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1충혼당 106-614, '순직 군인' 변희수 3년 만에 제자리로
[복건우, 소중한 기자]
▲ 고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장식이 24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됐다. |
ⓒ 복건우 |
▲ 고 변희수 하사 현충원 안장 "기갑의 돌파력, 잊지 않겠다" ⓒ 복건우, 소중한 |
변희수. 순직 군인으로 잠들다.
"희수야..."
가족들과 동료들이 고 변희수 하사의 납골함을 가만히 바라봤다. 누구보다 군을 사랑했던, 군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없애겠다던 변 하사가 영정 속에서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드디어 네 자리를 찾아왔구나. 앞으로도..."
안장식에 들어선 동료들도, 납골함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그의 영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세상을 떠난 지 3년여 만에 그가 국립묘지(대전현충원 충혼당)로 들어가자, 그들이 입을 모아 약속했다.
"네 용기를 기억할게."
▲ 고 변희수 하사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앞둔 24일 오후 2시 군인권센터,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등이 충남 계룡시 육군본부 앞에서 노제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 2월 숨진 변 하사는 지난 4월에야 국방부로부터 순직 인정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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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대전현충원 충혼당 안장식장에서 변 하사의 안장식이 치러졌다. 성전환 수술(2019년 11월)을 이유로 군에서 강제 전역 처분(2020년 1월)을 받은 뒤 목숨을 끊은(2021년 2월) 변 하사의 죽음을 군이 뒤늦게 순직으로 인정(2024년 4월)하면서다.
변 하사는 이날 1충혼당 '106-614'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다. 안장식은 영현(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이르는 말)에 대한 경례, 헌화와 추도사, 묵념과 안치 순으로 예우를 갖춰 진행됐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추모를 위해 모여들었다. 강제 전역 이후 4년 넘게 변 하사의 명예 회복을 기다리던 이들이 많아서이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변 하사가 맞서 싸워 온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의 수위가 다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고 변희수 하사의 유족(가운데)와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오른쪽), 김형남 사무국장이 24일 오후 1시께 충북 청주 목련공원에 안치돼 있던 변 하사의 봉안함을 옮기고 있다. 변 하사는 이날 오후 3시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21년 2월 숨진 변 하사는 지난 4월에야 국방부로부터 순직 인정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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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추모객들을 태우고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청주 목련공원(영현 인수)과 계룡대 육군본부(노제)를 지나 이날 오후 3시께 대전현충원(영현 봉송 및 안치)에 멈춰 섰다.
변 하사의 아버지가 봉안함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앞장섰다. 찻길로 50km 넘게 변 하사의 영현이 거쳐 가는 곳마다, 추모객들은 '사과 없는 순직 국방부를 규탄한다', '국방부와 육군은 사죄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그를 뒤따랐다. 현충원에 도착해 흰 국화를 헌화한 이들은 베레모를 쓰고 군복을 입은 변 하사의 영정 앞에서 눈을 감고 묵념을 올렸다.
변 하사 가족들이 마지막 영면에 함께했다. 일곱 명의 가족과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김형남 사무국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식장 맞은편 납골당(1충혼당)에 변 하사의 영현이 안치됐다.
"오랜 시간 걱정하고 기다리셨을 텐데..." 임 소장이 가족들에게 말을 건넸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변 하사 아버지가 답했다. '육군 하사 변희수'의 납골함 앞에는 추모객들이 꽂아둔 화사한 꽃들이 놓여 있었다.
▲ 고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장식이 24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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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긴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도 혐오와 모욕을 견디며 3년이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이곳 현충원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날만을 기다려 왔던 변 하사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밤새 많이 고민했습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읽어 나갔다. 변 하사가 육군에서 강제 전역된 지 1614일, 강제 전역 취소 소송을 진행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213일 만이었다.
"저도 기갑 출신이거든요. 군가가 하나 생각났어요. '전우야 잘 자라 안녕.' 희수는 저한테 게임을 추천해 주곤 했는데, 새로운 게임을 같이해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다 희수야." - 박장주성 가톨릭앨라이아르쿠스 활동가
"변희수재단에서 일한 첫해에 희수님 순직이 인정되고 안장식까지 함께할 수 있었어요. 희수님이 있어야 할 자리로 데려다 드린 것 같아요. 이곳에서 그는 '군인 변희수'로 기억될 겁니다." - 하루 변희수재단준비위원회 상임활동가
"직업군인 출신으로서 변 하사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제 몫까지 대신 나눠주신 것 같아서 미안하고 존경합니다. 변 하사님이 존중받고 추모받길,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 군 장교 출신 김호연씨
▲ 고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장식이 24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됐다. 변 하사의 영정을 든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봉안함을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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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의 돌파력으로 군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버리겠다"던 변 하사의 다짐을 동료들은 안장식에서 수없이 되뇌었다. 변 하사가 꿈꿨던,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는 세상을 그의 동료들은 마음 깊이 담아두고 있었다.
"소수자들이 눈물 대신 웃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해 기갑의 돌파력으로 나아간 변 하사의 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새집이 편안하고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현충원 안장이 끝은 아니겠죠. 추모 활동을 이어나갈 겁니다. 앞으로도 이곳 현충원에서 군인 변희수를 기억하는 분들이 그를 찾아올 수 있게끔요." -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현충원에 안장된 변 하사의 곁을 이제는 다른 순직 군인들이 함께 지키고 있었다. 15분으로 예정된 안장식은 30분이 훌쩍 넘어 끝났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 몸을 싣기 전 동료들이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 고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장식이 24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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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장식이 24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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