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와 동사로도 사용되는 고유명사 '윤석열'

서부원 2024. 6. 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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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학교에 온 국정홍보물에 쏟아진 조롱... 신뢰 무너진 대통령과 '국가비상사태'

[서부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투르크·카자흐·우즈베크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6월 16일 새벽 경기 성남 서울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 구성원들과 공유하라고 하니 학교 게시판에 붙여놓긴 했는데, 반응이 조롱 일색이라 괜히 내걸었나 싶다. 누구는 "유체 이탈의 홍보물"이라고도 하고, 다른 누구는 "코미디가 따로 없다"며 한껏 비아냥댔다. "아이들이 보게 될까 겁난다"며 혀를 끌끌 차는 교사도 있었다.

얼마 전 학교에 정부가 보낸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겉봉투에 일반 사기업의 이름이 적힌 건 대개 뜯지도 않고 폐지함에 버려지기 일쑤인데, 상급 기관인 교육청이나 정부의 로고가 찍힌 거라면 그럴 순 없다. 상급 기관이 보낸 우편물은 공문처럼 다뤄야 뒤탈이 없다.

안에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를 소개한 홍보물이 들어 있었다. 제목은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였다. 용산 대통령실 건물의 벽면에 내건 현수막의 글귀 그대로다. '국익, 실용, 공정, 상식'이라는 네 단어 아래로 구체적인 목표를 열거해 놓았다.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 시대, 이렇게 여섯 항목이다.

국정 목표에 온갖 미사여구를 끌어다 썼지만, 공허하게 들릴뿐더러 다소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는 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한 동료 교사는 정부의 뻔뻔함에 분노가 치민다면서, 적어도 학교에는 보내질 말았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심지어 '불온 삐라'에 비유하는 이도 있었다.

아이들조차 입에 달고 사는, "눈 떠보니 후진국"
 
 정부가 보낸 국정 홍보물. 학교 게시판에 괜히 붙였나 싶을 정도로 교사와 아이들로부터 온갖 조롱이 쏟아졌다.
ⓒ 서부원
요즘엔 아이들조차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도 몰상식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 사회가 나아질 거라는 기대조차 버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퇴행은 '내로남불'이라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아예 상식이 뒤집혔다고 진단한다.

"대통령께서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닫지 않고서야,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상식을 회복해 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시키니까 한 걸 테지만, 이 홍보물을 제작한 공무원도 민망하지 않았을까요?"

정치에 아예 무관심한 아이들이라도 '해병대 채상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관여 의혹',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등 주요 이슈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 남발하는 거부권으로 대의 기관인 국회의 권능이 훼손되는 현실도 꿰뚫고 있다.

또 서슬 퍼런 권력 기관인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을 대통령의 '푸들'이라고 놀려댄다. 심지어 부패 방지를 위한 권익위원회조차 대통령의 '꼬붕'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하는 아이도 있다. 나아가 정부의 모든 기관이 앞다퉈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 대통령과 영부인은 본디 그래도 되는 존재라는 이야기잖아요. 학교엔 스승의 날 주고받는 선물 하나까지도 문제 삼아 엄포를 놓으면서."

아이들에겐 최근 권익위원회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무혐의 종결 처분이 결정타였다.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권익위원회의 발표를 두고, 법은 늘 강자의 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허튼소리라며 눈을 부라렸다.

아이들이 '공정'과 '상식' 하면 떠올리는 세 글자
 
 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했다는 내용의 비위 신고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공정'과 '상식'이라는 두 단어가 본뜻을 잃은 채 조롱당하고 더럽혀진 데 대해서만큼은 대통령이 언제든 책임져야 할 것 같다. 아이들조차 '공정'과 '상식'하면 거의 본능적으로 윤석열이라는 세 글자를 떠올린다. 두 단어를 공약처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다만, 그 의미가 분화됐다. 아이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우리 사회의 '공정'에는 두 가지 개념이 존재한다. 하나는 '사전적 의미의 공정'이고, 다른 하나는 '윤석열의 공정'으로 나뉜다는 거다. '상식' 또한 '사전적 의미의 상식'과 '윤석열의 상식'으로 나눌 수 있단다.

어른이고 아이고 이미 대통령의 이름은 무지와 분노, 퇴행과 몰상식의 대명사가 됐고, 일상생활에서 형용사나 동사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통령(어쩌다 대통령)'인 까닭에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라며 짐짓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지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요즘 유행하는 몇 개의 '예문'과 '번역문'을 소개한다.

"윤석열이 윤석열한 거죠."
이는 작년 '킬러 문항 배제' 소동이 벌어졌을 때, 고3 교실에서 횡행하던 한탄과 체념의 목소리였다. 교육과정과 대입 제도에 문외한인 대통령의 즉흥적인 한마디에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했다. 그 호들갑의 피해는 고스란히 고3 수험생에게 돌아갔다.

"윤석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대화 도중 이치에 맞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친구를 비난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종종 독백처럼 쓰이는데, 자칫 듣는 이를 화나게 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 입 다물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네가 윤석열인 줄 아니?"
이는 아홉 번의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대통령의 수험 이력을 빗댄 것으로,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N수'가 불가피하다는 조언을 건넬 때 활용된다. 보통 앞이나 뒤에 "경제적으로 부모님이 뒷받침해 주실 수 있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교육감조차 윤석열화하고 있는 것 같다."
구중궁궐에 살며 실제의 민심과는 괴리된 엉뚱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뜻으로, 교사들 사이에서 자주 쓰인다. 아첨하는 이들에 에워싸여 판단력을 잃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대체 뭐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으로도 활용된다.

캠페인 벌인다고 무너진 신뢰가 회복될 리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대통령실
 
홍보물의 다른 국정 목표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소비 심리가 얼어붙고 경기 부진에 자영업자의 줄도산이 이어지는 판국에,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운운하는 건, 차라리 조롱이다. '역동적'이라는 수식어에 하도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었다.

아이들조차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에 길들어 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날이 역대 최저의 출산율을 갱신 중인 현실에서 '따뜻한 동행'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낯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대통령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걸 두고도 '말의 성찬'일 뿐이라는 박한 평가 일색이다.

이공계열 인재들이 죄다 '의치한약'을 지망하고 'N수'도 불사하는 교육 현실에서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라는 글귀가 가당키나 한가. 지금 학교 교육은 '의치한약'을 정점으로 한 학벌 구조라는 '맹목'과 '획일'로 점철되어 있다. 서열의 벽은 더욱 높아졌고 두터워졌다.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표현은 또 어떤가. 일본에 모든 걸 양보하고도 뒤통수를 맞는가 하면, 중국, 러시아 등과 불필요한 마찰까지 빚어가며 '글로벌 호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남과 북이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을 뿌려대며 서로 악다구니를 쓰는 지경인데, 자유와 평화, 번영 운운하는 건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국가비상사태'다. 그의 공약과 정책적 비전을 현실화해야 할 공직 사회에는 영이 서지 않고 복지부동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느새 국민 다수가 대통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 정책조차 아이들이 패러디할 만큼 하수상한 시절이다.

전국에 홍보물을 뿌리고 캠페인을 벌인다고 해서 무너진 신뢰가 회복될 리 없다. 모두가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조아리는 시늉만 할 뿐이다. 정작 안타까운 건, 아이들이 '윤석열이 윤석열한' 부조리한 현실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할 거라고 단정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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