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치료 받아 사망 막도록… 뇌전증 거점병원 설립 추진해야”
“남편이 집에 와 보니 임신한 아내가 돌연사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 환자는 뇌전증 발작도 1년에 두 번밖에 안 했어요. 너무 안타까워서 장례식장에도 다녀왔습니다.”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뇌전증 국제기자회견에서 대한뇌전증센터학회 홍승봉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이 한 말이다. 그는 국내 뇌전증 환자들이 치료 시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에 과도한 전류가 흘러서 신체 경련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뇌 질환이다. 국내 환자 수는 약 40만이고, 일본이 100만, 미국이 340만 정도다. 발작이 있으면 돌연사율이 17배 높아진다. 발작하는 동안 숨을 제대로 못 쉬면 극심한 저산소증에 빠질 수 있고, 근육에 과도한 힘이 들어가 근육괴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요리 도중 발작이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끓는 물에 손을 담그는 바람에 세 손가락을 잃은 환자도 있다.
약을 먹으면 발작을 막을 수 있지만, 환자의 약 30%는 약을 복용해도 발작이 계속되는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다. 이들은 돌연사율이 30배 더 높다. 매일 한두 명씩 젊은 뇌전증 환자가 갖은 이유로 사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을 살리는 법은 수술뿐이다. 뇌전증 환자의 14년 장기 생존율은 50%에 불과하지만, 수술하면 90%로 올라간다.
문제는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국내에 몇 없다는 점이다. 7개 병원이 전부다. 이 중 2개 병원은 수술 능력이 있으나 최근에 실제로 수술한 적이 없다. 5개 병원은 매년 4~5건의 뇌전증 수술을 시행한다. 삼성서울병원이 50여 건, 세브란스병원이 30여 건으로 가장 많이 한다. 수술 가능한 의사는 전국에 7명뿐이다. 이 중 6명은 서울, 1명은 부산에 있어 쏠림 현상도 심하다. 또한, 뇌전증 수술은 전극을 머릿속에 이식하는 것이다. 로봇 없이 수술하는 것도 가능하나 효율적 수술을 위해서는 로봇 장비가 필요하다.
홍승봉 교수에 따르면 국내 대형병원 중 아직도 수술 로봇이 없는 곳이 여럿 있다. 일례로,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뇌전증 수술을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로봇이 없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뇌전증 수술 로봇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대한뇌전증학회 신동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은 “수술을 통한 병원 수익성의 문제 등으로 수술을 시행하지 못하는 곳도 있을 것”이라며 “거점 뇌전증병원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미국에는 거점 뇌전증병원이 260개, 일본에는 28개 있다. 특히 미국은 1987년에 미국뇌전증센터협회가 설립돼 거점 뇌전증병원의 치료 수준을 평가한다. 환자들이 수준을 인증받은 뇌전증 병원을 방문해 치료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거주지에서 가까운 뇌전증병원을 찾을 수 있는 사이트도 있다. 반면, 한국은 거점 뇌전증병원은 커녕 뇌전증지원센터 한 곳만 운영 중이다.
거점 뇌전증병원을 만들어 의료진에게 뇌전증 치료법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면, 환자들이 지역 어디서나 상향 평준화된 뇌전증 치료와 심리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뇌전증은 단순히 뇌를 치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이 어렵다 보니 우울증, 불안증, 자살 충동을 많이 느낀다. 환자 30~50%가 우울증, 20~40%가 불안증 20~30%가 자살 생각을 한다고 알려졌다. 이에 뇌전증 환자들은 우울증 스크리닝을 해서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의사가 환자의 뇌의 어떤 부위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내려면 적어도 40분에서 1시간이 필요하다. 마운트 사이나이 아이칸 의과대학 유지연 교수는 “환자의 뇌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 수술하려면 환자의 증상을 잘 살펴야 한다”며 “처음 만난 환자는 1시간, 기존에 알던 환자도 30~40분을 봐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뇌전증 치료의 핵심은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이다”고 말했다. 일본 토호쿠대 노부자쿠 나카사토 교수는 “환자 한 명당 1시간 30분 정도 진료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병원에서의 진료 시간은 2~3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약만 기계적으로 처방하기 쉽다. 수술이 필요한 뇌전증 환자임에도 수술로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발작이 심하게 일어나는 등 응급 상황이 종종 생기는 것도 문제다. 현재로서는 대전, 광주, 대구 같은 지역 광역시에 사는 뇌전증 환자들도 위급시엔 뇌전증 전문가가 있는 서울이나 부산까지 가야 한다.
홍승봉 회장은 “9~10억 예산만 있어도 전국 곳곳의 18개 병원을 거점 뇌전증병원으로 지정해 운영할 수 있다”며 “그럼 환자들이 가장 가까운 곳의 병원을 찾아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뇌전증지원센터는 환자들의 의료사각지대를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2020년 8월부터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의사가 뇌전증 환자와 직접 소통하는 ‘뇌전증도움전화’다. 1년에 5400명 정도가 전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의사도 환자도 이 전화의 존재를 몰라 환자 이용률이 1.5%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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