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5년 단위 대한민국

김현길 2024. 6. 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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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퇴임 후 처음 서울을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작된 신화에 대해 언급했다.

연임 불가로 5년마다 새 대통령을 뽑는 한국에서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올라타지 않고 홀로 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동해 석유가스전 관련 발표에서도 그러한 조바심이 읽힌다.

석유·가스가 확인도 안 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서 '동해가스전의 300배' '140억 배럴' '금세기 최대' 같은 장밋빛 전망을 해야 했는지 후폭풍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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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길 경제부 차장


지난해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퇴임 후 처음 서울을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작된 신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당시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기간에 1인당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노무현정부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문재인정부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 중 국민소득 관련 부분은 발언 당시만 해도 해석에 이견이 있어도 사실 그 자체엔 어긋남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5일 한국은행이 기준을 개편한 새로운 국민계정 통계를 발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은은 5년마다 기준연도를 바꿔 그간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들에 따른 부가가치를 반영해 국민계정 통계를 수정하는데, 그렇게 하면서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 돌파 시점이 2017년에서 2014년으로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앞서 문 전 대통령이 염두에 뒀을 2017년 역시 2018년에서 1년 앞당겨진 것이었다. 직전 통계기준 개편이 있었던 2019년 1인당 GNI 3만 달러 돌파 시점은 2018년에서 2017년으로 달라졌다. 이로 인해 2017년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정부는 임기 첫해 1인당 GNI 3만 달러를 넘게 됐었다.

정치인이 자신들의 치적을 강조하고 치부는 감추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한 해의 절반 가까이 이른 시점에 임기를 시작했어도 임기 첫해 3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고 강조하는 건 민망하지만 정치인의 수사(修辭)로 용납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정권 간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과정에서 이전 정권과의 연속성은 고려치 않고 모든 업적이 자신들에게서 비롯됐다 여기는 상황이다. 이는 갈수록 골이 깊어지는 정치 양극화와 맞물리며 상대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임 불가로 5년마다 새 대통령을 뽑는 한국에서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올라타지 않고 홀로 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상당수 정책의 효과나 부작용이 드러나기에 5년은 짧다. 그런 점에서 전 정권과 무관한 듯 선을 긋고, 서로 구분 짓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은의 통계기준 개편으로 1인당 GNI 3만 달러 돌파 시점이 2018년에서 2017년으로 바뀌고, 다시 2014년으로 앞당겨지는 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한국은 5년마다 바뀌는 대통령과 별개로 연속적이다.

5년 단위 정권이 판단의 기준이 될 때 부작용은 ‘누가 더 잘했다, 못했다’는 평가를 둘러싼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장기적 안목이 힘을 잃고, 단기 성과에 조바심을 내게 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동해 석유가스전 관련 발표에서도 그러한 조바심이 읽힌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주시면 좋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지난 3일 발표는 수많은 논란과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석유·가스가 확인도 안 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서 ‘동해가스전의 300배’ ‘140억 배럴’ ‘금세기 최대’ 같은 장밋빛 전망을 해야 했는지 후폭풍이 일었다.

자원개발은 수많은 실패의 아픔을 딛고 서는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만큼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의 판단이 오롯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권의 의지가 강할 때 당장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결과가 뒤따르지 못할 땐 더 큰 반작용으로 뒷걸음칠 수도 있다. 이명박정부 이후 한동안 해외 자원개발 투자가 위축된 경험도 있다. 정권 이후까지 내다보는 지혜와 차분함이 필요하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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