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세 때 '안동역에서' 떴다…진성, 긴 무명시절 버티게한 말

황지영 2024. 6. 2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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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진성은 "무명 시절의 설움부터 노래가 잘 된 후의 기쁜 일까지 모두 소중한 경험들"이라고 말했다. 사진 토탈셋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가수 진성(64·본명 진성철)의 히트곡 ‘안동역에서’(2012)가 지난달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금영노래방 차트에선 6년간 애창곡 1위 자리를 지켰다. 안동역 앞엔 노래비까지 세워졌다.

진성은 같은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7위에 랭크했다. 트로트 가수로는 나훈아, 장윤정 다음이다. ‘태클을 걸지마’, ‘보릿고개’ 등의 히트곡도 있다.

안동역 앞에 세워진 '안동역에서' 노래비를 찾은 진성. 사진 TV조선 '마이웨이'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의 합주실에서 만난 진성은 데뷔 30주년 기념 전국투어 ‘진성 빅쇼’의 막바지 연습을 하고 있었다. 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시작한 전국투어는 고양, 울산, 부산, 창원, 부평, 대구, 대전, 천안 등 약 10개 도시를 순회하며 1년 간 이어진다. 공연에서 진성은 힘들고 외로웠던 유년 시절부터 밤 무대를 전전하며 무명 가수로 살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세트리스트에 담았다.

그는 “'안동역에서'가 히트한 게 52세 무렵이다. 무명이 길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한다. 무난한 일상이 행복하고 주변에 늘 감사하며 지낸다. 일찍 성공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감정들”이라고 말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무명 버텨”


가수 진성은 "어린시절부터 워낙 여러 경험을 했기에 웬만한 일엔 충격을 받진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 뉴스1

그는 세 살 때 부모님이 집을 나간 후 친척집을 전전했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막노동, 행상 등을 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가수의 꿈을 놓지 않았고 17세부터 야간업소에서 노래했다. 17년 뒤인 1994년, ‘님의 등불’로 데뷔했다.

Q : 30주년 공연에 임하는 마음은.
A : “평상시라면 부담이 없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신경 써서 연습하고 있다.”

Q : 성공을 실감하나.
A : “실감하지도 않고, 내세우고 싶지도 않다. 무난하게 살아가는 게 행복이다.”

Q :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준 마음은 뭐였을까.
A : “‘혹시나’였다. 이제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버텨왔다. 물론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 거다. 힘든 삶을 살았지만, 삶 자체는 실패하지 않았다.”

Q : 이끌어준 선배가 있나.
“눈칫밥 먹어가며 터득한 경험과 지혜로 살았다. 어렸을 때 너무 배고파서 토마토를 따먹었는데, 밭 주인한테 뺨을 세게 맞았다. 그게 교육이 됐다. 그런 식으로 삶을 배워갔다.”

트로트 오디션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진성은 "도전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역량이 있는 친구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토탈셋

Q : 야간업소에선 어떤 노래를 불렀나.
A : “박우철의 ‘우연히 정들었네’를 많이 불렀다. ‘낯설은 타향에서 의지할 곳 없던 몸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내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내가 쓰는 노래엔 인생을 녹이려 한다.”

Q :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태클을 걸지마’인가.
A : “무명 시절 아버지 산소에서 넋두리를 하다 쓰게 됐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의무감으로 산소를 돌봤다.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 아버지가 하늘에서라도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Q : 긴 무명 시절, 누군가를 원망한 적은 없나.
A : “없다. 가슴앓이 할 때도 많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다.”


“70세 무렵 은퇴하고 여유 찾겠다”


진성은 유명해진 이후인 2016년, 갑작스런 혈액암과 심장판막증으로 투병했다. 잠들면 죽을 것만 같던 극심한 두려움 속에 힘이 돼준 건 아내였다. 49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한 진성은 소문난 애처가다. 스케줄이 없을 땐 아내와 경기도 고양시의 농장에서 채소를 키우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조용히 둘만 있는 삶이 최고”라고 말했다.
진성은 1200평 농장에 아내 이름을 따서 '미숙이네 농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진 채널A '4인용 식탁'
진성과 아내 용미숙 씨. 사진 TV조선 '마이웨이'

Q : 요즘 건강은 어떤가.
A :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조금만 무리해도 2~3일 간 후유증이 남는다.”

Q : 건강식을 유지하고 있나.
A : “가끔 술도 한잔 한다. 대체로 농장에서 키운 작물들을 먹는다. 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정서에 도움이 된다.”

Q : 은퇴 생각도 한다고.
A : “눈동자가 살아있고 몸이 잘 움직일 때까지만 활동해야 한다. 70대 초반에 은퇴할 생각이다. 외풍을 많이 겪은 삶이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좋은 후배들이 많아졌으니 믿고 물러나도 될 것 같다.”

지난 2월 방송한 KBS 설 특집 '진성빅쇼 복 대한민국'에 함께 출연한 진성(왼쪽)과 김호중. 뺑소니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호중 모습은 다시보기 VOD에서 삭제됐다. 사진 KBS

Q : 후배들에 조언을 해준다면.
“양보할 줄 알아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트로트 오디션 심사할 때도 인성을 먼저 본다. 사람이 귀한 줄도 알고, 예의도 바른 친구여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 것을 건너 뛰고 음악으로만 성공한다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나갈 수 없다.”

Q : 김호중 논란 때 많이 놀라지 않았나.
A : “호중이한테 ‘태클을 걸지마’를 선물하면서 다른 후배들보다 마음이 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 차이도 있고 해서 자주 소통하진 못했다. 다시 일어선다면 담금질이 되어 나오지 않겠나. 언젠가 만나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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