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명 사망 '성지순례 쇼크'…히트플레이션 악몽까지 덮쳤다
극심한 폭염 속에서 치러진 이슬람 정기 성지순례(하지)에서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1300명을 넘었다는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의 공식 집계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폭염으로 인한 식품 물가 상승 현상인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마저 중동 일대를 덮치고 있다. 히트플레이션은 열을 뜻하는 '히트(Heat)'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지난 23일(현지시간) SPA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4일부터 6일간 치러진 성지순례 기간 무더위로 숨진 이가 총 130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도 순례자 200여 명이 온열 질환으로 사망했는데, 올해는 6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 순례 기간 메카 대사원 '마스지드 알하람'의 낮 최고기온은 51.8°C까지 치솟는 등 폭염이 이어졌다. 이슬람력으로 12월 7~12일 진행되는 성지순례는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꼽힌다. AFP통신은 사우디 국내 연구를 인용해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순례가 진행되는 지역의 기온이 10년마다 0.4도씩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기상학회(AMS)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 40여년간 북반구의 다른 지역보다 50% 더 많이 온난화됐다.
이날 파하드 알잘라젤 사우디 보건장관은 "열사병 등의 증세를 보이는 이들에게 제공한 의료 서비스가 총 46만 5000건인데, 이 중 14만 1000건은 미허가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숨진 이의 83%가 당국의 순례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피해가 더욱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우디 정부가 국가별 할당제를 통해 매년 참가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미허가 순례객이 늘고 있는데, 특히 저소득 국가에서는 브로커에게 속아 오는 사람이 많다"며 이같이 전했다. 순례 버스 이용 비용 등을 냈음에도 사기를 당한 탓에 이용하지 못하고 도보로 이동해 폭염에 더욱 취약했다는 설명이다.
BBC는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된 숙박·편의 시설에 적절한 냉방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데다 의료진도 부족했다"며 "사우디 정부가 순례객을 통제할 뿐 제대로 순례를 마칠 수 있게 돕지 않은 탓에 피해가 더욱 컸다"고 꼬집었다.
폭염에 '히트플레이션'까지 덮친 중동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을 덮친 건 폭염뿐 아니다. 극심한 더위로 인해 식품 물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는 주식인 토마토가 지난해 여름 이미 1㎏에 750이라크디나르(약 780원)에서 2500이라크디나르(약 2500원)로 올랐는데, 올해는 더욱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로코에서도 토마토값이 3배가량 올랐고, 세계 최대 양파 수출국 중 한 곳인 이집트에서는 양파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가 상승은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중동에서는 유독 심각하다"며 "지난 3~4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인플레이션은 평균 2.4%였지만, 일부 중동 국가들에서는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식품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다는 설명이다.
중동 지역에서 '히트플레이션'이 특히 심각한 이유는 이 지역의 지구온난화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2배 이상 빠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브루킹스연구소는 "그렇지 않아도 더운 기후라 식량 안보가 취약한데, 재배가 어려워진 작물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역내에서 이스라엘 전쟁이 진행 중인 데다, 이라크 등 다른 국가에서도 워낙 분쟁이 잦았던 탓에 농업과 농산물 가공업의 인프라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도이체벨레는 "냉장시설 등이 부족해 폭염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대다수 국가의 산업 기반이 약하고, 공공부채가 많아 이 문제를 해소할 정부의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중동 지역에서 히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이 점점 커질 것이라 보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은 "히트플레이션은 중동과 아프리카 등 이미 더운 지역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저소득층이 가장 큰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식량 안보를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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