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내년 6월부터 협정 파기 가능...시한폭탄 7광구, 中이 노린다 [7광구]

김상진, 오누키 도모코, 박현주 2024. 6.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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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천연가스 생산 해양플랫폼에서 연신 불길이 치솟는다. ‘7광구’로 불리는 제주도 남쪽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구역(JDZ)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다. 한·일 양국이 공동개발 협정 발효(1978년 6월 22일) 이후 46년째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중국은 이처럼 주변 해역에서 석유·천연가스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2022년 5월에 토대 설치가 확인된 7광구 인근 중국의 천연가스 생산 플랫폼에서 화염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 일본 방위성

7광구는 시한폭탄이다. 내년 6월 22일부턴 한·일 중 누구라도 공동개발 종료를 사전에 선언할 수 있다. 그러면 협정 기한(50년)이 도래하는 2028년 6월 22일부터 ‘무협정’의 혼돈 상태에 빠져든다. 앞으로 1년 안엔 양국이 해법을 찾아내야 한단 얘기다.

최근 양국 전문가 사이에선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활용해 신협정을 체결하자”는 안이 떠오르고 있다. 1998년 한·일이 과거사 화해와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담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표하고 ‘신 한·일 어업협정’까지 체결했던 것처럼 ‘제2의 공동선언’과 신협정을 일괄 합의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실무 당국간 사전 물밑 작업은 물론 양국 정상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광구 노린 중국 개입이 변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한국에선 일본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할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돼 있다. 협정 체결 이후 국제법 환경이 변해 일본이 '자국 관할'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커졌다. 현재는 복수 국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해역에선 각국 해안선에서 등거리 원칙으로 중간선이 그어지는 게 일반적인데, 일본의 주장대로라면 7광구의 경우 최대 90%까지 일본 측이 차지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협정 종료 시 중국의 개입이 변수다. 7광구는 한·일은 물론 중국의 EEZ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JDZ 협정은 중국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호시탐탐 7광구를 노려왔다.

박경민 기자

이미 일본은 위협을 체감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반발에도 동중국해에서 공격적으로 에너지 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7광구 인근에서 확인된 천연가스 플랫폼만 18개다. 2006년 춘샤오(春曉)를 시작으로 이미 상업 생산에 들어간 가스전도 여럿이다. 동중국해산 가스는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이 국내외에서 개발해 생산하는 천연가스 총량의 4%(2022년, 1일 생산량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뿐만 아니다. 중국의 항공모함 전단은 7광구 인근 해역을 지나 태평양으로 진출한다. 사실상 안방처럼 쓰고 있단 의미다. 이런 상황은 한·일뿐만 아니라 양국의 유일한 동맹인 미국도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중국이 해당 해역을 내해화하면 ‘항행의 자유’ 작전 등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협하는 가장 큰 잠재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상 수송로의 안전 확보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양국 합의 가능한 건 ‘신협정’뿐”


협정 파기가 가져올 여론 악화 등 정치적 후폭풍도 무시할 수 없다. “영토 문제처럼 휘발성이 강한 사안” “제2의 라인야후 사태” 등 우려가 일찌감치 쏟아진다. 윤석열 정부 들어 극적으로 개선된 한·일 관계가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단 의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법이 아닌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일 양국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7광구 협정의 난맥상을 연구해온 박창건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의 향후 선택지로 ▶한·일·중 3국 간 공동개발 ▶한국을 제외한 일·중 공동개발 ▶한국과 신협정 체결 ▶일본의 단독 개발 등으로 봤다. 그러면서 “그동안 국제 판례들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형성된 부분이 있는 만큼 기존 협정을 그대로 끌고 가긴 무리가 있다”며 “한·일이 양국 국익과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고려할 때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은 ‘신협정’ 체결뿐”이라고 짚었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내에서도 “중국이 끼어들면 안 된다. 어떻게든 한·일 간에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내년 수교 60주년 활용안 부상


이와 관련, 일본 정부와 정치권의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킬 아이디어로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활용하자”는 안이 부상하고 있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7광구 관련 신협정을 맺자는 구상이다.

일각에선 지난 1998년 10월에 한·일 정상이 공동선언을 발표하기 직전인 9월에 ‘신(新) 한·일 어업협정’을 맺었던 전례를 거론한다. 당시에도 그해 1월 일본 측이 일방적으로 구(舊) 어업협정을 파기하면서 새로운 협정 체결은 양국 간 뜨거운 쟁점이었다.

한마디로 과거 공동선언에 비견될 말한 ‘제2의 공동선언’과 함께 ‘신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을 패키지로 타결하자는 제안이다. 그래야 7광구를 갈등이 아닌 협력의 모델로 삼을 수 있단 것이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협정 파기 통보가 가능해지는 내년 6월 22일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1978년 당시 한·일 정부가 수교 기념일에 맞춰 공동개발 협정 비준서를 교환하고 협정을 발효시켰다. 그러다 보니 “잔칫날에 상을 엎지 않도록” 7광구 문제를 신중히 관리할 필요가 있단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현재는 외교부 주도로 대응 방안을 챙기다 보니 법리적 해석에 치중한 경향이 있다”며 “양국 정상이 정치적으로 결단하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면 사태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남은 1년간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으며 일본과 물밑 교섭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 역할론도…“외교력 풀가동해야”


미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미국은 단단해진 한·미·일 안보 협력을 깨뜨리는 한·일 간 갈등 요소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특히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도 7광구는 전략적인 가치가 높다.
2023년 8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소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이자 지한파인 아미 베라 의원이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7광구 문제를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베라 의원은 “우리는 동중국해에서 (한·미·일이) 공동탐사하는 것에 대해 논의해왔다”며 “미국의 에너지 업체가 (JDZ 내에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진 워싱턴에서 7광구 문제에 대한 인식이 약한 편”이란 평가가 많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표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한·일이 신협정을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는 만큼 대미 외교력을 풀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오누키 도모코 도쿄 특파원, 김상진·박현주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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