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의 이코노믹스] ‘황금 티켓 증후군’ 끊고 ‘튀는 얼간이’ 키워야

2024. 6. 2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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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 오픈 AI CEO가 2023년 6월 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대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소프트뱅크벤처스


AI 혁명 시대 한국 교육개혁의 방향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맥킨지 컨설팅이 “앞으로 10년, 우리는 지난 100년간 발전보다 더 현저한 경험을 할 것”(‘The top trends in tech’)이라고 예측한 바와 같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AI) 혁명은 산업 구조 전반의 개편을 가속하는 등 20세기 말에 시작된 디지털 혁명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역사적 기술 혁명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AI 혁명은 미국 나스닥(Nas daq)의 소위 ‘매그니피션트7’(M7, 마이크로소프트·애플·엔비디아·알파벳·메타·아마존·테슬라)과 오픈 AI가 주도하고 있다. ‘M7’의 시가총액은 지난 14일 현재 13조8000억 달러로 미국 증시 상장주식 시가총액의 25%에 달한다. 중국 증시 시가총액과 독일·일본·영국·프랑스 4개국 증시 시가총액 합계(13조3000억 달러)보다 크다.

「 독·일·영·프 시총 합계 넘은 M7
게이츠·올트먼 등 20대 창업

투자 위험 감수하는 자본시장
개방적인 업계 분위기 뒷받침

의사·법관‘황금티켓’집착해선
세상 바꿀‘튀는 얼간이’안 나와

AI 혁명의 지속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대형언어모델에 들어가는 엄청난 투자 비용보다 수익성 창출이 미흡해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AI가 로봇과 결합한 휴머노이드(humanoid) 시대의 도래로 M7이 주도하는 AI 혁명은 확산할 전망이다.

M7 시총, 미국 증시 25% 차지
물리학자 사피 바칼(Safi Bahcall)이 2019년 발간한 『룬샷(Loonshots)』은 주류 사회에서 외면받은 ‘미친 아이디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주며 큰 주목을 받았다. ‘룬(loon)’이란 단어는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얼간이’를 뜻한다. 따라서 ‘룬샷’은 ‘얼간이의 도발’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주원 기자

흥미로운 점은 이 ‘M7’과 오픈 AI 창업자 8명 중 5명은 20대에 창업했고, 이들이 학부 중퇴(3명), 학사(1명), 석사(2명), 박사과정 중퇴(2명)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픈 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5년 위치기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룹트(Loopt)’를 창업했고, 26세이던 2011년 룹트의 벤처 인큐베이터 기업인 ‘Y 컴비네이터(Combinator)’에 참여하고 2014년 CEO가 됐다. 서른살이던 2015년 오픈 AI를 창업하고 2022년 11월 챗 GPT(ChatGPT)를 발표하며 AI 혁명 시대의 총아로 등장했다. 그뿐 아니라 올트먼은 자신의 벤처 자본사를 통해 40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최소 28억 달러 상당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 ‘M7’의 창업자와 오픈 AI의 올트먼은 전형적인 ‘튀는 얼간이’다. ‘튀는 얼간이’의 공통점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엄청난 비전·창조적인 아이디어·폭발적인 열정을 가진 천재라는 점이다. 의문은 이처럼 놀라운 ‘튀는 얼간이’가 왜 미국에서만 출현하는가다.

2023년 말 현재 미국의 벤처 자본업계에는 3417개사가 운용자산 1조2000억 달러를 굴리고 있다. 미국 벤처자본사의 스타트업 투자에 있어 가장 큰 특징은 ‘대박(moonshot)’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 투자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엔비디아의 경우 나스닥에 기업을 공개한 1999년 주당 12달러이던 주식을 지난 5월 말까지 보유했다면, 총수익률은 40만%에 달한다. 만약 같은 기간 애플에 투자했다면, 총수익률은 5만%에 달한다.

