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중국, 팬데믹 이전보다 재고 11% 증가 … 산업 호황 이면의 그림자

강남규 2024. 6. 25. 00: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데자뷔(Deja Vu)다. 미국이 1980년대 후반 일본과 무역 전쟁을 벌이며 외쳤던 “과잉 설비”와 “과잉 생산”이란 말이 한 세대(30여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이번 상대는 중국이다. 과잉을 외치는 쪽은 미국과 유럽 등이다.

중국의 과잉 설비·생산이 국제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어젠다로 떠오른 계기는 올해 4월 이뤄진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 전후다. 옐런은 중국 방문에 앞서 “우리는 태양전지,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이 분야에서 과잉 설비와 생산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방중 기간 내내 과잉생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마치 경제학과 교수가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 태도마저 내비쳤다. 이후 미국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중국의 과잉 생산과 수출을 문제 삼고 나섰다.

미국, 중 ‘제조업 고혈당’ 걱정

올해 4월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왼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옐런의 비판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요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성장 목표(5%)를 달성하기 위해 부동산 개발 대신 산업 생산, 특히 첨단 제조업 육성을 성장 엔진으로 선택했다.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를 움직여 첨단 제조업 쪽으로 자금을 몰아주다시피 한다. 시중은행은 부동산 부분 대출(그래프 재고 참조)을 최근 1년 사이에 1조 위안(약 186조원) 정도 회수했다. 반면에 중국에서 녹색 대출이라고 부르는 친환경 산업에 대한 대출은 같은 기간에 8조 위안 늘렸다. 이와 관련해 미국 ‘통화정책 야전사령부’인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중국 제조업 혈당이 높아지면(What if China Manufactures a Sugar High?)’이란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뉴욕 준비은행은 금융기관이어서 그런지 미국의 무역수지 악화만을 우려하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가 중국의 제조업 고혈당이 인플레이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제조업 생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정도다. 이런 중국의 제조업이 단맛(금융 지원)에 취해 활력을 띠면 원자재 수입이 많이 늘어날 수 있다. 중국발 원자재 수요 급증은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을 부추겨 결국 미국 내 물가를 압박한다.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기준으로 2025년에 인플레이션이 0.5%포인트 정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게 뉴욕 준비은행의 예측이다.

「 제조업은 시진핑의 성장 엔진
친환경 산업에 뭉칫돈 쏟는 중
미, 과잉생산 따른 인플레 우려
막상 중국은 내수 부진 더 걱정

뾰족한 수가 없는 미국
미국이 중국 제조업 고혈당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관세 장벽을 높이 쌓고 위안화 가치가 오르도록 하는 방법뿐이다. 80년대 중반 미국은 일본과 독일을 압박해 당시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작업을 했다(플라자합의). 한술 더 떠 미국은 일본을 몰아붙여 ‘과잉 생산과 수출에 대한 자율 규제’를 하도록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하지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제프리 샷 수석연구원은 몇해 전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80년대 미국은 안보 우산을 내세워 일본과 독일을 압박해 플라자 합의와 자발적 규제를 끌어낼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관세장벽을 쌓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는 멕시코와 캐나다, 바하마 등을 통해 미국 시장에 들어가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뾰족한 수가 없을 때 목소리만 커진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의 “과잉 설비, 과잉 생산”이란 목소리가 유독 크게 울린다.

내수 부진에 쌓이는 재고
그 바람에 중국의 제조업 고혈당이 실제 과잉 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뒷전이다.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산업생산은 과잉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팬데믹 이전과 견줘 3% 정도 늘었을 뿐이다. 보고서를 쓴 루이스 루 중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일시적인 과잉생산으로 부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사실은 팬데믹 이전보다 산업생산이 단 3% 늘었을 뿐인데, 재고는 11%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중국 기업의 물류창고에 재고가 많이 쌓여 있다는 얘기다.

정근영 디자이너

국내총생산(GDP)을 계산할 때 재고는 투자로 잡힌다. 그만큼 성장률이 높아진다. 중국 기업이 금융지원을 받아 생산설비보다는 기존 설비를 동원해 재고를 늘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산업생산 증가율보다 재고 증가율이 4배 가까이 높은 첫 번째 이유로 중국 내수 부진을 꼽는다. 그리고 중국산 수출이 기대만큼 증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재고 증가의 이유라고 한다.

중국 기업의 속앓이
사실 중국 경제가 과잉 설비·생산 증상을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재고를 누적시키고 있는 수요 부족을 더욱 우려한다. 기업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 등 실적 지표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전체 산업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021년 이후 가파르게 떨어져 6% 이하로 내려앉았다.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더 낮아져 5% 수준이다. 기업이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표인 자산 대비 수익률(ROA)도 2017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역사적으로 재고 누적이 낳은 최악의 결과는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현재 재고 누적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수가 부진한데 수출마저 시원찮아지면 중국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시진핑이 부동산을 대신해 성장엔진으로 택한 친환경·최첨단 산업에서 또 하나의 과잉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