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전시]권순익 개인전 '나의 오늘'·아흐메드 마난 개인전 外
편집자주 - 이주의 전시는 전국 각지의 전시 중 한 주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전시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아흐메드 마난 개인전 '여 어데고? 거 언젠데? 니 누꼬!(Where is this place? What is that? Who are you!)' = 갤러리밈은 아흐메드 마난(Ahmed Mannan)의 한국 첫 개인전 '여 어데고? 거 언젠데? 니 누꼬!'를 개최한다.
작가가 일본에서 혼혈인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정체성 갈등을 주제로 한 초기 작품들과 핸드폰 사진에서 건져올린 일상 이미지를 내러티브로 이어가는 최근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아흐메드 마난은 자신이 태어난 오사카 지역 사투리로 만든 일본어 제목 'ここどこやねん、それいつやねん、お前誰やねん'을 한국 관객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부산 사투리로 번역했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무수한 사진들은 쉽게 잊히고 마는 일회성 기록들이지만, 작가는 그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화폭으로 불러와 덧입히고 변형시키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흐메드 마난은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이슬람교 교리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불균형을 지속해서 탐구해 오고 있다. 종교 교리와 연결된 행위들이 어떻게 한 개인과 집단 간의 불일치를 초래하는지를 독특한 감각과 강렬한 색채로 드러낸다. 일본인이면서 동시에 이방인의 시선으로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불합리하고 억압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실제로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종교 교리로 인해 학교와 사회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추후 가족의 장례를 치를 때 종교적인 이유로 매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고 자란 일본의 화장 관습을 의문 없이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화적 충돌, 정체성 혼란의 경험들은 작가가 다양성에 대해 깊이 사고하게 하고, 자신에 대해 발언하게 하고, 그것들을 작품 세계로 연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도록 이끌었다.
아흐메드 마난의 작품은 강렬함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형태와 대비되는 색의 조합은 날 것의 느낌을 발산하고, 일그러진 신체 도상은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기이한 인물들 간의 상호작용, 흡사 신화 속 존재인 듯 보이는 동물과 사물들, 비논리적인 이야기 구성 등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내러티브로 인해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순수한 감각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 가능한 동시대 삶의 모습들은 모두가 완벽하게 빛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내밀한 모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아흐메드 마난은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고, 때로는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꾸밈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음식으로 규정되는 정체성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을 다룬 초기 작품부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모티프로 한 최근 작품들까지 정체성의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사진은 개인의 일상과 사회적 경험을 기록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그곳에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왜 찍었는지 모를 핸드폰 속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작가는 스스로 묻곤 한다. “여 어데고, 거 언젠데? 니 누꼬!”. 기억나지 않기에 작가는 사진 위에 이미지를 더하거나 모호하게 덧그려 의도적으로 기억을 왜곡하고 변형시킨다. 작가에게 이 과정은 단순한 기억의 재구성이 아닌, 그동안 모호한 정체성으로 살아온 자신을 향해 새로운 나의 모습을 시도해 보는 또 다른 실험의 과정이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갤러리밈.
▲단체전 'My Sky Your Sky' = 휘슬 갤러리가 단체전 'My Sky Your Sky'를 진행한다. 전시는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 하늘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는 점에 착안해 작업에 임하는 작가들이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상이한 인상을 주제로 삼는다. 각기 다른 매체와 주제로 작가들이 작업하지만, 세작가의 작업이 어우러지는 이유에 주목하며 대상, 수행 그리고 감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점이 특징이다.
회화, 조각, 사진 등 각기 다른 매체와 주제로 작업하는 이해민선, 권현빈, 이민지의 작업을 대상, 수행, 감각이라는 키워드로 묶은 뒤 기획자들과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전시 안내문 형식이 흥미롭다. 이해민선 작가는 물감을 튕겨내지만 한번 흡수하면 수정이 어려운 인화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표면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회화 작가로 그는 ‘가볍고, 약한 사물, 임시로 놓인 채 방치된 사물, 버티고 있는 것’이라는 오랜 작업 주제와 연결한 작품을 선보인다.
조각에 몰두하는 권현빈 작가는 마치 스티로폼처럼 연약하고 섬세해 보이는 대리석판에 아주 얇은 석재용 칼로 직선을 반복적으로 파내어 기하학적 패턴을 만든 후 푸른 잉크를 칠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사라지는 안료의 특성을 통해 육중한 돌의 성질과 대조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사진가로 활동하는 이민지 작가는 자신의 역사와 관련된 장소에서 시간의 흔적을 추적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번 목적지는 인천 소청도로, 긴 시간을 머물며 특유의 독특한 화석 지형에서 영감을 얻어 낯선 모습을 포착하고, 이를 감광 작업, 프로타주 등 사진 이외의 다른 물질로 치환하는 탐구 정신을 선보인다.
세 작가는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지만,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공통점으로 풍부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13길 휘슬 갤러리.
▲권순익 개인전 '나의 오늘 Today' =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은 권순익 개인전 '나의 오늘(Today)'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점, 선, 면의 조형 요소를 탐구하며 작업한 '무아(無我)', '적·연(積·硏)_틈'과 같은 추상 연작들과 기와를 주재료로 한 설치 작품까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로, 3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점' 요소가 강조된 '무아(無我)' 연작은 캔버스 위에 다양한 색조의 물감으로 작은 원들을 그린 후, 그 위에 고운 모래와 물감을 섞어 다시 한번 쌓아 독특한 질감을 창출하고 평면성과 입체성을 혼재시킨다. 불교 철학에서 ‘영원하고 독립적인 실체가 존재하는 자아는 없다’는 개념의 ‘무아(無我)’는작가에게 캔버스와 하나 되어 작업에 몰두하며 자아를 비워내는 의미로 재해석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대작들을 통해 점의 무한한 확장성과 변주를 보여주며, 다양한 색 면의 조화를 통해 작품의 공간감과 깊이를 더한다.
‘선’과 ‘면’이 돋보이는 '적·연(積·硏)_틈' 연작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을 통합한 복합적인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적(積)'은 물감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과정을 의미하며, 이는 작가가 쌓아온 시간과 경험, 그리고 과거를 상징한다. ‘틈'은 이러한 물감층 사이에 생긴 공간으로, 작가는 이 틈에 흑연을 문지르며 다듬는 '연(硏)'의 과정을 거쳐 어둡지만 빛나는 독특한 질감을 표현해낸다.
이로써 작가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끊임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의 순간을 깨닫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2018년부터 시작된 작가의 기와 설치 작업은 흑연을 기와에 문질러 형태와 질감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에게 기와는 마음의 거울인 '심경(心鏡)’이며, 자아를 나타내는 또 다른 하나의 요소를 의미한다.
흑연을 문지르고 반복적으로 칠하는 작업 방식은 작가의 성실성과 장인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적 수련의 과정이다. 작가는 거칠어 보이는 흑연의 물성을 긴 시간의 고된 작업 끝에 반짝이는 새로운 물성으로 재탄생시키며, 오랜 시간 수양하며 깨달은 '오늘'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증명한다. 전시는 7월 21일까지, 서울 용산구 소월로 70 화이트스톤 갤러리.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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