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시 플레저’에 딱…매서운 ‘온러닝’ 질주
1분 만에 참가 티켓이 매진됐다. 지난 6월 9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2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장보기오픈런’ 이색 마라톤 얘기다. 행사를 개최한 우아한형제들도 예상 못한 수준의 열기였다. 특히 참가 신청은 ‘아이돌 콘서트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에 맞먹었다는 후문. 강세영 우아한형제들 커머스브랜드 팀장은 “4월 22일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하고 4월 24일 일반 티켓을 판매했는데, 두 차례 모두 개시 1분 만에 티켓 판매가 마감됐다”면서 “일반 티켓 판매일 하루 동안 접수 홈페이지에는 약 4만명이 접속, 러닝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러닝 열풍을 느낄 수 있는 지표는 여럿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커뮤니티 플랫폼 밴드에서 ‘러닝과 걷기’를 주제로 삼은 모임은 3년 새 77% 늘었다. 함께할 러닝크루를 찾아 앱을 뒤적이는 것. 온러닝 등 일부 러닝화 브랜드는 리셀(비싼 값에 되파는 거래) 현상까지 감지된다.
유독 한국만 러닝에 푹 빠진 걸까. 해외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2025년 영국 런던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자 수는 90만명을 기록했다. 올해 4월 열린 대회 참가 신청자 수(58만명) 대비 약 2배 늘어난 숫자다. 그야말로 전 세계적 ‘러닝 붐’이다.
고물가 시대 ‘가성비’ 딱 맞네
러닝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접근성이 뛰어나다. 앞서 유행했던 골프나 테니스의 경우 고가 장비와 라운딩 비용으로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하지만 러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 사실 비용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러닝화와 운동복만 챙기면 되기 때문. 또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축구나 농구 등과 달리 러닝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 혹은 혼자서도 운동할 수 있다. 운동 시간도 본인이 조절할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해 운동을 즐기지 못할 일도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시간·비용 부담이 적다는 점과 고물가 상황이 맞물려 러닝 열풍이 생겼다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영향으로 골프나 테니스 등 장비나 장소 섭외가 필요한 운동 수요가 크게 줄었다”면서 “러닝 인기는 정보 통신의 발달로 취향이나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모이기 수월해진 영향도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 ‘불황기 호황 산업 분석·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운동은 오락·문화와 함께 경기 민감도가 높은 축에 속했다. 불황에는 운동마저 꺼린다는 의미다.
비용 부담이 덜하면서도 ‘건강한’ 이미지를 갖췄다는 점 역시 인기 요인이다. 최근 MZ세대 트렌드는 ‘헬시 플레저’다.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러닝은 헬시 플레저의 대표 격이다. 여기에 깔끔한 디자인의 러닝화와 운동 후 ‘시간 인증’ 등을 SNS에 남길 수 있다는 점도 MZ세대 취향을 저격하는 요인이다. 실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러닝스타그램’ ‘러닝크루’ ‘러닝’ 등 단어로 태그해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경우 ‘러닝’ 태그를 단 게시물이 350만개에 달한다. 서울 영등포구 안양천~여의도 코스를 뛰는 러닝크루를 운영하는 최정훈 씨는 “크루원 절반 이상이 2030세대다. 커플로 오는 경우도 많고, 홀로 와서 뛰는 크루원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러닝 인기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번졌다. 웹툰 작가 기안84는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도 다양한 러닝과 마라톤 참가 소식을 전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모델 한혜진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21㎞ 마라톤을 완주했다. 예능 부문에서 마라톤과 러닝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는 모습이다.
전 세계 주식 시장도 ‘들썩’
운동과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프코어(등산 기반), 블록코어(축구·럭비 기반)와 함께 러닝코어가 주목받는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최근 패션 시장에서 주목받는 온러닝과 새티스파이, 호카오네오네, 디스트릭트비전 등은 모두 러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브랜드”라면서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러닝 특성상 통기가 잘되고 편안한 소재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최근 패션업계 트렌드인 ‘덜어내기’와도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는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온러닝’의 질주가 매섭다. 온러닝은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선수 출신 올리비에 베른하르트 창업자가 ‘발이 편한 러닝화’를 목표로 만든 브랜드다. 사업 초기에는 유럽과 미국 중심으로 사업 성과가 나왔고 최근에는 일본 시장을 강타했다. 일본 온러닝 도쿄 플래그십 매장(온 도쿄) 앞은 평일에도 30~40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을 만큼 인기다. 국내에는 아직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일부 편집 매장이나 해외 직접 구매로 구매하는 이가 늘고 있다. 타 브랜드와 온러닝의 협업 모델은 리셀 플랫폼 크림 등에서 발매가 2배 수준의 가격에 거래된다. 실제 국내 패션 브랜드 포스트아카이브팩션(파프)과 온러닝 협업 상품은 현재 크림에서 50만~6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발매가는 28만원이다.
러닝 열풍은 주식 시장까지 번졌다. 실적 고공행진에 힘입어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는 단계다. 미국 나스닥에 ‘온홀딩스(ONON)’로 상장한 온러닝 주가는 올해 초 25달러 수준에서 6월 12일 종가 기준 43달러까지 치솟았다. 호카오네오네 등 러닝화 브랜드를 전개하는 덱커아웃도어 주가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670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6월 12일 종가 기준 1039달러를 기록했다. 일본 도쿄거래소에 상장된 아식스 주가도 올해 초 4300엔에서 6월 12일 9200엔으로 뛰었다. 미즈노 역시 올해 초 3935엔에서 6월 12일 8650엔을 기록했다.
국내 패션 기업도 러닝화 트렌드 효과를 보고 있다. 휠라는 ‘인터런’에 이어 ‘에샤페’까지 러닝화를 성공적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휠라의 러닝화 인터런은 지난해 하반기 첫 출시 직후 핑크 컬러가 매진됐고, 지난 3월 새롭게 선보인 핑크블라썸 컬러도 발매 5분 만에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품절됐다. 새롭게 선보인 러닝화 에샤페 역시 전국 유통 매장에서 여성 주요 사이즈가 매진돼 추가 물량을 투입 중이다. 프로스펙스 러닝화도 러너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다. 프로스펙스 러닝화 헥사그램 등은 지난해부터 ‘가성비’로 입소문을 탄 상태다. 프로스펙스는 이에 힘입어 최근 한국타이어와 협업, 트레일 러닝화 ‘사패’도 출시했다. 트레일 러닝은 트레일(Trail)과 러닝(Running)의 합성어로 산이나 들, 초원지대를 달리는 것을 말한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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