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데뷔' 뉴진스, 진짜 놀라운 건 따로 있다
[박정빈 기자]
일본 시장은 케이팝 산업의 오랜 타깃이다. 보아를 시작으로 동방신기, 빅뱅 등 수많은 아이돌이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다. 서구권에서 케이팝의 인기가 높아지며 일본 외의 선택지가 많아진 지금도 일본 팬덤은 가장 든든한 캐시카우다. 그 예시로,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걸스플래닛999>를 통해 결성된 걸그룹 케플러는 일본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서바이벌 출신 그룹 최초로 연장 계약에 성공한 바 있다.
따라서 일본은 여전히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일본 시장에 먹히는 케이팝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일본 곡이니 가사는 당연히 일본어로 채우고, 음악 면에서는 알기 쉬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소녀시대-원더걸스 스타일의 후크송, 콘셉트는 일본답게 '카와이'한 느낌?
▲ 뉴진스, "Supernatural" |
ⓒ ADOR |
▲ Mnet <프로듀스 48> 中 |
ⓒ Mnet |
이는 상술한 팀들을 제작한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성향 때문이다. 아키모토는 걸그룹 아이즈원을 탄생시킨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을 통해 한국과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해 한국에서도 알려진 바 있다.
일본 걸그룹 시장을 이 아키모토 사단이 십수년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멜로디를 중시하는 그의 작법이 산업 전반에서 지배적으로 굳어졌다. 때문에 일본 메이저 걸그룹 중 비트 중심의 음악을 하는 팀은 일렉트로니카 프로듀서 나카타 야스타카의 지휘 하에 미래지향적 전자음악을 선보이는 퍼퓸(Perfume)이나 메탈 음악을 선보이는 베이비메탈(BABYMETAL) 정도뿐이다.
따라서 일본 대중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멜로디 중심의 음악이 유리하다는 것이 당연한 발상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걸그룹인 트와이스나 니쥬 등은 전부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인데, JYP는 한국 대형 기획사 중 거의 유일하다시피 멜로디 중심의 음악 기조를 고수해오고 있는 회사다.
▲ 뉴진스, "Right Now" MV 中 |
ⓒ ADOR |
그러나 뉴진스는 일본에서도 비트 중심의 음악 기조를 똑같이 고수한다. "Supernatural"과 "Right Now"는 드럼의 어택감을 강조하는 편곡에 부드럽고 흐릿한 멜로디를 얹는 전형적인 뉴진스식 작법이 드러나는 곡이다. 늘 그래왔듯 멜로디와 가창보다는 비트가 이끌어가는 트랙들이다.
장르적으로도 굳이 큰 변화를 주지 않고 "Attention"과 "Super Shy", 두 대표곡을 통해 이미 선보인 뉴잭스윙과 드럼앤베이스를 택했다. 음악 내적으로 일본 로컬라이징을 의도한 부분이라면 일본 가수 마나미(Manami)와 퍼렐 윌리엄스의 2009년작 "Back of My Mind"를 샘플링한 점 정도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본 발매곡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Supernatural"의 경우 한국어 가사의 분량이 일본어 가사보다 훨씬 더 많다. 이러한 시도는 가히 이례적인데, 보통 한국에서 먼저 발매된 곡을 추후 일본어로 번안해 발매할 때 한국어 가사를 조금 남기는 경우는 있어도 (빅뱅의 '하루하루' 같은 케이스가 그렇다) 공식적인 일본 활동용 신곡에 한국어 가사를 넣은 경우는 최초다.
뮤직비디오에서도 한국적 속성들이 강조된다. 서울의 마천루 풍경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는 시작부터 남산타워를 보여주고, '안전제일', '꽃', '심박수' 등의 한글 간판을 계속해서 화면 한켠에 등장시킨다. 영상의 전반적인 색감을 과거 버블경제 시절의 1980년대 일본풍으로 로우파이하게 꾸미긴 했지만, 다양한 한국적 미장센을 통해 이곳이 한국의 서울임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다.
▲ 뉴진스 "Supernatural" MV 中 |
ⓒ ADOR |
현재 일본의 케이팝 팬층은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과 동경이 크고, 한국어에도 익숙한 젊은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핫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나 패션에 '한국풍(韓国っぽ)'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이기도 하고, '진짜'나 '감사' 같은 한국어 단어를 일본어와 접붙여 신조어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 뉴진스, "How Sweet" |
ⓒ ADOR |
뉴진스의 이 과감한 전략은 일본 시장 공략을 노리는 케이팝 산업에 색다른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적 정체성을 오히려 포인트로 삼아 그 모습 그대로 일본 대중에게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이 방법론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누구도 쉬이 시도하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신선한 시각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한국어와 한국 문화, 한국 음악이 가진 잠재력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수립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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