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엔 미술 전시회가 부족... 그래서 우리가 직접 열었어요
[문슬아 기자]
▲ 22일 솔트라운지에서 열린 '나도, 밤나무' 전시에서 밤송이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 |
ⓒ 문슬아 |
초여름 장맛비가 시작된 22일, 강원도 속초 밤골 마을에 기분 좋은 활기가 넘쳐흘렀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입니다'라는 피카소의 명언이 인쇄된 큼지막한 현수막이 찾아오는 이들을 팔 벌려 환영하듯 펼쳐져 있다. '나도, 밤나무!' 전시관의 모습이다.
속초문화관광재단 시민실험실 문화로OK 프로젝트 '너도밤나무'팀의 어린이 전시 프로젝트 '나도, 밤나무!'가 이날 속초 '솔트라운지'에서 개최됐다. 7팀의 어린이 예술가들이 직접 만들고 그린 다양한 작품들이 저마다 고유하고 근사하게 공간을 채웠다. 이번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열린다.
참여 작가들은 속초, 고성에 살고 있는 6세~13세 어린이다. '꼬마 예술가 밤송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6세 전바하(속초), 7세 박두이(속초), 7세 김시아(속초), 9세 조율(고성), 9세 남서현·11세 남혜준(고성), 11세 조은조(고성), 13세 전소연(속초)이다.
어린이 작가의 거침없이 고유한 세계
전시 첫날인 22일 오후 1시, 작가들이 직접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도슨트가 진행됐다. '세상을 조율하는 놀이터'의 조율 작가는 바다와 숲, 함께 살아가는 지구 생명들을 표현한 그림과 만화, 양말목 티 코스터 등 수공예 작품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작품의 의미와 만든 과정을 설명했다.
'우리 학교의 봄'의 남혜준·남서현 작가는 현재 다니고 있는 공현진 초등학교의 사계절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두 작가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예쁜 우리 학교에 좀 더 많은 친구들이 왔으면 좋겠다"라며 학교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여섯살의 세계, 로봇과 괴물'의 전바하 작가는 이번 전시의 최연소 작가다. 여러가지 블록을 조립해 각양각색의 로봇과 즐거운 상상이 그대로 담긴 괴물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인생 첫 도슨트에 긴장한 누나, 형들과 달리 무대 위의 예술가처럼 자신의 작품을 하나씩 손으로 가리키며 반짝이는 눈과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 전시 첫날인 22일, 작가들이 직접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도슨트가 진행됐다. (왼쪽 위부터 조율, 남혜준·남서현, 전바하, 박두이 작가) |
ⓒ 문슬아 |
▲ 23일 오후 2시 작가들이 직접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도슨트가 진행됐다. (왼쪽 위부터 조은조, 김시아, 전소연 작가) |
ⓒ 너도밤나무팀 제공 |
전시 이튿날인 23일 오후 2시에는 조은조, 김시아, 전소연 작가의 도슨트가 진행됐다.
"완성한 햄스터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저는 그려요. 햄스터는 사랑이고 햄스터가 언제나 저의 세상을 구할 거예요!"
그런 조은조 작가의 전시제목은 'Colorful Hamster'이다. 아팠다가 살아난 곰자의 꽃 산책, 출근길의 햄스터, 햄스터 사총사 등 반려 햄스터와 겪은 이야기를 섞어 여러 색의 작품으로 표현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그리고 만드는 김시아 작가는 '개미굴', '해바라기밭', '속초대관람차와 행복한 바다' 등 자신만의 경험과 느낌을 다채로운 색깔로 표현했다. 김시아 작가의 전시 제목은 '시아의 하루'다.
전소연 작가는 속초에 살면서 느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고 따뜻하게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일상에서 길어올린 네 가지 의미있는 순간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포착해 커다란 종이에 네 컷으로 분할해 표현했다. 전시 제목은 '1년네컷'이다.
