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EU가 전쟁 도발했다" 재차 주장 英 극우, 제1 야당될까
영국 조기총선에 출마한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가 “서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도발했다”는 기존 주장을 또 반복했다. 그는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위험성을 10년 전부터 반복해 경고했다”며 “영국의 미래를 위해 유권자들에게 미리 경고해온 이를 선택할지, 전쟁이 현실이 되도록 방임한 정당을 선택할지 묻겠다”고 강조했다.
BBC 인터뷰, 일간지 기고문에서도 "전쟁, 서구가 도발"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패라지 대표가 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실수는 재앙적이며, 진실을 말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패라지 대표는 전날 방영된 영국 BBC와의 방송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의 확장이 그(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줬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텔레그래프 기고는 그의 이런 발언이 논란을 촉발한 뒤 공개됐다.
BBC 인터뷰에서 패라지 대표는 “우리가 이 전쟁을 도발했다(provoked)”는 표현까지 썼다. 그간 전쟁의 원인을 나토에 돌려온 푸틴의 논리와 사실상 똑같은 취지의 발언이다.
이에 영국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집권 보수당 소속의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패라지의 발언은 완전히 잘못됐고, 푸틴의 손에 놀아난 것”이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푸틴은 영국 거리에서 신경작용제를 사용하고, 북한과 같은 나라와 거래하는 자”라며 “이런 사람을 미화하는 것은 영국과 우리의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하며 푸틴을 대담하게 만들뿐”이라고 강조했다.
수낵 총리가 언급한 ‘신경작용제 사용’은 전 러시아 군사정보국 장교인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영국에서 2018년 3월 딸 율리아와 함께 신경작용제 노비초크에 중독됐다 목숨을 건진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배후로 주목된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해 왔다.
보수당의 토바이어스 엘우드 의원은 “처칠이 무덤에서 일어설 일”이라고 말했다. 패라지 대표의 발언을 보수당의 정신적 뿌리에 해당하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를 내세워 비난한 것이다.
총선 이후 차기 총리 등극이 유력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 역시 해당 발언에 대해 “역겹고 수치스럽다”며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패라지 "나는 사실만 말하는 정직한 정치인"
이런 비난에 패라지 대표는 기고를 통해 똑같은 주장을 이어가며 반박에 나선 것이다. 그는 “전쟁의 해결책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진실을 직시하는 데 있다”면서 자신은 단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를 ‘푸틴의 대변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스스로를 “10년 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대해 일관되게 경고해온 몇 안되는 정직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표현하며 “하지만 서구는 푸틴의 손에 놀아나 10년 간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구실을 만들어줬다”며 ‘서구 책임론’을 이어갔다.
그는 나토와 EU의 확장에 대해 “러시아라는 곰을 막대기로 찌르는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내가 여러 차례 분명히 밝혔듯, 러시아 곰을 막대기로 찔렀으면 곰의 반응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면서 “곰을 쓰러뜨릴 수단이나 정치적 의지도 없으면서 찌르는 것은 올바른 외교 정책이 아니다”고도 주장했다.
서방 정치인들에 대해선 “흰색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처럼 행동한다”고 조롱했다. 이어 “우리는 외교 정책에서 허영심이 이성을 대신하는 것을 목격했고, 그 결과 우리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많은 국가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또 영국의 경제 위기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기타 지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집권 보수당과 야당인 노동당이 모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동의한 결과 수백만 영국 가구가 생활비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면서 보수당과 노동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한편 다음달 4일 치러지는 영국 조기총선의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에 20%포인트 차이로 밀리고 있는 집권 보수당은 영국개혁당에게도 추월당할 위기에 놓였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 13일 발표한 지지도 동향에서 야당인 노동당은 37%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유지했다. 보수당은 앞선 여론조사와 동일하게 18%를 얻었지만, 영국개혁당의 지지율이 17%에서 19%로 상승하며 보수당을 젖히고 2위로 등극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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