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박지현 떠나는 여자프로농구, 더 주목되는 이유
[양형석 기자]
프로리그가 없는 여자야구를 제외하면 4대 프로스포츠 중에서 외국인 선수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있는 리그는 여자프로농구가 유일하다. 2019-2020 시즌까지 외국인 선수제도가 있었던 WKBL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자가격리 의무가 생기자 2020-2021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잠정 중단했다. 2022년부터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자가격리도 중단됐지만 아직 WKBL에 외국인 선수 제도는 부활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여자농구연맹은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 국적을 갖고 있거나 과거에 한국국적을 갖고 있었선 선수를 '외국국적 동포선수'로 분류해 WKBL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여러 선수들이 국내 선수로 등록해 WKBL 무대를 누비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 루마니아인 어머니를 둔 김소니아(BNK 썸)와 미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키아나 스미스(삼성생명 블루밍스)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외국인 선수 없이 네 시즌을 치른 WKBL은 다가올 2024-2025 시즌 아시아 국적 선수들이 WKBL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하는 아시아쿼터 제도를 신설했다. 23일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는 9명의 선수가 6개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특히 이번 오프시즌에는 스타 선수들의 해외진출과 활발했던 FA시장, 그리고 아시아쿼터로 인해 리그가 자연스럽게 평준화되면서 2024-2025 시즌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시즌이 끝난 후 호주리그로 진출한 박지현은 팀의 주전선수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
ⓒ 우리은행 우리WON |
외국인 선수 제도가 사라진 후 지난 네 시즌 동안 여자프로농구는 우리은행 우리WON과 KB스타즈가 각각 두 번의 정규리그 우승을 나눠 가졌다.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 부임 후 다년 간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데다가 2022년 '만능 포워드' 김단비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안정된 전력을 자랑했다. 리그 최고의 선수 박지수(갈라타사라이 SK)를 보유한 KB 역시 박지수가 건강하다면 매 시즌 우승 후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팀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두 시즌 연속 우승으로 2023-2024 시즌이 막을 내린 후 리그의 판도엔 큰 변화가 생겼다. 프로 입단 후 8번의 시즌 동안 4번의 정규리그 MVP를 휩쓸었던 KB의 절대 에이스 박지수와 우리은행, 그리고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를 이끌 젊은 에이스 박지현이 나란히 해외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두 선수의 해외진출은 엄청난 전력손실을 가져올 수 밖에 없지만 KB와 우리은행은 두 에이스의 해외진출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 WNBA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박지수는 지난 5월 튀르키예 슈퍼리그 갈라타사라이 SK와 계약하면서 유럽리그에 진출했다. 봄에 시작해 초가을에 끝나는 WNBA와 달리, 튀르키예 리그는 WKBL과 마찬가지로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 끝나기 때문에 박지수가 두 리그를 병행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KB는 박지수를 1년 간 임의해지했고 이로써 박지수는 2024-2025 시즌 WKBL 무대에서 뛸 수 없게 됐다.
2023-2024 시즌이 끝난 후 첫 FA자격을 얻은 박지현은 해외리그 도전을 선언한 후 호주 2부리그의 뱅크스타운 브루인스와 계약했고 우리은행도 박지현을 1년 간 임의해지했다. 뱅크스타운과 3개월 짜리 단기계약을 맺은 박지현은 뱅크스타운에서 주전으로 나서면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16일(한국시각) 맨리 마린가 시 이글스전에서는 12득점13리바운드12어시스트로 호주리그 진출 후 첫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는 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에이스를 떠나 보내야 했던 KB와 우리은행이다. 박지수가 없는 KB가 얼마나 약해지는지는 10승20패로 6개 구단 중 5위에 머물며 봄 농구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2022-2023 시즌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디펜딩 챔피언' 우리은행 역시 박혜진(BNK)과 최이샘(신한은행)이 FA자격을 얻어 팀을 떠난 데 이어 박지현마저 해외리그로 진출하면서 '김단비와 아이들'이 되고 말았다.
▲ 신한은행은 아시아쿼터 전체 1순위로 1무릎부상 후 재활 중인 85cm의 센터 타니무라를 선택했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물론 KB와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에이스의 해외진출로 인해 엄청난 악재가 생겼지만 사실 리그의 재미를 위해서는 오히려 두 선수의 해외진출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KB와 우리은행의 '양강구도'가 오랜 기간 굳어지며 흥미가 다소 떨어졌던 리그가 슈퍼스타의 해외진출과 FA 대이동을 통해 강제로 평준화 됐기 때문이다. 다가올 2024-2025 시즌에는 모든 구단이 챔프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프시즌을 통해 가장 알찬 전력보강을 했다고 평가 받는 팀은 역시 신한은행이다. FA시장에서 에이스 김소니아가 떠났지만 포인트가드 신이슬과 멀티플레이어 최이샘을 데려오며 전력을 보강한 신한은행은 지난 4월 26일 변소정과 박성진을 BNK에 내주고 신지현과 올해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로써 신한은행은 신이슬과 신지현, 이경은, 구슬, 김진영, 최이샘, 김태연으로 이어지는 알찬 라인업을 구성했다.
신한은행의 전력보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해 처음 시행된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신한은행은 독일리그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고 일본의 국가대표를 지낸 185cm의 빅맨 타니무라 리카를 지명했다. 타니무라는 지난해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지만 개막전 복귀를 목표로 순조롭게 재활을 진행 중이다. 타니무라가 정상적으로 팀에 합류한다면 신한은행은 또 한 번의 전력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다.
2023-2024 시즌 최하위 BNK는 올해 FA시장에서 '큰손'을 자처하며 8개의 우승반지를 가진 베테랑 가드 박혜진과 리그에서 가장 터프한 포워드로 꼽히는 김소니아를 영입하며 전력을 크게 보강했다. 물론 주전 센터 진안이 하나원큐로 떠나면서 골밑전력이 약해졌지만 하나원큐의 에이스 신지현을 보상선수로 지명했고 신지현을 활용해 보상선수로 팀을 떠났던 박성진을 재영입하고 유망주 변소정까지 데려왔다.
FA시장이 열리자마자 주전센터 양인영과 재계약한 하나원큐는 2023-2024 시즌 17.47득점10.4리바운드를 기록했던 국가대표 센터 진안을 영입하면서 골밑을 크게 강화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에이스 신지현이 팀을 떠나고 식스우먼 김애나가 은퇴하는 악재도 있었다. 하지만 맏언니 김정은과 양인영, 진안, 김시온 등 경험 많은 선수들과 박소희와 정예림,박진영 같은 잠재력 높은 신예들의 조화는 차기 시즌 하나원큐의 최대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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