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감독' 봉준호의 엉뚱하고 재기 발랄한 시작

양형석 2024. 6. 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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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양형석 기자]

K팝을 좋아하는 10대에서 20대 초·중반의 젊은 대중들에게 '해야'라는 두 글자를 이야기하면 십중팔구는 16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고도 음악방송 1위를 하지 못한 아이브 미니 2집 타이틀곡을 떠올릴 것이다(서클차트 기준). 물론 지난 2019년 1월에 발매돼 음악방송 6관왕을 차지했던 여자친구 정규 2집의 타이틀곡이나 1980년대 메탈밴드 마그마의 노래가 생각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컴백홈'이라는 세 글자를 들으면 그 당시 학창시절을 보냈던 1970~80년대생들은 하나같이 집 나간 가출청소년들을 가정으로 돌아오게 했던 전설의 히트곡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생각할 것이다. 물론 걸그룹 2NE1은 지난 2014년 정규2집의 더블 타이틀곡 제목을 <컴백홈>으로 짓기도 했고 신예 힙합그룹 영파씨는 지난 3월에 발표한 미니2집 타이틀곡 < XXL >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의 안무를 오마주하기도 했다.

영국의 여성소설가 고 위다가 쓴 아동문학 <플란다스의 개>는 1975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가수 이승환은 지난 1992년 '이오공감'이라는 앨범을 통해 <플란다스의 개>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00년에는 영국 동화, 일본 애니메이션, 이승환의 노래와 제목은 같아도 내용은 무관한 한국영화가 개봉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거장이 된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였다.
 
 세계적인 거장의 장편 데뷔작은 아쉽게도 개봉 당시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 (주)시네마서비스
 
스타 감독들의 조금 어색(?)한 데뷔작들

물론 실사영화 데뷔작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부산행>)이나 이상용 감독(<범죄도시2>)처럼 행운을 타고난 감독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감독들은 데뷔 초 조악한 제작환경과 노련하지 못한 연출스킬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내놓을 때도 적지 않다. 지금은 '영화 장인'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감독들이 데뷔작에서는 흥행성적은 물론이고 완성도에서도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도 많았다.

<올드보이>와 <박쥐>,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에서만 세 번이나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박찬욱 감독은 지난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제작사의 입김 때문에 당시 인기가수였던 이승철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지만 서울관객 99명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박찬욱 감독 본인도 가능하다면 영화 비디오를 모두 찾아 소각해 버리고 싶다고 했을 정도.

오는 연말 <베테랑2> 개봉을 앞두고 있는 류승완 감독은 지난 2000년 단편영화 4편을 묶어서 개봉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액션키드'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이 거대자본의 지원을 받아 만든 첫 번째 상업 장편영화는 바로 2002년에 개봉한 <피도 눈물도 없이> 였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멋진 액션 장면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당대 최고의 스타 전도연이 출연했음에도 서울관객 22만으로 큰 흥행은 하지 못했다.

<간첩 리철진>과 <킬러들의 수다>,<아는 여자>,<박수칠 때 떠나라>,<굿모닝 프레지던트> 등을 연출한 장진 감독은 '장진식 코미디'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자기 색깔이 뚜렷한 감독이다. 장진 감독은 1998년 20대 중·후반의 젊은 나이에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했다. 4인조 강도단의 좌충우돌 소동을 그린 <기막힌 사내들>은 '장진식 코미디'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었지만 서울관객 1만4000명으로 흥행에서는 쓴 맛을 경험했다.

지금은 <외계+인>이라는 동병상련(?)의 작품이 생겼지만 최동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은 쟁쟁한 다른 작품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했다. <범죄의 재구성>은 개봉 당시 210만 관객을 동원하며 비교적 선전했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의 차기작인 <타짜>가 569만, <전우치>가 613만, <도둑들>과 <암살>이 각각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범죄의 재구성>은 최동훈 감독 커리어에서 흥행작으로 대우 받지 못했다.

봉 감독 친형에서 영감얻은 이성재 캐릭터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두나의 첫 주연작은 <플란다스의 개>였다.
ⓒ (주)시네마서비스
 
대학 재학 시절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단편영화 <백색인>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11기생으로 입학해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과 <지리멸렬>을 만들면서 주목 받았다. 그리고 <싸이더스>의 전신인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에게 발탁된 봉준호 감독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장편영화 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플란다스의 개>는 개봉 당시 '대진운'이 매우 좋지 못했다.

1999년 말과 2000년대 초에는 최민식과 전도연 주연의 <해피 엔드>와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2>, 설경구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렸던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등이 극장가를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영화들이 난립하던 상황에서 설 연휴가 끝난 다소 애매한 시기에 개봉한 신인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서울관객 5만7000명으로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을 시작으로 <자귀모>, <주유소 습격사건> 등에 출연하며 세기말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였던 이성재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교수임용을 기다리는 대학의 시간강사 고윤주를 연기했다. 비록 <플란다스의 개>는 만족할 만한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진 고윤주 역을 잘 소화한 이성재는 이후 영화 <하루>와 <신라의 달밤>,<공공의 적> 등에 출연하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달렸다.

이성재가 연기한 고윤주는 극 중에서 대학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고윤주의 캐릭터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도 교수로 채용되지 못하던 봉준호 감독의 큰 형을 참고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흥행과 별개로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뮌헨 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과 홍콩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 디렉티스컷 어워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능력을 인정 받았다. 그리고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을 계기로 해외의 영화 마니아들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플란다스의 개>는 미국의 영화평론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87%, 관객점수 77%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봉 감독 삼고초려에 영화계로 돌아온 배우
 
 봉준호 감독의 삼고초려에 영화계로 돌아온 고 변희봉 배우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특유의 유니크한 연기를 선보였다.
ⓒ (주)시네마서비스
 
이성재가 <플란다스의 개> 출연 당시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 받는 배우였던 것과 달리 영화 <링>의 귀신 역할과 드라마 <학교>의 아웃사이더 역할이 전부였던 배두나에게 <플란다스의 개>는 실질적인 주연 데뷔작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박현남을 연기한 배두나는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 특히 모델 출신답게 배두나가 영화 속에서 입은 귀여운 노란색 후드 티셔츠도 많은 화제가 됐다.

1980년대 이후 영화 출연이 뜸했던 고 변희봉 배우는 평소 그를 좋아했던 봉준호 감독의 삼고초려에 설득 당해 <플란다스의 개>에서 아파트 경비를 연기했다. 특히 지하에서 몰래 보신탕을 먹다 경비주임에게 걸리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보일러 김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롱테이크 장면이 있는데 이 때 선보인 변희봉 배우의 사투리 연기가 일품이다. 변희봉 배우는 <플란다스의 개> 출연을 계기로 2000년대 한국영화의 명품조연으로 맹활약했다.

김호정이 맡은 배은실은 고윤주의 아내로 윤주보다 2살 연상이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 진학 대신 취직을 해 교수를 목표로 공부를 이어간 남편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했다. 남편을 동생처럼 부려먹고 잔소리도 끊이지 않는 나쁜 아내처럼 보이지만 사실 은실도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 당한 아픈 사연이 있다. 그럼에도 은실은 자신의 퇴직금을 남편이 교수로 임용되기 위한 청탁비용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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