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경제적 살인과 사적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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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다니던 작은 회사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폐업하자 '그'는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돈으로 편의점을 차렸다.
그러나 최소 월 500만원 수익이 난다던 전 점주의 설명과 달리 수익은 바닥을 헤맸다.
그래서 임금체불은 경제적 살인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살인'을 저지른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그 죄에 비해 상당히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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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다니던 작은 회사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폐업하자 ‘그’는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돈으로 편의점을 차렸다. 그러나 최소 월 500만원 수익이 난다던 전 점주의 설명과 달리 수익은 바닥을 헤맸다. 결국 1년 만에 편의점을 접고, 건설일용직의 길로 들어섰다. 그를 고용한 사장은 일을 수주하면 그와 같은 일용직들을 모아 일을 시켰다. 그러나 개인사업자 밑에서 일하다 보니 임금은 항상 밀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장이 사라졌을 때, 그가 받지 못한 임금이 5개월분에 달했다. 가족에게 최소한의 생존비라도 주기 위해서는 사장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찾지 못했고,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동청에 신고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기준 연간 임금체불액은 1조 3500억원, 임금체불로 고통을 받는 노동자 수는 24만명이다. 노동자 1인당 체불액은 2018년 471만원에서 2022년 562만원으로 증가했다.
최근에 고용노동부는 고액의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한 사업주 194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307명은 신용제재를 가했다. 명단공개와 신용제재는 임금체불 사업주의 명예와 신용에 영향을 줘 체불을 예방하고자 2012년 8월에 도입한 제도이다. 지금까지 3354명의 명단이 공개되었고, 5713명이 신용제재를 받았다. 명단이 공개된 사업주는 3년 동안 정부지원금, 경쟁입찰, 구인 등에서 제한을 받고, 신용제재를 받은 사업주는 7년 동안 신용관리 대상자로 등재돼서 대출 등의 제한을 받는다.
임금체불은 ‘경제적 살인’이라고도 불린다. 살인범죄와 버금갈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다는 의미이다. 현금이나 예·적금,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이나 건물, 토지와 같은 부동산 등 별도의 재산이 없는 노동자에게 임금은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즉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임금체불은 오로지 임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다.
통신비, 공과금, 보험료, 자녀 학원비 등 최소한의 생활비를 매월 지출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한 달 치 임금만 체불되어도 가족 모두가 피를 말리는데, 하물며 임금체불이 몇 개월 지속된다면 어찌 될까. 가정경제는 멈추게 되고 신용불량 등의 파탄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임금체불은 경제적 살인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살인’을 저지른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그 죄에 비해 상당히 미미하다. 대부분은 벌금으로 끝난다. 게다가 피해 노동자와 합의하면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러니 사업주는 임금체불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에 피해 노동자 대부분은 우울감과 함께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낀다. 이러한 증상이 심해지면 사업주에 대해 사적 보복을 감행하기도 한다. 지난해 다니던 사업장에 불을 지른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에게 법원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 또한 임금을 체불한 사장을 찾아다닌 이유가 ‘찾으면 죽여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사적 보복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법에 따른 공적 보복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사법 시스템이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효능감을 줄지 장담할 순 없지만, 경제적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그’에게도 마지막 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래야 공적 보복의 면이 서지 않겠는가.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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