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말없이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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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렬 기자]
▲ 감정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최근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순간순간 내 기분을 들여다보는 게 바로 그것이다. 굳이 글로 기록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잠시 멈춰 마음을 돌보기 위해 힘쓴다.
스스로 생각해 낸 건 아니다. 상담 선생님께서 나에게 권해주셨다. 주로 조언보다는 경청을 잘해주시는 분인지라 강요가 아님에도 외면하기 힘들었다. 힘들어도 감정을 들여다보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한번 해보기나 하자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하지는 못한다. 이게 말이 쉽지, 내 안의 어떤 감정이나 기분을 독립된 객체로 인식하고 대한다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하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지금까지 대략 몇 명의 내면 아이가 나와 접촉을 해주었다. 아직은 의문과 확신 사이에서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자주 만나 친밀감을 쌓으려 하고 있다.
처음 만난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나다. 시험을 못 봤다는 이유로 아버지께 매를 맞고 쫓겨났다. 울면서 집 밖으로 뛰쳐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그리고 동네 시장 어귀에 있는 한 버스정류장 앞에서 멈춰 섰다.
그곳이 아이가 갈 수 있는 최대한 먼 곳이었다. 쫓겨난 와중에도 소심한 아이는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봐,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될까 봐 거기 멈춰서 한참을 서성였다. 몹시도 추운 겨울날, 정류장에 서 있는 아이는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다가갔다. 말없이 일단 안아주었다.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꽁꽁 언 아이의 볼이 따스해질 때까지 얼굴을 계속 비벼댔다.
그렇게 나는 아홉 살의 나와 만날 수 있었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나였다.
언뜻 보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과 무척 비슷한 내용이기도 하다. 상담 선생님께서 나에게 적용하려는 치료기법도 그것과 유사하다고 말해주셨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줄거리는 알고 있기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아홉 살의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고 싶었다. 나는 어린 나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집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내가 아이고 아이가 나였기에 나는 알면서 물은 것이기도 하기에. 집으로 돌아갈 거라면 애초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험을 못 봤다는 이유로 한 겨울에 자식을 몽둥이로 때리고 쫓아낸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을 리 없다.
그 당시에는 체벌이 지금보다 흔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해도 아이를 때리는 건 어느 때이든 상처받을 일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고 가장 안전한 곳으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때의 나는 뒤따라온 아버지에게 붙들려 집으로 돌아갔었다. 내가 나간 뒤로 나를 쫓아오시기는 했지만, 내 기억으로 아버지는 우는 나를 끝내 안아주지는 않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은 너무 무섭고 불안했다.
상담 치료를 통해 만난 어린 시절의 나. 아팠던 만큼 선명한 자국으로 내면에 새겨져 있었다. 아직은 어디로 이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디로 데려가야 네가 안전할까? 어디로 가야 네가 불안하지 않을까? 그곳을 찾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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