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의 미래를 묻다]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원자를 찾아서
영화 ‘아바타’에서 상온 초전도체로 나오는 언옵테늄, 마블 유니버스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만드는 비브라늄, 영화 ‘엑스맨’에서 울버린의 발톱을 구성하는 아다만티움, SF시리즈 ‘스타트랙’에서 물질-반물질 엔진을 가동하는 다이리튬, 이 모든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물질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러한 상상 속의 물질은 원소 주기율표에서 찾을 수 없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물질이다. 합금과 같은 화합물도 분명 새로운 물질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물질은 새로운 원소, 즉 원자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런데 원자의 종류는 유한하다. 현재 우리가 아는 원자의 종류는 총 118개다. 여기서 질문이 든다. 왜 하필 118개인가? 참고로, 맨 마지막 118번째 원자는 2002년 미국-러시아 공동 연구팀에 의해 처음 발견돼, 2015년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이 공식 인정한 오가네손(oganess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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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의 종류 118개 한정됐지만
‘오가네손’처럼 만들어낼 수 있어
SF영화 속 신물질 상상의 원자
한국 ‘코리아늄’ 원자 발견 목표
」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 원자
간단히 말해,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그것의 주위를 도는 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태양계와 같은 것이다. 물론 전자들이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원자핵의 주위를 진짜로 도는 것은 아니다. 원자와 같은 미시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들은 딱 정해진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파동처럼 공간에 퍼져 출렁이는 상태, 이른바 오비탈(orbital)을 형성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자들은 에너지가 낮은 오비탈부터 높은 오비탈까지 차곡차곡 채워 올라가게 된다. 오비탈의 에너지가 높을수록 그것을 채우는 전자는 원자핵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에너지가 가장 높은 오비탈을 채움으로써 원자의 가장 바깥으로 나간 전자, 즉 최외각 전자는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한다. 화학 반응이란 다름 아니라 한 원자의 최외각 전자가 다른 원자의 최외각 전자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원자의 종류가 꼭 118개로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원자핵 속 양성자의 개수를 늘리면 원자 속 전자의 개수도 계속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자핵 속 양성자의 개수를 무작정 늘릴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원자핵을 하나로 묶는 힘 ‘강력’
수소 핵을 제외한 모든 원자핵은 여러 개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아주 작은 공간에 하나로 묶인 상태다. 전기력만 생각하면 이러한 원자핵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양성자들 사이에 엄청나게 큰 전기적 반발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전기적 반발력을 능가하는 다른 어떤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이 바로 ‘강력’이다. 사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 자체로 쿼크라고 불리는 기본 입자들이 뭉친 복합체다. 간단히 말해, 강력은 쿼크들이 글루온이라는 매개체를 서로 주고 받으며 상호작용해 발생하는 힘이다. 강력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 매우 강하게 끌어당길 수 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급속히 줄어든다. 반면, 전기적 반발력은 거리가 멀어져도 천천히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핵이 하나로 묶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우선, 양성자들 사이에 중성자들이 잘 섞여 들어가 전기적 반발력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 다음, 강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에 놓인 양성자와 중성자를 강하게 묶어야 한다.
문제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개수가 많아져 원자핵이 지나치게 커질 때 일어난다. 짧은 거리에서 매우 강한 강력은 지나치게 커진 원자핵을 감당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118번째 원자인 오가네손은 118개의 양성자를 지니고 있다. 중성자의 개수는 대충 양성자의 개수와 같지만 그 둘의 개수가 다른 다양한 동위원소가 존재할 수 있다. 참고로, 양성자의 개수를 원자번호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인류는 오가네손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원자를 발견할 가능성
원자는 원자번호가 커질수록 불안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번호가 큰 원자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조금 더 안정한 다른 원자로 방사성 붕괴를 겪는다. 예를 들어, 원자번호가 각각 92와 94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방사성 붕괴를 보이는 대표적 방사능 물질이다. 다시 말해, 원자번호가 큰 원자들은 아주 가까스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제 원자번호가 더 큰, 새로운 원자를 발견할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인가? 다행히 그렇지 않다. 밀도범함수 이론(density functional theory)이라는 수치적 방법을 이용해 계산해 보면, 오가네손보다 큰 원자번호를 가지는 원자 중에서 특정한 범위에 속하는 원자는 안정(安定)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범위를 ‘안정의 섬’(island of stability)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라온’이라는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하고 있다. 라온의 여러 목표 중 하나는 새로운 원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원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벌써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코리아늄(koreanium)이다. 만약 코리아늄이 안정의 섬 안에 속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뜻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은 인류가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새로운 물질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명은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그리고 실리콘 시대로 구분되어 왔다. 혹시 그다음은 코리아늄 시대가 될 수 있을까?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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