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국비 0원, 완전 끊겨... 어린이·청소년이 미래라더니"

김보성 2024. 6. 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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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 인터뷰] 영화 <삼례> 감독 이현정 BIKY 집행위원장의 쓴소리와 기대감

[김보성 kimbsv1@ohmynews.com]

 19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이현정 감독. 지난 20일 기자간담회 현장 오른쪽에 후원사 중 하나인 오뚜기의 제품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 BIKY
 
전국에서 매년 100여 개 이상의 영화제가 관객을 찾는다. 난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이는 문화적 다양성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다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오랜 시간 자리잡아온 영화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 비키)다. 이 분야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 세계 3대라는 표현까지 붙을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제가 윤석열 정부 들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영화도시 메카를 자처하는 부산에서 부산국제영화제(BIFF, 비프)가 어른들의 행사라면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는 18세 이하 영화인들의 축제다. 제작과 심사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이 참여하며, 주도적으로 움직인다. 올해로 벌써 19회. 해마다 전세계 수십개 국, 100여 편 이상의 작품을 소개하며 네트워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정부의 예산 기조가 긴축재정으로 바뀌면서 심각한 문제에 부닥쳤다. 2019년부터 시작된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이 일부가 아닌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영화발전기금과 사업통합 등을 이유로 지원대상을 40여 개 곳에서 10곳으로 크게 줄였다. 쉽지 않은 살림에 '0원'을 받아 든 영화제 구성원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영화 <삼례>의 감독인 이현정 집행위원장은 정부의 의지가 문제라고 봤다. 세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화제의 역할과 기능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적 기능이 상당한데도 가장 약한 손가락인 어린이청소년영화제가 유탄을 맞았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내일의 미래'라고 떠들지만, 말뿐인 현실이 답답하다. 이런 모습은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유럽 등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이럴수록 더 뛰어다니며 내용을 채웠다. 지난해보다 참가국과 상영작이 줄었지만, 전반적인 방향과 재정비에 주력했다. '비욘드 BIKY', 'BIKY 클래식'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현 상황을 반영하듯 성장의 어려움에 관한 영화를 여럿 배치했다. 처음 선보이는 프리미어 작품도 80편에 달한다. 영화제는 내달 10일부터 14일까지 영화의전당 등에서 5일동안 열린다.

24일 <오마이뉴스>의 인터뷰에 응한 이현정 위원장은 질의응답 말미에 문화체육관광부, 영진위, 부산시, 교육청 관계자들에게 뼈 있는 말도 던졌다. 네덜란드 영화기관인 아이필름뮤지엄 관계자가 영화제 셋째날인 12일 발표를 하는데 꼭 들어보란 얘기였다. 국가적 지원 속에 만들어진 '네덜란드 영화의 집'을 통해 배울거리를 찾자는 의도다.

가장 약한 손가락인데... 아이들 영화제까지 국비 '뚝'
 
 오는 7월 10일부터 시작되는 19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 개막작인 '별의 메아리(파트릭 보이빈 감독)' 한 장면. 이 영화는 지난해 슈링겔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국내에선 처음 BIKY를 통해 처음 소개된다.
ⓒ BIKY
-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 비키)는 어떤 영화제인가? 벌써 역사가 19년이 됐다.

"이름에 다 담겨 있다. 우리는 부산의 영화제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영화제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어린이영화제 중심이었지만 중간에 청소년을 끌어안으면서 확장됐다. 경쟁 부문의 상영작과 수상작이 모두 어린이·청소년의 손을 통해 이뤄진다. 우린 여기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며, 그들이 만든 영화를 사랑한다.

어린이·청소년 영화제 규모로 보면 아시아에서도 가장 크다. 19회에 걸쳐 진행해오다 보니 해외 네트워크 등이 잘 형성돼 있다. 특히 교육적인 면이 강하다. 사실 1년 내내 어린이·청소년들과 같이 계속 교육이 이어진다. 다른 영화제와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BIKY의 성과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이를 배워가려는 데서도 확인이 된다.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연락이 온다. 그런 덕택에 지금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자발적으로 함께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19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 영화 <삼례>의 감독이신데, 처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맞다. 하지만 이전부터 이 영화제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관여했다. 현재 영화제의 주요한 스태프 중에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의 캠프에서 스태프로 만났던 이들이다. 그래서 낯설지 않다. 이미 손발을 맞춰봤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정비하고, 앞으로 오래갈 수 있는 모델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 정부의 예산 완전 삭감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부닥쳤다. 얼마나 줄어든 건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아예 받지 못했다. 기존에 40여 개 영화제가 정부 지원을 받아왔는데, 올해는 10개로 줄었다. 부산과 전주, 부천을 포함한 8대 국제영화제 중에서 우리는 보다 특화된 어린이 청소년 영화제 성격을 지녔다. 지원 통합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아무튼 가장 약한 손가락인 어린이·청소년 영화제가 영향을 받았다. 다른 영화제도 지원 반토막이 났다."

