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수퍼 달러'에 원화값 1400원 위협…밥상물가∙수입업체 비상
고공 질주하는 ‘수퍼 달러’가 신흥국과 아시아 외환시장을 강타했다. 신흥국 화폐가치는 줄줄이 급락했다.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맥을 못 추면서 원화값도 ‘1달러=1400원선’을 위협한다. 탄탄한 경제를 자랑하는 미국 홀로 피벗(통화정책 변화) 시기를 미루면서 주요국 간의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서다.
‘수퍼 달러’에 다시 불이 붙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에 따르면 유로ㆍ일본 엔ㆍ스위스 프랑 등 세계 6개 통화에 대한 달러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1973=100)는 지난 21일(현지시간) 105.83으로 5월 초 이후 두 달여 만에 가장 높다.
가장 큰 불씨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캐나다은행, 스위스국립은행(SN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미국보다 앞서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면서다. SNB는 3월에 이어 지난 20일(현지시간) 깜짝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와 달리 미국은 탄탄한 경제와 들썩이는 물가에 기준금리 인하 출발선조차 서지 못했다. 미국의 장기화되는 5%대(5.25~5%) 긴축 여파로 주요국 간의 금리 차는 더 벌어지면서 ‘강달러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사그라지지 않는 수퍼달러에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 통화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기준 JP모건의 신흥국 외환지수가 연초 이후 4.4% 하락했다. 2020년 이후 4년여 만에 최대 낙폭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달러당 1만6474.4 달러로 1만6500루피아에 다다르고 있다. 2020년 4월 이후 가장 낮다. 멕시칸 페소(달러당 18.10페소)는 21일(현지시간) 한 달 만에 6.9% 폭락했다. 미국 고금리에 과거 금리가 낮은 선진국에서 돈을 빌려 신흥국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 철수 영향이다. JP모건은 “멕시코 페소 약세가 대표적인 캐리 트레이드 청산 사례”라며 “2022년 중반부터 지난 5월까지 몰렸던 글로벌 자금이 대거 빠져나갔다”고 분석했다.
한국 외환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원화가 동조화 흐름을 띠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올해 달러 대비 맥을 못 추고 있어서다. 중국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통화완화 정책을 펴고, 깊은 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일본도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하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21일 위안화는 중국 역내시장에서 달러당 7.261위안으로 밀려났다. 올해 들어 가장 낮다.
이날 일본 엔화도 한때 두 달여 만에 ‘1달러=159엔’선을 넘어섰다. 연초 이후 달러 대비 13.4% 급락한 ‘수퍼 엔저’다. 엔과 위안화가 동시에 미끄러지자, 한국 외환시장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이 장 초반 달러당 1390원을 뚫고 1400원대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거래 한도를 500억 달러로 1년여 만에 150억 달러 증액하며 대응했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외환보유액에서 빌려서 쓰는 한도를 늘려준 셈이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달러 수요를 당국이 흡수하면 달러값 상승을 일부 억제할 수 있다. 이후 원화값은 상승세가 진정되면서 전 거래일 보다 달러당 3.6원(환율 상승) 하락한 1388.3원에 마감했다.
미국이 확실하게 ‘피벗(통화정책 변화) 깜빡이’를 켜는 게 관건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 달러 강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서다. 다만 탄탄한 미국 경제에 전문가들의 최근 9월 피벗(통화정책 변화) 전망도 오락가락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Fed가 9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확률은 한국시간으로 23일 오후 5시 기준 59.5%다. 일주일 전(14일) 62%보다 낮아졌다.
달러 강세는 외환시장뿐 아니라 국내 내수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입 단가가 오르면 생활 물가를 자극할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하는 식품업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물가를 중시하는 한국은행이 피벗을 결정하는데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출 기업도 원가 부담이 커진다. 주요 원자재 가격을 더 비싼 가격으로 수입해야 해서다.
전문가들이 당분간 국내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류진이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중국과 북한ㆍ러시아 등의 관계가 공고해지는 양상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요소”라며 “적어도 7월 중순까지 달러 대비 원화값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시기의 문제일 뿐 올해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미국 긴축과 달러 강세 여파에 신흥국 화폐가치가 폭락하거나 원화값 하락 우려가 지속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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