아이들이 이 지역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기를
속초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주말이나 휴가철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관광 위주의 콘텐츠는 많지만 정작 주민들을 위한 문화 예술 기회는 부족한 현실이다. 아이들의 문화 경험을 위해 전국의 박물관과 전시회, 공연을 보러 도시를 매번 찾아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
▲ '나도, 밤나무!' 어린이 전시프로젝트를 기획한 너도밤나무팀, 왼쪽부터 전이령 팀원, 송진희 팀원, 임희선 기획총괄 |
ⓒ 문슬아 |
속초 밤골에서 영상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임희선씨가 전체적인 전시 기획의 총괄을 맡았다. 초등 교사인 전이령씨는 어린이들이 전시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전시 방향과 체험존 운영을 기획했다. 에세이 작가인 송진희씨는 작가별 스토리텔링과 도슨트 운영을 맡았다.
자신을 이 프로젝트의 '이끔이'라고 소개하는 임희선씨는 문화예술을 누리기 위해 바깥으로 배회하다보면 지역에 애정을 갖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 지역을 사랑하기 위해" 이 실험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저에게는 이미 운영하고 있는 공간이 있고, 또 주변에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이 있으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직접 문화 예술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통해서 이곳에서도 즐겁게 문화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송진희씨는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시민문화실험이라는 취지를 떠올리며 '그래, 일단 해보자'라고 마음먹고 행동에 옮겼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표현할 때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많아지고, 거르는 요소들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거침없고 순수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순간마다 묘한 감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매력을 여기 오시는 분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나무의 용기... '너도, 밤나무'
전시가 진행되는 '솔트라운지'는 속초시 밤골2길 7-1에 있다. 기획팀원들은 마을명 '밤골'에서 '밤나무'를 떠올리게 됐고 자연스레 너도밤나무 설화를 알게 됐다. 한 마을에 산신령이 나타나 백 그루의 밤나무를 심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겠다는 경고에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나무를 심었지만 한 그루가 말라죽어서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아주 작은 나무가 "나도 밤나무"라고 외쳐 마을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너도밤나무팀은 "작은 나무의 용기 있는 마음이 이 프로젝트의 정신이 됐다"며 "그래, 너도 밤나무"라고 화답한 것을 팀명으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린이 작가들은 '밤송이'라고 부른다. 기획팀은 "이번엔 밤송이 1기"라며 "앞으로 2기, 3기까지 쭉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 속초문화관광재단 시민실험실 문화로OK 프로젝트 '너도밤나무'팀의 어린이 전시 프로젝트 '나도, 밤나무!'가 22일 속초 '솔트라운지'에서 개최됐다. 전시장 입구 모습. |
ⓒ 문슬아 |
▲ 어린이들이 전시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체험존을 운영하고 있다. |
ⓒ 문슬아 |
▲ 22일 '나도, 밤나무!'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의 모습 |
ⓒ 너도밤나무팀 제공 |
▲ 22일 '나도, 밤나무!'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의 모습 |
ⓒ 문슬아 |
▲ <나도, 밤나무!>전시 외관(좌)과 작가들이 직접 써서 붙인 전시관 내 안내문(우) |
ⓒ 문슬아 |
▲ '나도, 밤나무' 전시 포스터 |
ⓒ 너도밤나무팀 제공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대들이 잇몸에 몰래 넣는 '이것'... 미국이 위험하다
- 부채발 경제위기 막아낼 마지막 카드
- 비극적 최후... 이 사람이 왜 독립운동가가 아니란 말인가
- 개미가 무섭다는 딸, 아빠는 네가 무섭다
- "도시가스 없애고 다 인덕션 쓸텐데... '산유국 꿈' 경쟁력 없다"
- KBS, 채 상병 입법청문회 생중계만 안 한 게 아니다
- 이 아파 못 먹었으니 회비 돌려달라던 70세 동창
- 인스타에 필사 인증사진... MZ세대에 부는 시집 열풍
- 25m도 완주 못한 수영강사... "자격증 없지만 법 위반 아냐"
- 장호진 "러, 북에 정밀무기 주면 우크라 지원에 어떤 선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