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밀양사건과 무관, 죽어야 끝나나"...피해자 9명 집단진정
[유지영 기자]
▲ 2004년 밀양 성폭력 사건 당시 가해자 얼굴이라며 이름, 사진 등이 공개된 9명이 23일 밀양경찰서에 단체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
ⓒ 유지영 |
2004년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로 얼굴 사진과 이름 등이 공개된 이들 9명이 "사건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며 유튜버와 블로거 들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23일 경남 밀양경찰서에 집단으로 제출했다. 이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관련 민원을 냈다.
이들은 이른바 '밀양 사건 가해자 단체 사진'으로 유포된 사진 속 주인공들이다. 피해자들은 2004년 잘못 신상이 노출된 후 20여년간 밀양 사건이 재조명될 때마다 당시 사진이 그대로 사용돼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금도 일부 유튜버들에 의해 신상공개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 20년 전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결백을 호소했던 정아무개씨는 20년 후 다시 같은 이유로 언론의 취재에 응했다. |
ⓒ 유지영 |
이날 <오마이뉴스>와 밀양경찰서 인근에서 만난 진정인 정아무개(38)씨는 인터넷에 관련 사진을 올린 유튜버와 블로거 등을 인터넷 명예훼손으로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진정인은 정씨를 포함해 모두 9명으로, 9명 전원이 직접 밀양경찰서에 출석해 진정을 접수했다.
▲ 2004년 당시 이미 "조회수가 4만건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사실은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학생들로 드러나 엉뚱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된 사진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튜브 등에서 유포되고 있다. |
ⓒ KBS |
2004년 12월 10일자 뉴스데스크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사건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 파문> 보도에서 "경남 밀양의 한 고등학교 학생인 정모군은 어제부터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이 최근 밀양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라며 실명과 사진이 올려졌기 때문입니다"라고 보도했다. 정씨도 직접 출연해 "혹시나 저를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겁나고, 인터넷도 겁나고..."라고 증언했다.
KBS도 "인터넷에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피의자라며 올라와 있는 학생들의 사진입니다. 조회수가 4만 건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사실은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학생들로 드러나 엉뚱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 지난 2022년 방송된 범죄 교양 프로그램 '알쓸범잡2'의 한 장면. |
ⓒ 알쓸범잡2 |
▲ 이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지난 17일 '알쓸범잡2' 정정을 요구하는 방송 민원을 제출했다. |
ⓒ 방심위 캡처 |
정씨가 진정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0년 무렵 인터넷에 사진이 공개되자 경찰에 진정서를 냈고, 사진 등을 유포한 10여 명 가량을 잡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막상 잡고 보니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도 있어 마음이 약해져 구두로만 사과를 받고 경찰에 선처를 원한다고 말하고 넘어갔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었는데,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됐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20년간 아니라고 밝히고, 몇몇 게시물이 정정됐음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비슷한 사건만 봐도 손발이 떨리고 내 삶이 아직 2004년에 멈춰있는 것 같다"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20년간 주변에도 계속 밀양 사건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해명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밝혔다. 정씨는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아니라고 했지만 내 사진이 이미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니 사회생활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김씨 "초등생 자녀 때문에... 친구들 설득해 단체진정"
공개된 단체 사진에 등장하는 김아무개(38)씨 역시 그간 밀양 사건이 재조명될 때마다 주변에 해명을 해야 했다고 했다. 김씨는 "그간 여러 차례 군대 후임이나 대학 친구들이 '너 아니지?'라고 물어오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때마다 가해자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라면서 "저희가 죽어야 사진이 올라오는 일이 끝나지 않을까. 지금 사진을 삭제해도 몇 년 뒤에 다시 올라오지 않을 보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내가 떳떳하니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알쓸범잡>에도 사진이 올라왔다는 걸 최근에 발견하고 이러다가는 초등학생인 자녀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진정서를 내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씨는 단체사진 속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진정서를 제출하자고 설득했다. 이에 사진 속 친구들 9명 가운데 연락이 닿지 않는 1명을 제외하고 8명이 모여 진정서를 내기로 했다.
사진 속 인물은 아니지만 과거 정씨와 싸이월드에서 교류하다가 가해자로 지목된 방아무개(38)씨도 진정서를 냈다. 그는 현재 유튜버로부터 신상공개 협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방씨는 2004년에 사건과 무관한 친구들의 사진이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걸 보고 직접 밀양경찰서를 방문했지만 "(당시 경찰관이) 항의 전화가 너무 많이 오니 너희 일까지는 신경 못 써준다고 알아서 하라고 해서 접수조차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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