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 필사 인증사진... MZ세대에 부는 시집 열풍
[박채원 기자]
▲ 대전시 독립서점 '다다르다'의 시집 배치 |
ⓒ 박채원 |
최근 다시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시집을 향한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디지털 시대의 빠른 정보 소비에 지친 독자들이 느리고 깊이 있는 독서를 즐겨보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3년에는 전년 대비 시집 구매율이 20% 이상 증가했으며 시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또, 지난해 교보문고 통계에 따르면 전체 시집 판매 비중의 25%를 20대가 차지했고, 30대가 20.4%를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판매 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시집 판매가 상승세를 타며 시 문학계에 젊은 시인들 또한 등장하고 있다. 각각 지난 2017년, 2022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유수연·고선경 시인 등 젊은 작가들의 행보가 돋보인다. 지난 2월 예스24가 진행한 시집 판매 동향 조사에 따르면 최근 20대가 소비한 시집 베스트셀러 분야에 황인찬·양안다·고선경 시인과 같이 젊은 작가들이 상위권에 올랐다.
이처럼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시집은 과거처럼 어렵고 난해한 분야이기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장르로 다가오고 있다. 직접 느낀 경험담과 솔직한 문체, 신선한 언어로 표현하는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 20대들의 이목을 끌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시집 코너 따로 운영, 시집만 파는 서점도
서점들은 시집 서가를 따로 운영해 독자들이 쉽게 시집을 찾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요즘 제일 잘 팔리는 시집, 새로 나온 신간 시집, 지금 인기 있는 시집 등과 같이 다양하게 주제별로 나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대전시 중구 은행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다다르다'와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진부책방스튜디오'는 시집 전용 책꽂이를 따로 구비해 시집 서가 배열과 큐레이션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시인과의 만남, 북토크, 북클럽 등 시집 관련 행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독립서점 다다르다 운영자 김준태씨는 시라는 장르 자체의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큐레이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심어주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민음의 시', '문학동네 시인선', '창비시선' 등 다양한 시리즈를 소개하며 최근에는 작은 출판사의 시집들도 함께 비치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 대전시 독립서점 '다다르다'의 시집 서가 |
ⓒ 박채원 |
시집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서점도 있다. 지난 2016년 처음 문을 연 위트앤시니컬이 대표 사례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에서 유희경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국내 최초 시집 전문 서점으로, 시집을 즐기고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소중한 장소로 자리잡았다. 단순히 시집 판매를 넘어 시인·독자들과 함께 시를 낭독하는 낭독회, 시 창작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 서점만의 특색 있는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은 이제 오직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 꾸준히 시를 쓰는 시인들을 위한 아지트이기도 하다.
시집 서점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문을 연 대구시 앞산 카페거리에 위치한 시집 전문책방 '산아래 詩'는 현재 약 1800여 권이 넘는 시집을 판매하고 있다. 이 책방은 오직 '시'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책 장르를 비롯해 소품이나 커피 또한 팔지 않는다. 책방지기 이동림씨는 특정 시집에 대한 추천도 삼가고 있다. 책방에 비치된 모든 시집이 좋은 시집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방이 알려지며 전국 각지에서 이 콘셉트를 토대로 시집 전문 책방을 준비 중인 서점이 충북 청주 등지에 5곳이 넘는다. 시집을 찾는 독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며 생긴 변화다.
2030 세대가 시를 향유하는 법
그렇다면 젊은 독자들은 시집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 요즘 젊은 세대가 시집에 관심을 갖는 건 바로 시집이 주는 여유로움과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다다르다 운영자 김준태씨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느리고 깊이 있는 시의 세계는 독자로 하여금 안정감과 위로를 제공한다"며 시집 관련 북토크나 행사에 대한 수요도 전보다 늘었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 독자들은 자기계발, 사색과 몰입을 위해 시를 읽기도 하며, 시를 읽음으로써 깊은 울림을 느껴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는 것.
독서 방식에 대한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엔 시집 한 권을 전부 통독해야만 완전히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나 SNS가 활성화되며 단발적인 독서법이 주목받고 있다. 젊은 시인의 대거 등장, 시 트렌드 변화, 높아진 접근성으로 시를 찾는 2030 세대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직접 시를 쓰고 좋은 구절을 공유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 '포엠매거진' 인스타그램 계정 피드 캡쳐 |
ⓒ 박채원 |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어떤 콘텐츠가 재밌는지, 어떤 게 유행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요즘, 2030 세대의 시를 향한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각종 SNS에서 직접 '시스타그램(시+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을 소개하고 직접 독후감을 올리며 시의 매력을 알리는 게시글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감명 깊었던 시는 필사해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하고, 따로 계정을 만들어 읽은 시집에 대해 평론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NS가 익숙한 세대답게 시라는 장르를 활용하는 방식도 색다르다.
흥미로운 콘텐츠로 시집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포엠매거진'은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해 인기를 끌고 있다. 포엠매거진 운영자는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읽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계정을 만들었다. 시의 매력을 알릴 뿐더러 시집을 접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쉽고 흥미롭게 느껴질 만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포엠매거진 운영자는 "시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며 "매 순간 살아있다는 걸 기록하기 위해 시를 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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