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한동훈에 '잘해봐라' 했다더라"…윤∙한 갈등 들춘 원희룡
국민의힘 대표가 되려는 유력 정치인 3인이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1시간 간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7·23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당 대표 경선은 이날 출마를 선언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나경원 의원과 이틀 전 출마를 공식화한 윤상현 의원 간의 4자 대결이 유력하다.
4ㆍ10 총선 참패 뒤 자숙을 택했던 한 전 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 당 대표 도전을 선언하며 두 달여 간의 잠행을 깼다. 그는 “지난 두 달은 반성과 혁신의 몸부림을 보여드렸어야 할 골든타임이었다”며 “그런데 우리는 국민의 요구에 묵묵부답,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고심 끝에 저는 오랫동안 정치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한 전 위원장은 대통령실과의 관계 정상화를 강조했다. 그는 여권에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꼽혀온 수직적 당정 관계에 대해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으로 쇄신하겠다”며 “지난 2년간 9번이나 집권당의 리더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윤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를 “공적 관계”로 규정하며 “건강한 당정관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걸 많은 국민이 바라고 있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 전 위원장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드릴 만한 여러 번의 기회를 아쉽게도 실기했다”며 “국민의힘이 특검에 반대할 수 없다. 진실규명을 위한 특검을 국민의힘이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지금 민주당이 제안하고 있는 특검은 선수가 심판을 고르는 것”이라며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검을 지명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 처리를 공언한 채상병 특검법은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반대하는 사안이다. 당장 경쟁 주자들은 “순진한 발상이고 위험한 균열”(나경원), “분열은 공멸을 불러올 뿐”(원희룡), “순간 민주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윤상현)라며 반대했다.
한 전 위원장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선 “지금 단계선 도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집권당과 정부가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야 한다. 당 대표가 되면 특별감찰관을 적극 추천하고 제2부속실 즉시 설치를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진짜 해야 한다.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누차 강조했다.
한 전 위원장 회견 직후 소통관에 선 원희룡 전 장관은 한 전 위원장과 적극적인 차별화에 나섰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성공해야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고, 무도한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며 “저는 대통령과 신뢰가 있다. 레드팀을 만들어 생생한 민심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원 전 장관은 특히 윤 대통령과 한 전 장관의 전화통화(19일)에 대해 “(한 전 위원장은) 당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했는데, 정 비서실장이 ‘대통령께 전화드리는 게 예의 아닌가’라고 했다”며 “그 뒤 한 전 위원장이 대통령께 전화했는데, 대통령이 ‘잘해봐라’하고 끝냈다”고 전했다.
여권 핵심부만 알 수 있는 사실을 공개하며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갈등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그는 “엘살바도르 특사 보고차 용산에 다녀왔을 때 (윤 대통령이) 이미 다른 후보(나경원ㆍ윤상현)들은 다 만나고 식사도 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나경원 의원은 출마 선언문에서 “국민의힘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 염치없는 정치, 미숙한 정치에 맡길 수 없다”며 한 전 위원장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생존 5선 정치인의 지혜, 전략, 경험을 오롯이 보수 재집권을 위해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친윤계의 조직적 방해로 지난해 3ㆍ8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못했던 그는 “저는 자유롭다. 각 세울 것도, 눈치 볼 것도 없다”며 “그런 제가 진심으로 윤석열 정부를 성공시킬 수 있다. 당정동행, 밀어주고 끌어주며 같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한 전 위원장과 원 전 장관을 동시에 겨누기도 했다. 당 대표가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려면 대선 1년 6개월 전인 내년 9월에 사퇴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당권ㆍ대권 분리 규정을 언급한 것으로, 두 사람이 당 대표가 될 경우 중도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두 사람은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자격을 갖추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한 전 위원장), “나중 문제는 그때 국민이 어떻게 불러주시냐에 따라 생각할 문제”(원 전 장관)라는 입장을 내놨다. 여건에 따라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가겠다는 의미다.
대표 후보 중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한 윤상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누가 공천 위협 앞에서도 용기 있게 수도권 위기론을 꾸준히 말했나. 누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뺄셈 정치’는 안 된다고 용기 있게 목소리 냈나. 누가 수도권 최전방에서 다섯 번이나 민주당과 싸워 이겼나”라고 썼다. 그러면서 “윤상현이 민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표다. ‘언더독’(선거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를 뜻하는 말) 윤상현이 이기면 가장 놀라운 뉴스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쟁 주자들을 향해선 “홍준표, 오세훈, 안철수, 유승민과 함께 (대표 선거가 아니라)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게 당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윤 의원은 21일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미추홀구 용현시장에서 “대통령과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시중의 민심을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때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고 또 때로는 대통령을 견인하는 여당 대표가 되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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