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굿잡. 그런데 [김선걸 칼럼]
그나마 국민연금이 잘해줘서 다행이다.
투자 얘기다. 지금 한국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한숨을 쉰다. 한국 증시는 미국·일본 등에 비해서 너무 지지부진하다.
10년 전 똑같이 1억원을 투자했다면 한국 증시에선 1억6000만원, 미국 증시에선 3억4000만원이 됐을 거라는 계산이 나온다. 한마디로 미국에 투자했다면 한국에서 번 돈(6000만원)의 네 배(2억4000만원)를 벌었다는 뜻이다. 해외 투자에 생경한 노년층에게는 더 아픈 얘기다.
이런 와중에 국민연금이 눈길을 끈다.
국민연금은 지난 한 해 동안 126조원의 수익을 거둬 900조원대의 자산을 1101조원으로 늘렸다. 수익률 10%대다.
비결은 해외 투자다. 필자가 증권부에서 기사를 쓰던 지난 2002년, 국민연금 자산 93조원 중 해외 투자는 3000억원으로 비중이 0.2%였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명박정부부터 해외 투자에 눈뜨고 비중을 꾸준히 늘렸다.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처럼 큰 등락을 겪으면서도 민간 역시 해외 투자의 문호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2024년 현재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은 1101조원 중 597조원으로 54.2%(주식 33%, 채권 7%, 대체 14%)다. 국민연금은 정권이 바뀌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현 김태현 이사장까지 묵묵히 업무를 수행했고 그 결과가 오늘 수익률이다.
만약 해외 투자 비중 0.2%의 포트폴리오가 그대로였다면? 올해 1분기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5.5%, 해외 주식 수익률은 13.5%다. 국내 투자로만 수익률을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저출생과 더불어 암담한 미래를 알리는 뉴스로 다뤄졌을 것이다.
실제 개인 투자자들도 이미 미국 증시로 많이 옮겼다. 40대 초반의 한 지인은 미국 주식만 10억원 가까이 투자한다. 밤에 미국 투자를 열심히 한다. 그는 “미국인보다 미국 주식을 더 잘 안다”고 자신한다. 일단 엔비디아, 구글, 테슬라 등 빅테크의 재무 구조와 전망을 분석하고 FOMC 동향과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도 신경 쓴다. 몸만 한국에 있지 미국인처럼 보인다.
지난주 ‘한국 부자 순유출 세계 4위’라는 제목의 뉴스가 있었다. 영국 컨설팅 업체가 투자자산을 100만달러(한화 약 13억8000만원) 이상 보유한 ‘고액순자산보유자(HNWI)’들이 타국에서 6개월 이상 머문 사례를 조사한 것이다. 한국은 올해 1200명으로, 중국, 영국, 인도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400명에서 2023년 800명으로 7위로 올라선 뒤 4위로 껑충 뛰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10년 전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개인과 기업, 국가가 경계를 넘어 경쟁할 것이라 전망했다.
더 글로벌해져야 한다. 미국, 일본, 호주에 투자를 늘려 수익률도 높이고 다변화해 위험도 분산해야 한다.
원하면 해외로 이주도 해야 한다. 개인으로선 그게 모범 답안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혼란스러운 생각이 든다.
돈과 인재가 몰리는 게 부강한 나라의 조건이다. 한국이 그렇게 성장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돈과 인재가 급속도로 빠진다면?
한국 증시는 ‘잡주 시장(Penny Stock Market)’으로 굳어지고 나라는 시들어가는 건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고수익은 굿뉴스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면서, 후세들에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남겨주려면 한국 증시 밸류업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투세처럼 스스로 발목 잡는 족쇄부터 빨리 원천봉쇄해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5호 (2024.06.26~2024.07.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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