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문명의 전환
로마제국의 첫 번째 기독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는 몇 세기 동안 박해를 받았던 기독교를 정식으로 인정해 세계의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전환점을 제공했다. 그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현 튀르키예 이스탄불)으로 옮김으로써 중세기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콘스탄티누스 1세에 관해 학생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그가 세운 기념물이나 그 시대 예술품들은 대체 왜 ‘기독교 미술’이 아닌 여전히 ‘이단 스타일’의 미술이냐는 것이다.
현재 로마에 남아 있는 유적 중 콘스탄티누스가 세운 기념물에 기독교적인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콘스탄티누스의 시각 문화는 여전히 그리스-로마의 전통적인 스타일로 표현됐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짜깁기의 대가였다. 로마 콜로세움 문턱에 자리 잡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전 황제들의 기념물에서 약탈해 온 조각품들을 여기저기 삽입해 만든 몽타주나 다름없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의 얼굴을 전 황제 얼굴 위에 새겨 자신의 작품처럼 버젓이 전시했다는 점이다. 트라이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등 훌륭하다는 황제들의 작품만을 따왔다는 점에서 그의 몽타주는 조상의 업적과 명성을 자기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 미술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말 그대로 턱밑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한 목자’라고 불리는, 지하 묘지 카타콤에서 발견된 조각상(사진)은 어디를 보아도 3세기 로마 시대 전통적 스타일이다. 산양을 어깨에 메고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 주변을 돌았다는 전설을 표현한 헤르메스 신상을 본떠 목자 예수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카피톨리니’ 비너스 여신상은 이브가 추방당하는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문명의 전환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아직 기독교가 무엇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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