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로컬룰 돋보기] <1> 최강야구 나온 '주로', 오직 한국에만 있는 까닭은

차승윤 2024. 6. 2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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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주로'는 베이스 사이를 연결하는 가상의 길이다. 주자가 태그를 피해 주로에서 3피트를 벗어나면 아웃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의 방송 화면 캡처. 사진=JTBC 캡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야구 경쟁력 강화에 몰두 중이다. 끝없이 고민하고 룰을 개정하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규칙과 달리 KBO의 야구 규칙과 운영은 과거에 머무르곤 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규칙과 운영 측면에서 한국 야구, MLB, 세계야구소프트볼협회(WBSC)의 야구가 어떻게 다른지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지난해 11월 13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일어난 상황이다. 주자 1·2루에서 타구가 2루수 정근우 앞으로 굴러갔다. 정근우는 공을 잡은 후 1루 주자 박재욱 태그를 시도했다. 그런데 정근우의 글러브에는 공이 없었다. 박재욱은 정근우의 태그를 피해 옆으로 빠졌다. 주자는 태그가 되지 않았음을 어필했고, 야수들은 주자가 3피트 아웃이라고 주장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주자 박재욱은 3피트 라인 아웃을 선언 받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중계를 맡았던 정용검 캐스터는 박재욱이 "베이스 기준 좌우로 3피트의 폭을 지닌 지대를 벗어나 아웃"이라고 했다.

판정 근거는 공식야구규칙 5.09(b)(1)이다. 주자가 태그당하지 않으려고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3피트(91.4㎝) 이상 벗어나서 달렸을 경우 주자는 아웃이다. 정근우, 정용검의 설명은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3피트라고 하는 것은 [주1]에 있다.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의 좌우로 각 3피트에 해당하는 구역이다. 이를 통상 주자의 ‘주로(走路)’로 정의한다.

주로는 베이스와 베이스를 연결하지만, base path는 태그를 시도하는 시점에서 주자와 베이스를 연결한다. 이찬희 제작.

주로 개념은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다. MLB 규칙인 공식 야구룰(Official Baseball Rules·이하 OBR)과 그에 근거해 만들어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규칙은 주로 개념을 삭제했다. OBR 5.09(b)(1)에 따르면 주자가 태그당하지 않으려고 주자의 Base path로부터 3피트 이상 벗어나서 달렸을 경우 주자는 아웃된다.

둘은 같아 보여도 다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누로(壘路)라고 할 수 있는 Base path는 야수가 주자를 태그하려 할 때 만들어진다. ‘주자의 현재 위치’와 ‘안전하게 진루하려는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이다. 주자가 태그될 때 베이스와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 위에 있다면 두 개념은 같아진다. 하지만 실제 경기 중 상황 100번 중 99번에서 둘의 의미가 달라진다.

Base path가 한국에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공식야구규칙 5.09(b)(1) [주1]은 “주로 밖을 달리고 있는 주자가 주로로 되돌아오면서 야수의 태그를 피하였을 때는 주자와 베이스를 연결하는 직선으로부터 3피트 이상 떨어지면 아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수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주자가 주로 밖으로 달려도 아웃되지 않는다는 규정([주2])에 그친다.

MLB는 Base path를 2007년 도입했다. 2006년까지 MLB도 베이스와 베이스를 연결하는 직선의 개념을 채용했다. 2011년까지는 이를 베이스라인(Baseline)으로 불렀고, 2012년부터 과거 개념과 혼동을 막기 위해 Base path로 부르기 시작했다.

주로 개념도 장점이 있다. 야구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주로 이탈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주로는 고정되어 있으므로 심판과 야수 입장에서는 주자가 어떻게 달리든 고정 영역을 벗어났는지만 관찰하면 된다.

그런데도 MLB는 두 가지 이유에서 Base path를 도입했다. 첫째, 직관적으로 태그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주자가 3피트 이상 달아났을 때 아웃을 선언하기 위해서다. 주로 개념을 쓸 때는 주로 이탈, 복귀에 대해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반면 Base path는 주자의 이탈이 무엇인지를 보다 간단하게 정의해준다.

두 번째, 주로 개념은 자연스러운 주루를 제약했다. Base path가 도입되기 전, 주자는 태그를 피하기 위해 제한적인 방향으로만 달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주자가 주로 밖에서 달리고 있었다면 태그를 피하기 위해서는 ‘오직’ 주로 방향으로만 몸을 틀어야 했다. 반면 Base path에서라면 주자는 어느 방향으로 몸을 피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진 2. 최강야구 상황 내에서 적용될 수 있는 주로와 Base path 개념. JTBC 캡처. 
사진 3. 최강야구 상황 내에서 적용될 수 있는 주로에서 박재욱의 플레이. JTBC 캡처. 

최강야구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박재욱은 우리나라 현행 규정에 의거, 주로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아웃이 됐다. <사진 2>에서 볼 수 있듯이, 박재욱의 주로인 회색 선과 정근우가 태그를 시도하는 시점에 만들어진 파란 선 Base path과 차이가 난다. 즉 MLB 규정에 근거하면 박재욱은 주로 밖으로 주루했더라도 태그아웃을 피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사진 3>을 보면 박재욱은 분명 주로를 벗어난 것이 맞다. 하지만 Base path가 주로 밖으로도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박재욱이 이동한 거리는 Base path를 3피트 이상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웃이 맞지만, 국제 경기에서는 세이프가 될 상황이다.

물론 한국에서 박재욱의 경우는 당연히 아웃이다. 최강야구는 OBR이나 WBSC 규칙이 아닌 한국 공식야구규칙을 사용한다. 다만 세계 무대에서라면 어떨까. 이와 같은 상황이 올림픽, WBC, 혹은 곧 열릴 프리미어 12에서 발생했을 때 한국 대표팀이 주로 개념을 들어 주장한다면 심판과 운영진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세계 야구에서 주로 이탈 개념은 17년 전에 사라졌다.

지난 20일 삼성 SSG전에서는 SSG 최지훈이 2루로 뛰던 중 주로를 벗어났으나 세이프를 받았다. 주로 개념대로라면 아웃이나 Base path 기준이라면 세이프다. 해당 판정을 통해 누로 개념이 암묵적으로 사용된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당시 박진만 삼성 감독이 세이프 판정에 항의하는 모습. 삼성 제공

“현장은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다. 칼럼을 준비하면서 몇몇 국내 심판들을 통해 “공식야구규칙에는 주로 개념이 남아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Base path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성문화된 규칙이 아니라 임기응변에 따라 판정한다는 뜻이다.

그저 번역상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이도 있다. 주로가 곧 Base path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내 현행 규정은 Base path와 다른 주로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또 해당 개념이 실제로 Base path와 다르게 적용되고, 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최강야구 사례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꼭 미국을 따르지 않더라도 그들이 왜 개정했는지는 알아야 한다. 만약 이미 현장에서 Base path로 판정하고 있다면,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규칙서를 현실과 맞지 않게 제때 개정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개념과 규정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면, 검토하고 변하는 게 KBO가 기대하는 국제 경쟁력 강화에 맞다고 본다.

이금강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
광역 세인트루이스 심판협회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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