가 모여 '계엄령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광주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그때 공수부대가 최루탄을 쏘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구경하는 사람이나 시위하는 사람 모두 공수부대의 표적이 됐다."
성폭행을 개별 군인 일탈로만 볼 수 없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계엄군이 시민들의 상체를 겨냥해 사격한 점과 관련해서는 "총상 사망자(135명) 중 피격 부위가 한 곳인 단발(1발) 사망자는 88명이며, 이 중 84명(95.5%)이 상체 부위가 피격되었음을 확인하였다"고 알려준다.
신체 여러 곳을 피격당하면 최초 피격 부위를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단발에 의한 희생자만 따로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희생자 88명 중에서 84명이 상체 부위만 피격됐다. 위원회는 "발포할 경우 하복부를 겨냥하도록 되어 있는 자위권 수칙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고 말한다. 계엄군이 국민에게 총을 겨누면서도 인명 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주의를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위원회는 전두환 사망(2021.11.23)으로 중단된 사자명예훼손재판의 쟁점도 다뤘었다. 헬기에 의한 기총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에 대해, 전두환은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빗자루로 소제하듯 기관총을 쏘는 게 가능했겠느냐며 터무니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전두환 회고록> 제1권에서 그는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몰아붙이며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재판을 받게 됐다. 이 문제에 대해 위원회 보고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헬기 사격과 관련하여, 500MD 헬기의 경우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사격이 있었음을 확인하였고, AH-1J(코브라)의 경우 사격의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UH-1H의 경우 전일빌딩에 대한 사격 사실이 충분히 인정됨을 확인하였다(소수의견 있음)."
위원회는 계엄군이 희생자들을 수습하지 않고 암매장한 사실도 보고서에 담았다. "광주교도소를 비롯한 계엄군이 일정 기간 주둔하면서 작전을 전개했던 지역에서는 민간인 집단학살사건과 함께 일부 민간인 희생자들의 시체를 암매장한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보고한다. 전두환 신군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고 그 시신마저 수습하지 않는 이중삼중의 만행을 저질렀음이 공인된 것이다.
위원회는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을 개별 군인들의 일탈로만 볼 수는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시위진압 현장에 있던 일부 지휘관들이 '여자들의 옷을 탈의'시킬 것과 '죽지 않을 정도'로 폭행해도 무방하다는 취지의 지시를 하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 뒤 "대검을 사용하여 민간인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의혹도 부상자의 상처 부위와 복수 계엄군의 진술로 확인했다"고 보고한다.
계엄군의 성폭력이 집단적으로 일어난 사례가 많다는 게 위원회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계엄군 등이 민간인을 상대로 상급자의 지시나 그 어떤 조직적 목적을 가지고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하였다고 볼 만한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면서도 이런 일이 후미진 곳에서 한두 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개적인 데서 집단적으로 일어났다고 보고한다.
"계엄군 등의 작전 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작전계획과 지침, 지시에 의한 시위대 체포와 호송 및 관리, 가택수색과 임검, 사전 정찰과 매복 등 수명씩 조를 이뤄 활동하는 상황에서 발생했으며, 단독으로 이뤄지기보다 2~5명의 인원이 가해행위에 동조되거나 묵인·방조한 특징이 있다."
▲ 24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대강당에서 종합보고서 대국민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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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주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것이 있다. 계엄군의 광주 폭격 계획설이 그것이다. 광주에 있었던 아놀드 피터슨 선교사는 증언록인 <5·18광주사태>에서 주한미군 공군의 데이브 힐로부터 받은 연락을 토대로 "후에 나는 그로부터 한국 공군이 공격의 일환으로 도시에 폭탄을 떨어트릴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광주 폭격설에 대해 위원회는 "개연성을 확인하였으나, 의혹의 사실 여부를 최종적으로 입증해줄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공군 지휘부가 제1전투비행단에 무장한 전투기와 야간작전용 수송기를 추가로 비상대기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5·18조사위는 그 목적이 민간인의 시위를 직접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보고서는 군사전문가 지만원씨가 제기한 5·18 북한 개입설에 대한 검증 결과도 내놓았다. 지만원씨의 주장은 구체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제한된 군사지식"에 기초한 것이라는 게 위원회의 결론이다.
지씨는 광주 시민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사진 자료를 근거로 북한 특수군의 광주 침투라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고교 교과과정에 교련 과목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성인 남성 대다수가 군대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그 당시 한국의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씨는 시민군이 장갑차를 운전한 것도 북한 특수군과 연결지었다. 위원회는 "일반인의 장갑차 운전도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면 약간의 연습만으로 조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보고한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장갑차를 운전하는 광주 예비역들을 북한 특수군으로 몰아세우는 지씨의 주장은 광주 시민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예비군의 역량을 너무 낮게 본 데서도 그의 오류가 생긴다는 점을 보고서는 보여준다.
위원회는 새로운 사실을 어느 정도 밝혀내긴 했지만, 발포 책임과 관련된 지휘 체계 등은 여전히 규명해내지 못했다. 5·18 진상규명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보고서는 미완의 결과물이다. 5·18을 헌법 전문에 담는 노력과 함께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계속돼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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