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서도 "생각보다 워딩 셌다"… 한동훈 사실상 '반윤 선언' 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를 “공적 관계”로 규정하며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반대하는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안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출마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저는 공적 관계에 사적인 친소 관계가 관심 대상이 되고, 그 여부가 공적 결정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자신과의 오찬을 거부한 한 전 위원장에 대해 “저와 20년이 넘도록 교분을 맺어왔다”며 인연을 강조했던 것과는 다른 뉘앙스였다.
한 전 위원장은 채 상병 특검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위한 특검을 국민의힘이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엔 반대하면서도 “공수처 수사 종결 여부는 특검법 조건으로 달지 않겠다”고 밝혀, “수사 결과를 보고 국민께서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먼저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도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설치를 요구하겠다고 밝히며 “진짜 해야 한다. 안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한 전 위원장과 윤 대통령은 갈등을 반복해 ‘윤·한 갈등’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권 경쟁을 앞두고 당정 갈등을 우려하는 지지층이 많은 만큼 당초 여권에선 “반윤 후보로 비치지 않게 적당한 메시지를 낼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윤 대통령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당정 갈등 소지는 없애는 발언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을 넘는 강경 발언에 경선 캠프 내부에서도 “예상보다 수위가 좀 더 올라간 것 같다”(캠프 관계자)는 반응이 나왔었다.
이날 회견문은 한 전 위원장이 직접 큰 틀을 잡고, 세부 발언 등은 캠프 관계자들과 출마 전날까지 상의를 거친 결과였다고 한다. 한 전 위원장 측 인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사자성어로 하면 육참골단(肉斬骨斷·작은 손실을 보는 대신 큰 승리를 거둔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108석밖에 없는 절대 열세”라며 “야당의 전방위적인 특검 공세를 우리가 이겨낼 방안은 합리적인 대립 항을 내놓고 야당과 협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한동훈’의 홀로서기를 노린 포석이란 반응도 나온다. 친한계 의원은 “더는 윤심 아니라 민심대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당정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고선 지난 총선의 패인을 그대로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도 망하고, 대선도 망할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대통령실은 즉각 불쾌감을 드러냈다. 익명을 원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벌어진 틈을 더 크게 벌리고, 국민이 대통령을 멀리하게 만드는 야당식 정치를 해서는 정권 재창출이 요원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참모도 “여당 대표는 내부총질보다는 국정운영의 공동체로서 책임감 있고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친윤계 비판 수위는 더 높았다. 한 친윤계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의 본질과 속마음이 드러났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웠다가 척을 진) 유승민 전 의원보다 더 나쁘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친윤계 의원도 “당정의 수평적 관계 재정립이 마치 목표처럼 돼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보수 진영 패널 사이에선 “좌파들에게 놀아가기로 작심했나. 진짜 답이 없다”(전여옥 전 의원)는 원색적 비난도 나왔다.
이런 비판에 대해 한 전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성찰과 각오’ 원외 당협위원장 워크숍 참석 직후 “현실적으로 어떤 방안이 민심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지를 국민들께서 평가해 주시면 될 것 같다”고 맞섰다.
이날 한 전 위원장과 함께 전당대회에 출마할 러닝메이트도 윤곽을 드러냈다. 장동혁(재선)·박정훈(초선)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진종오(초선) 의원은 청년 최고위원으로 나선다. 함께 뛸 파트너를 사실상 조기 확정한 한 전 위원장과 달리 경쟁자들은 아직 러닝메이트를 확정하지 못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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