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1위 싸움 그 이상" 엔비디아∙MS, AI칩 규격 패권전쟁

이희권 2024. 6.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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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일 대만 타이베이 국립대만대 스포츠센터에서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인공지능(AI) 시대의 최고 기업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엔비디아가 AI 데이터센터 서버 규격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AI 기술 헤게모니를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와 MS는 이달 내내 전 세계 시총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접전 중이다. AI 무대의 주인공 자리 경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시총 1·2위 한 판 붙었다


김주원 기자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다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몇 달 동안 엔비디아와 MS가 데이터센터 서버의 규격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가 고객사를 상대로 차세대 주력 AI 칩인 ‘블랙웰(GB200)’을 엔비디아 독자 규격에 맞춰 서버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MS가 거부하면서 양사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해당 문제가 보고됐다는 것이다. 주력 사업분야가 다른 두 기업 간 충돌은 이례적이다.

엔비디아는 자사 AI 칩이 최고의 성능을 내도록 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AI 칩을 단품으로 판매하지 않고, 자체 GPU(그래픽처리장치)와 CPU(중앙처리장치) 수십 개를 이어 붙인 AI 수퍼컴퓨터 형태로 기업들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별 AI 칩 판매사가 아닌, AI 솔루션 제공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를 맞아 대만 타이베이의 한 호텔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수퍼 칩 ‘GB200’이 전시되어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반면 MS는 엔비디아가 정한 규격대로 서버를 구축하기 시작하면 향후 엔비디아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 있다는 우려를 이유로,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의 서버 규격에 맞춰 데이터센터를 지을 경우 향후 MS 자체 개발 칩 사용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AMD나 인텔 등 타사의 AI 칩으로 대체하기도 어려워진다. 수차례 신경전 끝에 최근 엔비디아는 일단 MS가 원하는 규격대로 AI 칩을 공급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反엔비디아 연대 성공할까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가 지난해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이그나이트2023'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마이크로소프트(MS)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IT업계에서는 AI 칩 기업과 AI 서비스 기업, 나아가 엔비디아와 반(反) 엔비디아 진영 간 물러설 수 없는 경쟁이 시작됐음을 보여준 사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오픈AI와 생성 AI 서비스 ‘코파일럿’을 내세워 화려하게 부활한 MS 입장에서 엔비디아는 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산이다. 전 세계 AI 칩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는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시장지배력으로 가격 협상력을 키우고 있다.

올해 연말부터 생산될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수퍼칩 블랙웰의 경우, 노트북만한 크기의 AI 가속기 하나가 개당 1억 원에 달한다. 엔비디아는 독자 서버 규격을 만들어, 고객사를 묶어두는 ‘락인’(Lock-in) 효과로 현재의 독점 체제를 지속하려 한다. 앞서 엔비디아는 엔비디아 칩으로 AI 모델의 학습·추론을 돕는 소프트웨어 ‘쿠다’를 통해 전 세계 AI 개발자를 엔비디아 AI 생태계에 묶어둔 이력이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찰스 리앙 슈퍼마이크로 CEO가 컴퓨텍스 2024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젠슨 황은 이달 초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최대 IT 박람회 ‘컴퓨텍스 타이베이 2024’에서 서버 제조사인 슈퍼마이크로의 찰스 리앙 회장과 여러 차례 어깨동무를 하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슈퍼마이크로는 엔비디아·AMD·인텔 등의 AI 칩과 메모리 등을 조립해 서버를 만들어 공급하는 회사다. 엔비디아가 서버 제조사들과 연합해 자사 중심의 서버 질서를 구축해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MS·아마존·구글 등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은 AI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엔비디아의 신형 AI 칩을 대량으로 주문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자체 AI 칩과 서버 장비를 개발하는 등 대안 찾기에 나섰다. 후발주자인 AMD·인텔 역시 엔비디아에 맞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MS·아마존·구글 등에 AI 칩을 공급하려고 시도 중이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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