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사장이라도 왔으면"…공기업 후속 인사 여전히 안갯속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A씨의 최근 관심사는 누가 차기 사장으로 오느냐다. 현재 사장이 지난달로 3년 임기를 마쳤지만, 후임 인사가 여전히 안갯속이어서다. 다른 직원도 마찬가지다. 괜히 의욕적으로 새 업무를 추진하다 사장이 바뀌면 뒤집힐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하던 일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친다. A 씨는 “최근 기획재정부 경영평가도 사장의 관심 밖이었을 정도로 새로운 업무 계획을 추진할 의지가 떨어졌다”며 “‘낙하산’ 사장이라도 빨리 왔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頭)가 자리를 비운 날을 ‘무두절(無頭節)’이라고 부른다. 오랜 기간 사장이 없거나, 있더라도 곧 바뀔 예정인 시한부 사장을 둔 회사라면 아무래도 업무 긴장감이 떨어진다. 사장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직원들이 연휴 같은 무두절을 즐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공공기관 수십여곳의 현재 상태가 무두절과 다름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월 총선을 계기로 미룬 기관장 인사가 6월 현재까지도 지지부진하면서다.
2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국립공원공단(1월), 한국부동산원·도로교통공단·주택금융공사·한국전기안전공사(2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한국산업기술시험원(3월), 한국동서·남동·남부·서부·중부발전(4월), 한국투자공사·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한국가스기술공사(5월) 등 공공기관 수십여 곳의 기관장이 3년 임기를 마쳤다. 최근 ‘영일만 석유’ 개발을 주도하는 한국석유공사 김동섭 사장도 지난 7일 임기를 마쳤다. 모두 후임 사장 인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무두절이 더 긴 곳도 수두룩하다. 김광식 전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9월, 이삼걸 전 강원랜드 사장과 원경환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지난해 12월, 김장실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올해 1월 각각 임기를 마치기 전 사직서를 냈다. 역시 후임 공백 상태다. 물러난 사장 중에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임명돼 정책 기조가 다른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2년여간 ‘불편한 동거’를 이어오던 경우가 많다.
이들 공기업은 임기를 마친 사장이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거나, 사장 ‘직무 대행’이 업무를 대신하는 등 ‘임시’ 운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기관장 임기가 만료하기 2개월 전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고도 임추위조차 구성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통상적으로 기관장 선임은 ‘임추위 구성→후보자 공모→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심의→이사회 의결→주무부처 장관 제청→대통령 임명’ 절차를 밟는다. 최소 2~3개월 이상 걸린다. 당장 임추위를 꾸리더라도 연말까지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대통령실은 총선에 참패한 뒤 한덕수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 정부 부처 장관급 개각도 지지부진하다. 가뜩이나 국회 정쟁으로 정부의 입법 과제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무두절이 길어질수록 정책 집행의 손발인 공공기관의 업무 추진 동력마저 떨어질 수 있다. 관료 사회에 이어 공공기관으로 복지부동(伏地不動) 문화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장 인사를 서둘러야 한다. 김도영 기재부 인재경영과장은 “기관장 인사 절차가 공공기관 자율인 만큼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총선 등 선거와 맞물려 무두절이 이어지는 건 공공기관의 고질이다.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정권이 선거 이후 ‘보은’ 차원에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2022년 공공기관장 임기를 현행 3년에서 2년 6개월로 줄이고, 대통령 임기가 종료할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장 임기도 만료하는 내용의 공운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난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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