- 대체 이유가 뭔가? 과거에는 이런 적이 없나?

"늘거나 줄어든 적은 분명히 있지만 '0원'은 처음이다.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 1억5000만 원 정도가 주어졌다. 이 금액은 작은 영화제에 있어 큰 비중이다. 약간 변동이 있는 것과 전혀 없는 건 낙폭이 크다. 영화제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데 '내년에 한 번 잘해봐' 이런 개념과 다르다. 유지가 될 수 있을까? 이런 현실 인식까지 나온다. 다행히 여러분이 응원을 해주셔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영화제 지원금 완전 삭감 사태에 답답한 표정의 19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이현정 집행위원장.
ⓒ BIKY
- 정부가 영화제의 다양성을 죽인다, 소규모 지역영화제를 포기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데?

"영화제 전체를 한 그릇에 담아 지원을 줄였기 때문에 어린이·청소년 영화제 같은 경우엔 경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 피해를 보는 경우다. 교육적 성격과 역할이 있는데, 오히려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

"세계에 케이(K)만 강조할 게 아니라 공공적 지원 절실"

- 국제적 위상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국제적 위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해외 게스트를 지원할 초청 비용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영화교류까지 제약받게 된다. 일단 한국 영화를 늘려 게스트 숫자를 더 확보하고, 관객과 같이하는 자리도 증가했지만 국제영화제 측면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네덜란드의 영화교육 관련 아이필름뮤지엄이란 곳에서 관계자가 참여해 성공사례 등을 발표한다. '아카이브의 숲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개최되는데, BIKY 포럼 행사 중 하나다. 거긴 어떻게 보면 (정부 차원의) 5개년 계획을 통해 이를 마련했다. 국가적인 지원, 모두의 노력이 바탕이 됐다. 문체부나 영진위, 시교육청, 부산시 등 여러 관계 공무원들이 와서 함께 들어보면 좋겠다."

- 유럽연합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어린이청소년 영화제를 향한 국가적인 지원이 우리와 어떤 게 다를까?

"유럽 등은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정말 크다. 한해 만들어지는 영화의 종류도 많다. 영화제에 대한 지원도 전폭적이다. 반면 우리는 어린이·청소년이 볼만한 영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제에 대한 예산 등 관심도 현재 이런 수준이다.

우린 학원에 가고, 대학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 과정마다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주는 것에 소홀하다. 그런데 BIKY가 그 부분을 채우고 있다. 언젠가 택시를 타면서 기사님과 어린이·청소년 시절에 영화 한 편이 아이들의 인생을 확 바꾸는 순간이 될 수 있단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어른들도 그렇지 않나? 어린 시절 하나의 순간, 장면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곤 했다. 간접경험이 부족한 지금 BIKY가 이를 제공하는 통로다. 택시 기사님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영화제에 오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 '내 손주를 데려가야겠다'고 했다. 그 말이 바로 우리 영화제가 가야 할 방향이다. 같이 인생을 담을 수 있는 영화제로 만들고 싶다."

- 이번 사태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영진위에 하고 싶은 말이 없나?

"작은 영화제들은 예산이 부족해 해마다 상황이 변하는데, 안정적 지원이 없다면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BIKY에 지원 중단은 미래세대에 대한 포기와도 같다. 당장 복구가 되고, 국제영화제로의 위상을 누리며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윤 대통령과 정부, 영진위 관계자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케이(K)팝이나 케이푸드 등 케이를 크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어린이·청소년 부분의 지원은 부족하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제인 BIKY가 케이유스를 확산하는 또 다른 거점이다.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자고 외치면서 어린이·청소년 영화제에 소홀하다면 국제적으로 어떻게 평가될까?"

- 이런 상황에서도 영화제를 제대로 치르겠단 의지가 커 보인다. 올해 주제 등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주제는 늘 '달라도 좋아!(WE ARE ALL UNIQUE!)'이다. 요즘 각자 다르기가 어렵다. 해외 영화들은 상상력이 두드러진다면 우리 작품은 학원이나 학교 등을 소재로 좀 비슷한 경향성이 있다. 그래서 BIKY가 할 일이 있다. 아이들이 영화에서 다름을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개막작 별의 메아리(파트릭 보이빈 감독)를 비롯해 34개국 113편을 마련했다. 섹션은 그동안 없던 부분이 생겼다. BIKY 클래식에서 다루는 '소마이 신지'의 감독의 영화도 살펴볼 만하고,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가 선정한 영화 강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간표에 다양한 클래스와 풍성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7월 1일부터 예매가 시작된다. (국비 삭감을 겪었지만) 좀 더 많은 관심으로 관객들이 와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2022년 개최된 17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 BI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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