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연기, 15초만에 공장 삼켰다" 화성공장 화재 22명 사망
24일 경기 화성 전곡해양산업단지 소재 리튬 일차전지 생산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이날 오후 8시 기준 22명이 숨졌다. 화마(火魔)에 휩쓸린 2명은 크게 다쳤고, 경상자는 6명이다.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외국인 1명에 대해서도 소방당국은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화재는 1989년 10월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럭키화학 폭발 사고(사망자 16명)를 넘어 역대 화학 공장 사고 사상 최다 사망자를 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서신면 전곡리 리튬 일차전지를 제조하는 아리셀 공장에서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3동 2층에서 불이 났다.
소방 당국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불은 리튬 배터리에서 흰색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급격하게 커졌다. 소방당국 측은 “불이 난 3동 2층이 1185㎡(약 350평) 규모다. 흰 연기가 그 공간 전체를 덮는 데 1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화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공장 내) 작업자들이 처음에 조금 당황해하다가 소화기를 가져와서 (불을) 끄는 작업을 했는데, 리튬이다 보니 잘 꺼지지 않았다”고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앞서 3동 2층에서 심정지 상태의 한국인 김모(52)씨를 발견했으나 현장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후 소방당국의 진화·수색 작업으로 실종자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망자는 오후 8시 기준 김씨를 포함 모두 22명으로 파악됐다. 22명은 화성송산장례문화원 등 장례식장 5곳으로 나뉘어 안치됐다.
소방당국은 사망자 22명의 국적에 대해 외국인 20명, 한국인 2명으로 파악했다. 외국인 20명 중 중국 국적이 18명, 라오스 국적이 1명, 아직 국적이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사람이 1명이다. 숨진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여성이라고 한다.
“짧은 시간에 유독 연기 마시고 피해”
수색 과정에서 적잖은 사망자가 불에 탄 상태로 발견됐다고 한다. 소방 관계자는 “(불이 난) 2층에서 사망자들이 발견됐고,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며 “구조대원들이 내부에 진입했을 때 (사망자들이) 우측에서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이 2곳 있었는데, 문이 잠겨있거나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기가 순식간에 퍼지면서 공장 내 사람들이 건물 밖이 아닌 안쪽으로 대피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조선호 본부장은 “2층 출입구에서 발화가 됐는데, (사람들이) 대피를 불이 난 쪽으로 했다면 인명피해가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막혀있는 안쪽으로 대피했다가 짧은 시간에 유독한 연기를 마시고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방당국은 현재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외국인 1명에 대해서도 수색 중이다. 이날 오후 5시쯤 이 외국인의 휴대전화 위치정보가 사고 현장에 있는 것으로 파악돼 소방당국은 정밀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배터리 셀 하나서 폭발적으로 연소”
소방당국은 불이 난 장소에 가로 30㎝·세로 45㎝ 등 여러 크기의 원통형 리튬 배터리 3만5000개가 보관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이 배터리 중 1개에서 연소 반응이 일어나면서 불이 났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화재예방과장은 “2층에서 대피했던 관계자에 의하면 (리튬) 배터리 셀 하나에서 폭발적으로 연소가 시작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2층 출입구 쪽에서 불이 났다는 등의 목격자 진술을 확인하고 있다. 불이 났을 당시 3동 건물에는 60명가량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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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아비규환…“원자폭탄 터지는 줄”
목격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사고 현장 바로 옆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50대 여성은 “꽝꽝 터지는 소리가 1시간은 넘게 들렸다”며 “불이 난 공장 안에서 불꽃이 휘날리는 것을 봤고, 50~60명의 전 직원이 급하게 대피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불이 나자 2층에서 사람 2명이 1층 지붕 위로 뛰어내리는 걸 보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목격자들 모두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원자폭탄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며 사고 당시 들렸던 굉음을 표현했다. 스리랑카 국적 근로자 라히르(24)도 “전날 야근을 하고 숙소에서 쉬던 중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니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며 “큰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왔다”며 검게 탄 쇳조각을 들여 보였다.
금수성(禁水性) 물질 리튬 화재에 진화 어려워
그러나 초기 진화 작업에선 애를 먹었다. 금수성 물질(禁水性物質)인 리튬의 특성상 물이나 수분을 함유한 소화약제에 닿을 경우 가연성 기체인 수소를 발생시켜 폭발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오후 3시 10분쯤에서야 큰불이 잡혔고, 실종자 수색 작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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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가용 인력·장비 총동원하라”
수사도 진행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구체적인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130여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편성했다. 구조 및 현장 복구 지원과 DNA 긴급감정 등 사상자 신원 확인도 신속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아울러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 소방안전 수칙 준수 여부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다만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공장은 규모가 작고 층수가 낮아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고 옥내 소화전만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또 폭발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직원 증언도 나왔다.
수원지검도 다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중대재해’라는 점을 고려해 2차장 검사를 팀장으로 한 전담수사팀을 구성했다. 또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수습본부를 꾸리고, 사고 경위 파악에 나섰다. 구체적인 상황이 어느 정도 확인이 되면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도 살필 예정이다.
화성=손성배·이보람·박종서·이아미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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