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이 가득했지" 최초 공개 '범어사 영상'의 진실
[추미전 기자]
▲ 통도사 대광명전 안에 남아있는 낙서 |
ⓒ 추미전 |
KBS 부산방송총국에서 이 낙서의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을 제작했다. 6.25특집 다큐멘터리 '산사의 전우들'이다.
▲ 용화전 미륵 조성연기문 |
ⓒ 통도사 |
지난 1950년대 통도사의 고승이었던 구하스님이 당시 작성한 이 문서에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 많은 군인이 통도사로 들어왔고, 통도사가 군인들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다"는 내용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군인들이 통도사에 머문 기간은 무려 2년여에 달한다. 이들이 떠난 후 사찰 곳곳이 훼손되고 용화전의 미륵불상도 훼손돼 다시 조성하며 용화전 연기문을 적는다는 기록이 남았다.
이는 그동안 통도사 내의 나이 많은 스님들로부터 전해오던 이야기, 즉 '통도사가 6.25 당시 야전병원이었다'는 주장을 증명하는 최초의 문서다.
이후 통도사 벽면에 쓰인 '이별의 시' 필체가 자신의 아버지 필체라는 고창록씨가 등장했다. 고창록씨의 아버지 필체는 통도사 벽면의 필체와 똑같았다.
"아버지는 6.25때 자원입대를 하셨어요. 그런데 원래 지병이었던 위장병이 심해져서 통도사로 입원했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어릴 때 통도사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요. 그 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름이 아주 익숙했어요." - 고창록씨 증언
통도사, 사찰 가운데 최초로 국가현충시설 지정
국가기록원의 문서에도 통도사를 야전병원으로 사용한 기록이 드러났다. 1951년 11월 문서에 '통도사에 내과 환자 1522명이 수용돼 있다'는 문서가 발견된 것이다. 이 기록을 토대로 통도사는 2021년 사찰 가운데 최초로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됐다.
부산시 금정구에 있는 천년고찰 범어사는 아직 국가현충원이 마련되지 않은 한국 전쟁 기간 동안 희생된 전물장병들의 유해를 안치하는 '임시 현충원'의 역할을 감당했다. 경상남도 산청군 안적사에 있는 올해 97세의 일미스님은 20대 시절 범어사에서 수계를 받으며 6.25전쟁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 6.25당시 범어사의 상황을 생생히 목격했던 일미스님(97세) |
ⓒ 추미전 |
보제루는 일종의 절의 강당 격인 전각인데, 그런 보제루에 군인들의 시신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국군은 두 달여 간 낙동강 전투를 벌이며 결사 항전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한다. 희생자들은 부산으로 보내졌고 부산 범어사와 금정사 등에서 화장을 한 뒤 유골함을 모셨다. 유골함에는 유엔군 희생자들도 포함됐다.
▲ 1952년 위령재를 모시는 범어사 동산스님,오른편 위쪽에 유엔군 전몰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
ⓒ 김화선 |
취재팀은 1953년 당시의 부산 범어사 동영상도 확보했다. 부산 범어사에는 '육군 영현 안치소'가 마련됐는데, 범어사 승려들은 밀려드는 시신을 직접 화장하고 안장하는 일을 도맡았다. 그렇게 범어사는 6.25전쟁이 끝나고 1956년 국군묘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임시 국가현충원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부산의 향토사학자 김한근씨가 미국 경매 시장에서 구입한 이 영상은 인공지능(AI)로 복원해 최초로 공개한다. 영상에는 많은 미군이 범어사를 찾아온 모습이 보인다.
▲ 6.25전쟁이 참전한 밴플리트 장군과 아들 지미 밴플리트 |
ⓒ KBS |
장군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아들 지미 밴플리트의 수색은 중단된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아들 지미 밴플리트는 찾지 못한다. 전쟁이 끝난 직후 밴플리트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아들의 재를 지내기 위해 범어사를 방문한 영상이 바로 이 영상이다 .
국난의 시기, 국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 동참한 두 사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6.25 특집 다큐멘터리 '산사의 전우들' (연출 김미해, 구성 추미전) 은 6월 25일 오전 10시 50분 KBS1 TV에서 50분간 방영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KBS 구성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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