‘대박’ 만드는 미국의 혁신 생태계
미국의 국가 혁신 체계는 개방적인 과학기술계·엄격한 지식재산권 보호·공정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 등이 벤처 자본산업을 돌리는 허브 역할을 한다. 스타트업의 단계에 따라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지원을 제공해 성장을 지원한다. 미국의 벤처자본사는 개척 정신의 전통을 이어 도전을 중시하고 실패에 대해 관용적인 사업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대박’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하는 한편 이에 상응하는 높은 투자 위험을 감수하는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유럽과 일본의 국가 혁신 체계는 과학기술계와 자본 시장이 분리된 구조로, 은행 중심의 금융발전 전통에 따라 벤처자본업도 스타트업의 사업 위험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유럽과 일본도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인 정책을 전개하고 있으나, 유망한 스타트업이 미국으로 탈출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이유는 유럽과 일본에서는 학연과 지연 등 기득권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고, 핵심 기술 개발 투자에 따른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투자 문화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김주원 기자

M7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 경제는 2017~2022년 사이 연평균 7.1% 성장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2.3% 증가를 주도했다. 이로 인해 세계의 자본과 기업이 미국으로 집중함에 따라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2011년 21.1%를 저점으로 2022년 26.1%로 높아지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연합(EU)과 영국을 합한 비중은 25%에서 20.7%, 일본은 8.4%에서 4%로 낮아졌다. 즉 세상을 바꾸는 ‘튀는 얼간이’의 디지털 혁명이 미국 경제의 부활을 가져오고 있다.

만약 M7과 오픈 AI를 창업한 ‘튀는 얼간이’들이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엉뚱한 의문에 대한 대답은 부모가 사교육을 열심히 시켜 의대나 법학대학원을 보내 의사나 법관이 되게 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우리에게는 상식적인 이 대답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Korea Economic Survey 2022)는 ‘황금 티켓 증후군’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황금 티켓’은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소득 격차로 인해 평생 소득이 높은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의 소질이나 취향과는 무관하게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러야 하는 한국식 통과의례를 의미한다.

한국식 통과의례, 혁신 발목 잡아
‘황금 티켓 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는 기술 변화로 인해 노동시장의 인력 수요가 빠르게 변함에도 경직적인 교육제도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그 결과 대학 진학이 사회 진출의 ‘황금 티켓’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OECD보고서는 이 ‘황금 티켓 증후군’이 결혼과 출산 및 삶의 만족도를 저하하고, 잠재적으로는 삶에 상흔효과를 가져온다는 뼈아픈 충고를 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출산율과 생산성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 한국 경제는 2040년대 마이너스 성장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며 위험을 경고했다. 즉 ‘황금 티켓 증후군’은 ‘튀는 얼간이’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계층 양극화·결혼 기피·저출산은 물론 저성장의 원인으로 작용해 현재와 미래에 걸쳐 국민의 행복을 저해하는 한국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벤처 생태계도 최근 상당히 개선됐지만 ‘황금 티켓 증후군’을 극복하고 ‘튀는 얼간이’들이 출현할 가능성은 여전히 미약하다.

AI 혁명 대응할 교육 제도 필요

교육부가 2023년 12월 27일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확정·발표했다. 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현행 국어, 수학, 사회·과학탐구, 직업탐구 영역에서 실시하던 선택과목제를 폐지하고 통합형으로 치러진다. 모든 수험생은 2028학년도 수능부터 문·이과 구분 없이 같은 과목을 치르게 된다. 고교 내신 성적은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하되 구분은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완화한다. 사회·과학 일부 과목은 절대평가를 적용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 목동 학원가의 모습. 뉴스1

그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AI 혁명이 진행될수록 ‘황금 티켓 증후군’의 부작용과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사교육 참여율은 78.5%,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교육부 유아 및 초중등교육 예산의 41%에 해당하는 27조원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의 대부분은 선행학습이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숨겨져 있는 해답을 찾는 기술을 습득하는 학습은 거의 쓸모가 없다. 생성형 AI는 사람이 수십 년의 교육과 전문적인 경험의 축적을 쌓아야 작성 가능한 답변을 평균 1분 안에 생산한다. AI 혁명은 15세기 중반에 일어난 인쇄술 혁명 이래 최대의 지적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예고되며, 각 나라의 교육 제도가 AI 혁명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각국의 미래 경쟁력이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2028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핵심은 2028년 대입부터 모든 학생이 문·이과 구분 없이 동일한 과목으로 시험을 치르고, 현재의 고등학교 9등급 상대평가 체제를 5등급으로 하고 절대평가를 병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교육은 없어질 것인가.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수가 19세기 방식으로 교육’(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중앙일보 2023년 2월 5일자)하고 있는 대학 교육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입시 제도의 기술적 개선으로 ‘황금 티켓 증후군’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세상을 바꿀 ‘튀는 얼간이’가 나올 수 있는 교육 생태계 전면 혁신은 지난하다 하더라도 ‘황금 티켓 증후군’의 함정은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입시 제도의 기술적 개혁 차원이 아니라 AI 혁명이란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폭넓고 과감한 교육개혁을 국가 개혁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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