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비현실적 출산율, 현실적 대책
국민 한 명 한 명이 인구 전문가인 것 같다.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지난 19일 정부가 발표한 저출생 대책의 기사 댓글만 봐도 해법이 보인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육아휴직 급여 월 250만원으로 상향 등 아이를 낳은 사람을 지원하는 각종 대책을 내놨다.
정부 대책을 설명하는 기사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구조적 틀을 바꾸지 않고 출산휴직 강화나 돈 주는 정책 등 이런 식으로 출생 부양만 하는 건 답이 아니다. 결국 수도권 대학 지방 이전 등 지방 인프라 구축이 근본적 해법”(rndp****), “문제는 시스템이지 복지가 아니다.”(kkhw****)…. 모두 정답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2명. 올해는 그보다도 낮은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022년 평균 출산율이 1.49명, 한국 다음으로 출산율이 낮은 스페인 출산율이 1.16명임을 고려하면 0.6이라는 숫자는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해외 석학이 인터뷰에서 “한국은 완전히 망했네요. 들어본 적 없는 출산율이에요”라는 놀란 반응을 보였을 때가 0.78명이었다.
사실 정부라고 구조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번 대책에 담지 못 했을 뿐. 듣기론 저출생 대책의 최종 발표를 앞두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83번의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고치고 또 고쳐 만든 84번째 버전이 저출생 대책의 최종본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는 뜻이다.
정부 대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전문가 중 일부는 “현실적으로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아쉬움은 ‘현실적으로’라는 단어에 있다. 비현실적 저출산 상황에서 나온 현실적 대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이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부담, 대학 서열화로 인한 사교육 과열이 앞으로 풀어야 할 구조적 문제다. 이해관계는 첨예하다. 저항은 거셀 수밖에 없다. 사교육 과열과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해당 학교 졸업생은 불만이 나올 테고, 대치동에서 수억 원의 사교육비를 쏟아부으며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과 학부모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수도권 인구가 줄면 주택 소유자의 반발도 예상된다.
첫째가 곧 3살이 되는 지인은 타던 차를 팔기 위해 알아보고 있다. 대신 아버지 차를 같이 타겠단다. 그는 “아이 영어유치원을 보내려고 하는데 월급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비현실적 출산율 뒤엔 이런 비정상적 현실이 있다. 문제 해결의 벽이 아무리 높더라도 넘어야 하지 않겠나.
정진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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